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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진 유이치의 친구들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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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스트



진 유이치가 미래를 보는 감각은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현재와 동시에 미래를 사는 사람이고, 수십 수백 가지의 가능성을 엿본 끝에 자신의 과거가 될 한 가지 미래를 택한다. 물론 그가 선택한다고 하여, 바란다고 하여 그가 바라는 모든 미래, 다시 말해 그가 소원하는 모든 과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진정으로 해명하건대 진 유이치는 그의 어머니와 스승이 죽길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 유이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현재의 그가 원하는 것을 움켜쥐기 위해. 미래는 변화할 수 있지만 과거는 불변하기에. 현재는 여기 있으매 진 유이치가 미래를 보는 감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현재를 보는 감각은 이해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자신의 과거를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뭇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진 유이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를 위해 미래까지 끌어올 수 있는 것뿐이다. 보이니까. 그뿐이다.


그뿐일 뿐인 나의 친구. 이코마 타츠히토가 진 유이치에게 갖는 생각 또한 그뿐이다. 그는 진 유이치의 사이드 이펙트를 알게 된 후에도 그가 두렵다거나 꺼림칙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코마 타츠히토가 진 유이치와 친구가 된 것은 그의 사이드 이펙트를 알게 된 것과 거의 동시였다(왜냐하면 진 유이치가 첫 만남에 자신의 사이드 이펙트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진 유이치는 자신 있게 악수를 청하며 자신과 그가 미래에 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코마 타츠히토가 원한다면. 당시 이코마 타츠히토는 교토에서 미카도시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진 유이치는 전학 간 학교에서 이코마 타츠히토에게 먼저 다가온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이코마 타츠히토는 진 유이치와 친구가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다가온 사람이라 무작정 좋다고 반긴 것은 아니다. 그는 제게 먼저 다가온 진 유이치의 그 의지를 높이 샀다. 사이드 이펙트를 먼저 밝혔다는 점도. 그래서 진 유이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뭐야? 친구가 되자며. 악수.


그날은 과연 진 유이치가 바라는 과거가 되었을까? 이코마 타츠히토의 손을 잡고 환히 웃던 진 유이치는 오늘이란 미래를 바랐을까? 모두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청포도 에이드를 마시고 있던 이코마 타츠히토는 그 다음으로 도착한 유바 타쿠마에게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린 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손을 방방 흔들었다. 잠시 유바 타쿠마의 얼굴에 그를 모른 척하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어린다. 정말로 선명하게 어리어 이코마 타츠히토는 제법 정확하게 그의 속마음을 읽어낸다. 그러나 그는 싸워보기도 전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승부도 없긴 하지만 일단 유바 타쿠마는 그런 사람이다. 따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맞은편 자리에 앉은 그는 이코마 타츠히토의 이야기를 일단 듣기로 한다.


유바 타쿠마도 진 유이치와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한다. 그는 진 유이치와 보더 본부에서 처음 만났다. 진 유이치는 유바 타쿠마에게도 비슷하게 운을 뗐던 것 같다. 허나.


내가 너와 친구가 되지 않는 미래도 존재하나?


유바 타쿠마의 직접적인 질문에 진 유이치는 어물어물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역시 거짓말로 도망치진 않았더랬다. 이 또한 그가 본 미래에 존재하는 상황이었는지는 거기까지 묻지 못한 유바 타쿠마로선 알 수 없지만, 진 유이치는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응. 존재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윽고 진 유이치와 친구가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친구가 된다는 것이 자,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야! 같은 선언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역시 제게 먼저 다가온 진 유이치의 의지를 높이 샀다. 그보다 더 높이 산 것은 그가 자신의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했다는 점이었다. 이날은 당연히 지금보다 과거에 있었으므로 상대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는 쿠가 유마의 사이드 이펙트로 진 유이치가 정말로 사실을 말했는지 아니면 거짓으로 사실을 호도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나, 꼭 사이드 이펙트가 있어야만 상대의 거짓말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바 타쿠마에겐 사이드 이펙트가 없었지만 그는 진 유이치가 제게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자신이 지금 어떠한 분기에 서 있는 것 또한 알았다. 이 분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지, 선택은 오로지, 오롯이 유바 타쿠마에게 맡겨졌다. 진 유이치도 확률 정도는 고려했겠지만 그는 그뿐이었겠고.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오자마자 두 사람에게 붙잡혀 질문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일단 주문부터 하고 오겠다며 두 사람을 간신히 떼어낸 그는 카페 라테를 주문한 뒤 자리로 돌아와 그들의 질문을 다시 확인하지만, 진 유이치와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해도 그에겐 그들처럼 진 유이치가 제게 와 친구가 되자! 하고 선언한 기억이 없었다. 왜더라? 그렇지만 기억해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던 연유였다.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앞서 유바 타쿠마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친구 선언 같은 것으로 그와 친구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아라시야마 쥰으로부터 진 유이치를 소개받았다. 한 마디로 친구의 친구 포지션이었던 셈이다. 셋, 그러다 가끔은 둘이서 만나 놀게 되면서 친구의 친구가 내 친구가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그와 친구가 되었다. 잠시 이코마 타츠히토와 유바 타쿠마로부터 동시에 호오…… 같은 시선을 받고 이를 카페 라테 잔을 입가로 기울이는 것으로 회피한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그러면서도 진 유이치의 사이드 이펙트에 제가 어떻게 반응했던가 같은 생각으로 회상에 잠겼다. 진 유이치의 사이드 이펙트는 그 자신이 숨기려 하지 않았으므로 보더에서 제법 유명했다. 아마 카키자키 쿠니하루 자신도 진 유이치와 만나기 전에 이미 그의 사이드 이펙트에 관해 들어 알고 있었으리다. 그런데 진 유이치도 그 사실을 알았을까?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제가 표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가 하면 확신하기 어렵지만, 진 유이치의 ‘너는 알고 싶은 미래가 없느냐’는 질문에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신중히 고민한 끝에 진중하게 괜찮다며 사양했다. 진 유이치가 그에 ‘내일 특식 메뉴 같은 것을 물어도 되는데’ 같은 말을 하며 웃었을 때는 ‘아’ 하고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지만, 적어도 카키자키 쿠니하루는 그런 대답을 진 유이치가 바라는 눈치였기에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래를 향한 두려움 또한 자신이 마주해야 할 두려움이라 생각했나? 그 순간의 자신은 제법 용감했다고 생각하는 카키자키 쿠니하루다. 만용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는 같은 선택을 하리라. 또는 지금 같은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다르진 않으리라. 과거와 미래는.


아라시야마 쥰은 진 유이치와 함께 도착했기에 질문할 수 없었다. 진 유이치가 자리를 비우면 해야지, 같은 생각은 모두가 했지만 정작 그때가 되었을 땐 모두 다른 화제를 즐기느라 아라시야마 쥰에게도 해야 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고 말았다. 그렇게 모두가 잊은 채, 또는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뒤, 혼자 걷는 귀갓길에서 카키자키 쿠니하루만이 아, 하고 깨닫지만 방금 헤어진 아라시야마 쥰에게 굳이 연락까지 하여 물어볼 질문인가 같은 생각이 카키자키 쿠니하루를 막았다.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해도 상관없으리다. 당장 지금 대답을 듣고 사연을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도 아니니까. 그렇게 카키자키 쿠니하루도 아라시야마 쥰의 이야기를 듣는 걸 잊어버린다.


잘 가.

내일 보자.


타마코마 지부로 돌아가는 진 유이치에게 손을 흔든 뒤 뒤도는 아라시야마 쥰. 아라시야마 쥰은 타마코마 제1부대 소속 전투원 코나미 키리에의 사촌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진 유이치와 친구가 된 이유는 아니다. 진 유이치는 아라시야마 쥰에게도 친구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코나미 키리에와 그가 동료라 자연히 그와 친해진 것 또한 아니다. 아라시야마 쥰은 그저, 우울한 코나미 키리에 옆에 서 있는 우울한 소년을 보았을 뿐이었다. 친구 선언은 아라시야마 쥰이 먼저 했던가? 그러나 아라시야마 쥰은 자신의 행동을 그저 그뿐이었다고 단정할 만큼 겸손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별것 아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뿐이다. 손을 내밀고, 친구가 되자고 말한 것뿐. 그저 그뿐.


그러나 수십 수백 가지의 가능성 중에서 그날의 그가 진 유이치의 과거가 된 덕택에 그 뒤의 진 유이치의 손에 많은 미래의 조약돌이 쥐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먼저 친구 선언을 하고, 두려울지라도 마주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으로. 이코마 타츠히토는 결국 답을 듣는 것을 잊었지만, 그날은 진 유이치가 바라는 과거가 되었다. 진 유이치가 바란 미래는 오늘이었다. 과거의 그가 움켜쥔 그가 원하는 것. 바라는 미래. 친구들.


그들은 진 유이치의 친구들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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