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미 공주님 시집 가는 날
- gwachaeso
- 4월 15일
- 3분 분량
<WT>
동양풍 AU
솔직히 말해서 코나미 키리에는 제가 혼례를 못 올릴 줄 알았다.
물론 바란다면 바란 대로 이뤄지지 않을 까닭은 없었다. 코나미 키리에는 제 뜻이 실현될 때까지 끝까지 밀고 나아갈 저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중궁궐의 모두가 알고 이 나라의 주상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그만큼 뜻이 분명할 때의 일. 저 스스로 혼례를 바라는지도 알지 못하는 지금으로선 뜻을 밀어붙일 동안 자신을 지탱할 확신이 단단히 서지 않았다. 공주의 혼례는 여느 여염집 딸의 혼례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공주와 혼인하는 자는 왕의 사위가 될 것이다. 왕의 사위는 부마라고 일컬으며, 코나미 키리에는 부마에게 어떤 멍에가 씌워지는지 알고 있었다. 명예로운 멍에였다. 실은 전혀 명예롭지 않은.
부마는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다. 어떤 관직도 도맡을 수 없다. 정치에 뜻이 있는 자라면 공주와의 혼인은 그자의 발목을 그어 무릎 꿇리는 것과 같다. 코나미 키리에와 혼례를 올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공주를 정실로 들였으니 감히 첩도 들일 수 없고 오롯이 그만 바라보고 모시며 산다는 것.
그런 삶이어도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는 대답 뒤로 여느 때처럼 ‘죄송해요. 실은 거짓말이에요.’란 고백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굳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끝까지 지킬 셈인 거지. 그렇게 해서 진실이 될 수 있다면.
진실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진심으로.
진실은 아니어도 진심일 순 있어서. 그래서.
한때 코나미는 카코 노조미와 같은 삶을 상상한 적 있었다. 왕실의 웃어른으로 한때는 선왕의 명령으로 정략혼을 할 뻔도 했으나 지금은 이웃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이 유학하는 그는 혼례 따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대신들은 잊을 때마다 상소를 올려 장공주에게 마땅한 짝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정작 타치카와는 대신들이 무어라 말하든 제 동갑내기 누이에게 가타부타 말을 얹는 데 심드렁했다. 선왕도 무르신 명이었잖아. 내가 이제 와 어떻게 이 좁은 곳에 들어와 앉으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럼 또 이 궁궐과 나라가 어떻게 좁은 땅일 수 있냐며 노신들이 핏대를 세우리다. 그래 봤자다. 그 정략혼을 직접 무산시킨 대제학, 왕사인 아즈마 하루아키를 찾아가 닦달해도 그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간언도 하지 않을 테니. 아무튼 왕실에 그런 전적이 있다 보니 코나미 키리에가 혼례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를 말리며 설득하려 하는 자는 아무래도 없었다. 여차하면 순서를 들먹이며 핑계 대도 된다. 장공주께서 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으셨는데 어찌 어린 제가 먼저 혼례를 올리겠냐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코나미가 먼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삶이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카라스마 쿄스케가 있는데 제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염치가 없었다. 아, 기분 나쁘다. 이런 고민들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좀 더 어릴 적엔 이런저런 고민 따위 내버리고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저, 익선관을 쓴 자와도 마음껏 실력을 겨룰 수 있었는데.
활옷을 입고 옷소매 사이로 고개를 가리는 중에도 실은 그런 생각을 했다.
맞은편에 서서 파란 관복을 입고 예에 임하는 ‘토리마루’에게는 미안할지도.
하지만 너도 이해하리라. 말할 수 있었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턴 아니더라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너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을지도.
감안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코나미는.
그렇기에 더욱 봐줄 수 없었다.
궐에 불꽃이 가득해 밤인데도 하늘이 붉고 땅 역시 붉어진 날에 제 앞을 가로막은 카라스마를. 궐에서 열리는 연회에 초대받아 참석한 공주 부부도 하마터면 변을 당할 뻔했으니 부마가 다행히 이를 막아 무사할 수 있었다, 따위로 이야기를 맺으려고? 네가? 감히?
“비켜.”
“못 비켜요.”
“날 막으려고?”
“못 막겠지요. 제가 어떻게.”
당신을 막겠어요. 그건 신분으로 봐도 실력으로 봐도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싸우실 거잖아요.”
코나미 키리에는 이미 양손에 하나씩 검을 쥐고 있다.
“내가 이길 거야.”
그는 현왕보다도 먼저 전쟁에 출정하여 승전고를 울린 바 있기도 하다.
이렇게 새 왕의 치세가 시작되는가? 하지만 그것만은, 그것만은 바라지 않은 자가 읍소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이것뿐이다. 이윽고 그는 무릎을 굽혔다. 그 앞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코나미에겐 여전히 가당찮기만 하고.
“일어나. 이런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하지만 그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타치카와 케이는 어째서 카라스마 쿄스케와 코나미 키리에의 혼례를 허락했는가? 제 사람의 관직을 사실상 몰수하면서까지 그 옆에 붙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날을 예상해서? 스스로 벌일 난을 짐작해서? ‘대제학이 죽었습니다.’ ‘……!’ ‘말릴 수 없어요. 그러니.’
“돌아갑시다.”
“…….”
“돌아가요. 코나미 선배.”
그는, 혼례를 올린 뒤로도 그렇게 부르는 게 편하다면 계속 그렇게 부르겠다며 그를 종종 ‘코나미 선배’라고 부르곤 했다. 그들은 실로 대학의 선후배 사이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였다. 하지만 혼례를 올리고 해를 넘어가며 호칭도 점점 변화해 갔더랬다. 코나미 선배. 코나미 씨. 키리에 씨……. 가끔은 장난스럽게 부인, 이라고 지극히 당연한 호칭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고, 그때마다 윽, 하고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코나미의 모습은 그를 흔흔하게 만들기도 했다.
“코나미 선배.”
“거짓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구나.”
“예.”
“그럼 사과하지도 않겠고.”
“……예.”
그 말을 끝으로 코나미는 검을 높이 쳐들었다. 카라스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코나미는 그의 머리 옆에 검을 박아 놓은 뒤 남은 검은 그대로 떨어뜨렸다.
“타치카와에게서 어떤 서신이 와도 나한테 전해주지 마.”
“예.”
공주님. 그리곤 뒤를 따랐다. 앞에 설 순 없기에.
나란히 설 수도 없기에,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