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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유우 씨, 주말에 뭐해요?

  • gwachaeso
  • 4월 15일
  • 4분 분량

<WT>

이즈쿠니 타치렌 그리고 아즈마 씨



쿠니치카 유우는 이즈미 코헤이의 얼굴을 스윽 본 뒤 다시 화면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를 무시한 것은 아니고 마우스를 딸깍여 바탕화면 위로 달력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달력을 보며 이번주 주말의 일정을 떠올렸다. ‘이번주 주말? 게임?’ 보통은 그 말에 ‘그럼 일정이 없는 거네’라고 나이브하게 말할지도 모르나 쿠니치카에겐 조금 다르다. 다만 이 주는, 공대와의 약속은 없는 날이었다. 흔히 말해 자유 시간. 진정한 의미의 자유 시간이었다. 그러니 이즈미가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면 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 말에 이즈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렇다면 유우 씨, 주말에…….


“뭔데, 두 사람 주말에 만나서 놀아?”


타치카와 케이부터 제거합시다. 하마터면 그런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즈미는 그 잠시간에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려 히죽이는 타치카와를 보았다. 안 그래도 그가 끼어들까 봐 그가 없을 때를 노려 쿠니치카에게 말을 걸었는데 타이밍 나쁘게 그가 들어올 줄은 알지 못했다. 쿠니치카는 ‘그럴까?’ 하고 해맑게 웃을 뿐이었고 이즈미 코헤이는 세 번째 바퀴나 다름없는 제 대장을 바라보며 원망 섞인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뭐냐, 이즈미. 시선이 제법 불량하다?’ 이런 당신이니까, 분명 다 알면서 이리 나서서 껄렁대는 당신이니까! 하지만 이즈미에게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타치카와 대비책’을 미리 세워둔 그였다.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할 정도야? 당연히 그래야 할 상대다.


이즈미는 이미 조력자를 얻어놓은 상태였다. 그의 이름은 요네야 요스케다.


사실 요네야가 타치카와에게 무언가 직접 영향을 줄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우수한 어태커이긴 하지만 이즈미와 쿠니치카의 데이트에 끼어들어 방해하고 싶다는 이 인간의 간악한 흥미 추구의 방향을 돌릴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건 진 유이치나 가능할 일이지. 그러나 요네야는 성격이 좋았고, 이즈미와는 친구였으며,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이즈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성정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이즈미의 데이트에 전격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전부 사용하기로 하면서. 이런 친구 세상에 많지 않다. 이즈미 코헤이는 요네야 요스케를 좀 더 귀하게 여기도록.


아무튼 첫째는 부대의 스나이퍼를 이용한 방책이었다.


요네야가 속한 미와 부대는 A급 부대로선 유일하게 스나이퍼가 두 명 이상 포함된 부대였다. 보더의 스나이퍼들은 정기적으로 스나이퍼 모임을 가지며 기술을 공유하고 친분을 쌓았는데, 이에 따라 나라사카 토오루와 코데라 쇼헤이는 어렵지 않게 ‘한시적 신경 쇠약의 남자’에게 타치카와를 ‘고발’할 수 있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보다 일은 요네야가 다 하는 거 아냐? 요네야에겐 나중에 음료수를 사주며 원할 때까지 개인 랭크전을 해주는 것으로 딜을 한 이즈미는 휴대전화를 힐긋댔다. 코데라 쇼헤이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그쪽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그 전에 ‘한시적 신경 쇠약의 남자’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는 왜 한시적 신경 쇠약의 남자가 되었나? 그는 누구인가?


사실 학부생이 A를 받든 F를 받든 출석을 하든 지각을 하든 말든 조교가 신경 쓸 바는 전혀 아니었다. 그건 그 학생 성적이고 팔자지 나랑 무슨 상관이람? 보통은 그게 맞았다. 보통은 그게 맞는데, 문제는 교수의 성격이 좀 좋은 게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아즈마 군.’ 네?


“자네가 신경 좀 써 줘 봐. 이러다 또 학사 경고를 받으면 좀 곤란해.”


타치카와는 보더 제1위의 어태커로서 언론에도 제법 얼굴이 알려져 있었고 미카도 시립대학과 보더의 제휴로 생긴 보더 특별 전형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하나 그 전형으로 들어온 타치카와의 성적이 말이 안 나올 꼬락서니이니 부정 입학이 아닌데도 부정 입학이란 소리가 슬슬 기어 나오는 것이다. 우리 체면도 상하게 생겼어. 그해 학과장을 맡은 교수는 아즈마 하루아키의 지도 교수였고, 타치카와 케이의 지도 교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험 기간. 시―험―기―간. 3주도 남지 않았는데 이 수업에서라도 B 이상을 맡게 하라고요? 이런 개인 교습은 부정 아닙니까? 그런가? 그럼 다른 학생들도 같이 도와주면 되겠지. 그럼 문제없지? 잘 부탁하네, 아즈마 군. 늘 잘 해냈잖아. 안 그래?


“……네!”


그것이 그가 한시적 신경 쇠약에 걸린 이유이다. 누구인지는 다 나왔지만 그의 한 가닥 남은 정신줄을 존중하자면 아무튼 그랬다. 한편 부대 작전실의 문은 타치카와가 열고 들어오느라 열려 있었다. 평소라면 꼬리가 길다고 면박을 주었겠지만 오늘은 그 꼬리가 사달을 낼 것이기에 이즈미는 가만히 두었다. 열린 문 너머로 울린 타치카와의 목소리―자기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는 곧 ‘네가 지금 그럴 시간이냐’라고 분노한 조교의 손에 끝장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복도를 또각또각 울리던 발소리가 멈췄다. 어, 잠깐만. 또각또각?


“타치카와 군.”


츠키미 렌이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서.


“츠키미?”


대번에 목소리를 알아듣고 몸을 돌린 타치카와가 이름을 불렀다. 쿠니치카는 아무렇지 않게 츠키미에게 인사를 건네고 적잖게 당황한 이즈미 코헤이도―그야 20대 중반의 아저씨가 나올 줄 알았는데 10대 후반의 여성이 나오면 누구나 당황하겠지―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츠키미 씨. 츠키미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준 뒤 다시 타치카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주말에 시간 있어?”

“어……. 응.”


‘그럼 아껴 써.’라고 말했다면 타치카와의 표정이 참으로 볼만했겠으나 시간 있다면 저에게 내어주지 않겠냐고 말하는 츠키미 렌의, 그러니까 난생 처음으로 그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은 타치카와의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의아해하고 의심스러워하고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이즈미는 어떻게 된 건지 정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자의 간악한 흥미 추구의 방향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츠키미. 얘기 좀 해. 무슨 일이야?’ 이젠 아예 작전실 밖으로 나가는 타치카와에 속으로 만세한 이즈미 코헤이는 그에게서 완전히 신경을 끄고 쿠니치카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달력을 바라보고 있던 쿠니치카가 아, 하고 깨닫는 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안 되겠다.”

“예?”

“그날 언약식 하러 가기로 했어. 미안.”

“……예?”


아무리 자주 잊는다지만 이걸 잊어버리다니 큰일 날 뻔했다고, 덕분에 기억해 냈다고 고마움을 표하는 쿠니치카에 미소 지은 채로 돌처럼 굳어버린 이즈미의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약속 지켜라, 탄환 바보!’ 이즈미의 지갑은 무엇을 위해 희생됐는가?



“정말 고맙다, 츠키미.”

“아뇨, 아즈마 씨. 별일도 아닌걸요.”


이해하지 못할 거면 외워서 쑤셔 박으라는 엄명에 시험 범위 약 150페이지를 필사하기 시작한 타치카와를 앞에 두고 츠키미와 아즈마는 차를 따라마시며 하하 웃었다. 학교에선 자꾸 도망만 치고, 요즘엔 마작도 치러 오지 않아 붙잡기가 영 성가셨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좀 편안해 보였다. 츠키미 렌은 간만에 스승과 함께 차를 마셔 기쁘다며 웃었고, 아즈마도 웃었다. 타치카와는, 뭐.


타치카와는 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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