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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회천(回天)

  • gwachaeso
  • 4월 22일
  • 4분 분량

<WT>

아라진아라



오래전 쿠가 유마의 블랙 트리거를 빼앗기 위해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부대, 그리고 타치카와 부대, 카자마 부대, 미와 부대에 후유시마 부대의 토마 이사미까지 보더의 정예에 해당하는 A급 부대 다수가 서로 부딪쳐 전투를 벌인 바 있었다. 최종적으론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부대가 승리한 그때, 진 유이치는 아라시야마 부대의 지원 없이는 본인도 좀 힘에 부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었는데,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그날을 회상하는 카자마 소야는 그것이 너스레에 불과한 말이 아닌가 의문을 품었던 지난날이 헛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진 유이치는 강했다. 지금도. 그에게 ‘사이드 이펙트’가 없었더라면, 같은 가정은 무의미하기에 말할 가치도 없었다. 현실에서 ‘나만의’ ‘최적’의 조건에서 싸울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할 시간에 적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진 유이치를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영 까다롭지. 그에게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의 미래시는 그들의 미래를 어디까지 내다보았는가? 그는 이미 과거에 보았을 지금 이 현재는 과연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누군가 이미 조정해 둔 판이 아니고?


지금, 그와 서로 날을 겨누는 이 순간에 이르러선 전투에 다소 방해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카자마 소야는 미래로 잠시 생각을 미루고 지금은 진 유이치의 풍인에 집중하기로 한다. 시야가 닿는 곳까지 참격을 전파할 수 있는 풍인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고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은 아니긴 하나, 맥없이 당할 정도로 무적의 능력은 아니다. 가까이 붙어 근접전을 강제하면 일반적인 장검과 다르지 않기에, 풍인은 사용자와 거리를 두지 않는 것이 공략의 핵심이다.


여기서 거리란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한다.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겠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진 유이치는 쉽게 방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를 읽는 것에 집중하다 현실을 놓쳐 패배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본인도 그 점을 알기에 ‘집중해서’ 약점을 방어한다. 참 까다로운 상대였다, 진 유이치는. 그리고 그 점을…….


네가 모르지 않을 텐데, 아라시야마.

아라시야마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며 카자마 소야는 속으로 말했다. 거 봐.

막지 못할 거라고 했지.


“아라시야마 너라도 안 돼.”


진 유이치가 말한다. 카자마 소야의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


그를 막아 세울 수 없다. 아라시야마라 할지라도.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 이 전투를 중지 또는 그를 제압하려는 방식, 시도는 좋았지만 성공 확률은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 그래도 아라시야마는 그중에서 그나마 높은 확률을 점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카자마 소야는 전투에 앞서 요청된 그의 요청을 허가했다. 성공한다면 최적의 안으로 이 대립이 끝나게 될 것이고, 실패한들 예상대로 전투할 뿐이니 달라지는 것은 ‘아라시야마’ 개인의 전투 개입 여부 정도만이 될 뿐이다. 물론 아라시야마는 A급 부대의 대장인 만큼 우수한 전투원이지만, 개인 간 대인 전투 능력이 아주 높은 전투원은 아니다. 그는 부대일 때 더욱 강한 자다. 여기까지는 카자마 소야의 예상대로. 하지만 그 뒤는 그의 예상과 어긋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명령에 불응하는 자로 인해 뒤틀린다.


쩌적,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신체, 빛, 연기. 트리온으로 만들어진 신체가 파괴된다. 그러나 여기, ‘돌아가지 않기로 한’ 자가 남는다. 이 자리에.


“아라시야마!”


카자마 소야가 일갈하지만 때는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라시야마는 곧장 진을 향해 달려가고 일동 사이에는 트리온 통신이 다급하게 오간다. 아라시야마를 엄호해! 하지만 아라시야마는 진이 제게 풍인을 휘두를 리 없다고 생각하는지 거침없이 달렸다. 실로 진은 풍인을 들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라시야마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풍인을 들었음에도 그를 막아 세우고 멈추기 위한 어떤 공격도 펼치지 않은 그는 아라시야마와의 거리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팔을 뻗어 진의 어깨를 붙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 ‘기다렸다’. 그는.


“미안.”


아라시야마는 제 트리온 전투체를 이중으로 덮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아라시야마!”


촤악, 소리를 내며 베어지는 신체, 튀어 오르는 피,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가 무너진다. 여기, ‘돌아가지 않기로 한’ 자는 처참할 정도로 무참해지기로 한다. 끝까지 그를 기다렸다가 풍인을 휘두른 그가 아라시야마의 얼굴에서 점점 더 강한 빛을 내는 ‘희망’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부러 그것을 눈앞에서 박살 내는 길을 택했지. 진. 다른 전투원들이 뛰어들어 피 흘리는 아라시야마를 끌어내는 사이 가장 정석적인 전투법―풍인과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혀 근접전으로 몰고 가는 방식으로 진에게 바짝 붙은 카자마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진. 너는.


“선을 넘었어.”

“카자마 씨.”


선은 오래전에 넘었어. 그 말을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얼굴에는 점점이 피가 튀어 있다. 아라시야마의 피다. 그가 베어낸, 갈라낸, 살점 사이 절단된 혈관에서 뿜어져 나온 피. 그도 가지고 있을 인간의 구성 요소. 인간인가? 인간이지. 인두겁을 뒤집어썼다는 표현이 있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표현이고 결국 인간이지. 슬프게도, 역겹게도, 똑같은 인간이지.


인간…….

인간일까?


베어지는 신체, 튀어 오르는 피,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가 무너지는 ‘장면’을 무한히 반복하여 응시한 정신은 이윽고 무감해진다. 진 유이치는 카자마 소야에게 어떤 말을 흘리듯 중얼거린다. 스콜피온으로 풍인을 맞받아친 카자마 소야의 얼굴이 험악하다는 표현으로 표현이 모자를 만큼 찌푸려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탁, 하고 팽팽하게 조여든 끈이 풀리듯이 또는 끊어지듯이 그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지워진다. 어떠한 깨달음이 그 외 모든 것을 밀어내고 비워낸 것이다. 이윽고 그는 지극히 무감하게 들리는 말을 무표정으로 말하며 진의 오른팔을 잘라내 버렸다. 진 유이치. 그를 부르며 사실을 선고한다.


“미쳤군.”


카자마 소야의 말은 욕설이 아니다.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그 말을 들은 진 유이치는 처음으로 웃는다. 맞아, 카자마 씨. 맞아. 사실이다. 그렇지만…….


“먼저 떠난 건 당신들이야.”


카자마 소야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역수로 잡은 왼팔의 풍인을 들어 사선으로 갈라버린 진 유이치가 그에 고한다. 어때…….



잘 보고 있어?



눈이, 마주쳤다.


사이드 이펙트란 이름의 영사기에서 상영되는 ‘미래’를 보던 진 유이치의 몸이 굳어버렸다. 저게 정말 앞으로 일어날 어떤 가능성을 가진 미래일까? 수많은 선택 중 저 미래로 향하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을 하는 자신이 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서? 선을 넘었다는 건 또 무슨 뜻이고? 대체 어떤 금기를 저지른 이후이기에 제 친우를 향해 무참히 칼을 휘두르는 짓거리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단 말이냐?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돼. 미래가 아니라 개꿈이라고 봐야지, 이런 건. 아니? 어쩌면 정말로. 자신은 정말 개꿈을 미래로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미래를 보는 개꿈을 꾼 거지. 그런 거지.


눈이 마주친 건 착각이야. 저렇게 미친 자신 따위 악몽이야.

안 그래?


이 모든 생각이 스쳐 가는 시간 동안 진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기에 어쩌면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차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렸다. 하하, 이상한 꿈도 다 꾸네, 정말. 아라시야마에게 얹힌 화라도 있었나? 카자마 씨에게도? 기억나는 게 없는데. 정말 없는데. 그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아침은 멀었고, 사위는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그러니 좀 더 잠들어도 좋을 듯했다.


그렇게 그는 시체 더미 위에서 눈을 감았다. 안락하고 따듯한 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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