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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의로 포장되어 있다

  • gwachaeso
  • 3월 28일
  • 2분 분량

<WT>

아즈마, 하토하라 이야기



선의로 포장된 길을 걸어 지옥으로 향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건 그 길을 포장한 선의 또한 지옥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되리다. 길 위에 면포처럼 깔린 선의를 밟는다. 지옥으로 이어질 줄 알고도 펼쳐놓은 ‘의’이니 과연 ‘악’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는가? 지옥으로 이어지는 의다. 끝은 악에 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반드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반듯이. 줄을 서서 처형대 앞에 서는 꿈을 꾸는 위선자.


너는 어른이렷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법을 가르치니 행위의 의미를 너는 안다. 굽은 손가락을 당기는 것 하나로 손쉽게 손동작 하나로 타인을 해하는 법을 가르쳤더니 저는 도저히 그리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젓는 아이에게 너는 ‘너도 다르지 않다’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무기를 쏘는 것은 훌륭하지. 어렵지만 가능하게 했기에 더욱 훌륭하지. 하지만 아이야. 너는 지금 무장이 해제된 자 앞으로 너 대신 무기를 휘두를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니. 그렇게 바라며 그자가 설령 ‘죽지는 않을지라도’ 그자의 ‘육신’은 죽을 걸 알고 무장을 해제한 게 아니니. 그렇게는 말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 입을 다물기에 도리어 인격자로 불리는 남자의 손에 들리는 선의라는 이름의 면포가 있다. 아래에 놓인 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 알면서도 가르쳤고, 가르치면서도 감춘 속내론 ‘어차피’라고 생각한 스승이 그의 말로에 향할 길. 그 길에 서서 가로되 ‘어차피’ 너는 이 길을 끝까지 걷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너는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다. ‘피차 우리는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내 입으로 꺼낼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만하게도. 다르지. 다를 수밖에 없지. 위선에도 정도가 있지. 기다리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같을 리 없지. 선의로 포장된 길을 걷는 자와 선의를 길 위에 깔아두는 자가 같을 리 없지. 찢긴 면포 아래 드러난 길을 감추는 게 좋을지 내버려둬도 좋은지 고민하는 자가 저지른 원죄는 이제 와 수습할 길이 없나니 이제는 주선할 뿐이다. “하토하라 미라이라는 아이가 있다.” 선의로 포장된 길을 가리켜 걸으라 말한다. “니노미야 부대에서 저격수를 모집한다는구나.” 이 길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니. 그럼 걸을 수밖에.


그는 좋은 스승이었을까?

좋은 사람이었으면 제자를 두지 않았겠지.

좋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옥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지.

무엇이 있는데?

글쎄……. 가봐야 알겠지.


막간에 재미지는 이야기로, 동음어로 면포(面包)란 장기에서 포(包)를 궁(宮) 앞에 놓는 일을 말한다. 지열(枝劣)이란 가지가 줄기보다 못함을 의미한다. 그는 지극한 선의로 면포했으니 지열한 책임을 질 자에서 벗어난다. 아무도 그에게 책임을 지우지 못한다. 그도 평안하다. 지금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닦는 어른이란 대체로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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