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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제법 나쁘지 않은 나이스 킬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리퀘스트



사실은 당연한 거야. 사람을 쏘지 못하는 건. 여기는 당연하지 않은 인간들이 모여 있을 뿐이고, 그래서 사람을 쏘고 웃을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을 쏘지 못하는 네가 당연한 거야. 사람을 쏘고 괴로워하는 네가 당연한 거야…….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저는 뭐가 되겠는가? 손에 들린 총으로 망설임 없이 사람을 쏘는 저는. 우리는.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보더에 입대하고 포지션을 정할 적에 제법 나쁘지 않은 트리온 양을 가진 사람이 선택하기 좋은 포지션인 건너를 선택하면서 그 손에 처음으로 총을 쥐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날아가는 트리온 탄환으로 과녁을 꿰뚫었다. 통상탄 아스테로이드부터 하운드, 메테오라까지. 탄환 속도 같이 탄환의 모든 것을 세세히 조정하는 슈터가 아니다 보니 조정에는 제약이 있지만, 익숙해지면 누구보다 빠르게 속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건너의 장점이었고 이누카이는 곧 제가 건너로서 제법 나쁘지 않은 재능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법 나쁘지 않은 트리온 양에 제법 나쁘지 않은 재능. 이 정도면 제법 나쁘지도 않은 성격까지. A급 1위 아즈마 부대의 슈터였던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독립하여 만든 새 부대 니노미야 부대에 건너로 지원할 즈음에는 과녁뿐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도 제법 괜찮은 명중률을 갖게 된 이누카이였다. 이후 들어온 스나이퍼, 듣기론 니노미야가 아즈마 하루아키의 추천을 받아 스카우트했다는 스나이퍼 하토하라 미라이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제가 가진 ‘제법 나쁘지 않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지 않은 그이기도 했다. 표현 그대로, 제법 나쁘지 않은 모든 것이었다. 이누카이에게는. 그러나…….


“하토하라는 괜찮아?”

“지금은 잠들었어. 완전히 녹초가 돼서…….”


하토하라에게는 모든 것이 나쁜 모든 것이었다. 하토하라가 우타가와를 쏜 날, 쏜 순간, 이누카이는 하토하라가 드디어 사람을 쏠 수 있게 된 줄만 알고, 극복한 줄만 알고 조금은 놀라고, 또, 조금은 기뻐하며 그를 축하해 줄 생각을 했다. ‘하토하라?’ 그러나 놀란 히야미의 목소리와 함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더는 하토하라에게서 들려오지 않는 무전에 이누카이는 하토하라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동시에 자신 역시 그러함을 깨달았더랬다. ‘사람을 쏠 수 있게 됐다니, 축하해! 극복해 냈구나, 다행이야!’


“…….”


이누카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생각을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사실은 당연한 생각을. 사실은 저만 하고 있지 않은 생각을. 누군가는 자각하지 못하거나,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외면하거나, 타협한 생각들. 자각의 때가 이누카이에게도 왔을 때, 이누카이는 그 생각을 묻어두는 길을 택했다. 비록 하토하라에 의해 수시로 열리게 되는 서랍이지만……. 하토하라를 탓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당연한 거니까. 사람을 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여기는 당연하지 않은 인간들이 모여 있을 뿐이니까. 그래서 사람을 쏘고 웃을 수 있는 것뿐이니까. 사람을 쏘지 못하는 네가 당연한 거야. 사람을 쏘고 괴로워하는 네가 당연한 거야…….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서? 감정적인 위로가 도움이 될 상황인가? 동생을 찾기 위해, 구하기 위해, 원정 부대에 선발되기 위해 ‘그러니까 네가 사람을 쏘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강해지면 된다.’ 니노미야 대장이 내세운 기조를 따르면 그만이고 그게 하토하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방법이었다. 물론 하토하라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제법 나쁘지 않게 웃으며 사과하는 그에게, 괜찮아, A급 1위가 되면 되지. 이미 경험자도 있으니까. 안 그래요? 제법 나쁘지 않은 말을 건네면 될 뿐. 그러할진대.


그래도 이건 최악의 생일 선물이야, 하토하라.

제법 나쁘지 않은 모든 것에 들어갈 수 없어. 이건 모든 것이 나쁜 모든 것이니까.


사실은 당연할 것이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건. 여기는 규칙을 따르고자 하는 인간들이 모여 있으니, 사람을 쏘지 못하는 사람을 원정 부대로 ‘고려’는 해도 ‘결정’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사람을 쏘지 못하는 네가 당연할지라도. 그러니 사람을 쏘고 괴로워하는 너는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그럴 수밖에.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저는 뭐가 되겠는가? 저는. 우리는. 남겨진 우리는. 나는.


아마토리 치카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생각했다. 아마토리 치카는 하토하라 미라이와 같지 않았다. 하토하라에겐 모든 것이 나쁜 모든 것이었지만, 아마토리 치카에겐 그렇지 않았다. 아마토리 치카는 저희와 같은 사람이다. 당연하지 않은 인간 중 하나이다. 웃고 있진 않지만…… 괴로워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그런 인간. 그런 사람. 그렇게 말하면 손에 들린 총으로 망설임 없이 그를 겨누는 저 역시 그와 정말 같은 사람인가?


“나이스 킬.”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서랍을 연다. 다시 닫는다.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열쇠는…….


언제나 그 자리에. 하토하라 미라이가 준 마지막으로 준 생일 선물 옆에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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