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결별
- gwachaeso
- 4월 7일
- 4분 분량
<HQ!!>
오이이와
어떤 질문과 대답에 대한 이야기
오이카와가 너 좋아했던 거 알아?
그 말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와이즈미에겐 평생을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질문들이 있었다. 공백은 공평하게 그 애에게도, 이와이즈미에게도 있었고, 이와이즈미는 오랫동안 제 공백을 채우길 주저했지만 어느 해인가엔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그 안에 적어넣었다. 그렇게 이와이즈미의 공백은 사라졌지만 그 애의 공백은 여전히 그 애에게 남았다. 그 애의 공백은 오롯이 그 애의 몫. 이와이즈미는 그 공백을 채울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아니었다. 사실 그 애의 공백이라고는 했지만 이름표가 그 애의 것이었을 뿐 둘 모두 이와이즈미의 공백이었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멋대로 그 애에게 미뤄둔 까닭은 이와이즈미 자신은 결코 그 대답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애만이 이와이즈미에게 대답해 줄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애가 대답해 주지 않은 지금 자신은 그 답을 알 수 없다고. 지금껏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착각하며 살기로 했기에 그렇게 살았다. 실은 지금처럼, 제삼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임을 알면서도 얄팍한 착각을 계속하며 외면했다. 나는 몰라. 앞으로도 모를 거야.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거야. 그리 뇌까리면서.
그리하여 오늘날 이와이즈미는 지난날 그가 술에 취해 저지른 행동의 업보를 치러야 했다. 언젠가 오리라 생각한 그날이 오늘인가 하였다. 잔을 채우는 손에 눈을 고정한 그 애와 이와이즈미의 공통된 친구는 이와이즈미를 보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이와이즈미를 보지 않았기에 그날에서야 이와이즈미에게 그 말을 꺼냈다. 그에게도 오랫동안 감춰온 사실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털어놓고 싶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결심은 그동안 단단히 맞물려 실수로라도 새 나오지 않도록 그 입을 단속했지만, 술은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맞물린 틈을 벌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입 밖으로 꺼내지는 그 말. 거기엔 ‘너는 알아야 한다’라는 어떤 무의식에 가까운 의지도 담겨 있다. 너는 알아야지. 너는…….
오이카와가 너 좋아했잖아.
너는 그 사실을 알아야지.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정말이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정말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데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지 못한 친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옆에 앉은 또 다른 친구는 보다 못해 야, 야! 하면서 다급히 녀석을 말리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말은 이미 뱉어졌고 이와이즈미는 영원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한다.
……미안.
뒤늦게 고개를 들어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확인한 친구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지만 앞서 말했듯이 때는 늦었다. 망했군. 혀를 찬 또 다른 친구는 술을 더 주문하기 위해 종업원을 부르며 손을 들었다. 건너편 테이블을 지나가는 종업원이 볼 수 있도록 몸까지 돌려가며 손을 번쩍 드는데, 실은 그 옆과 앞에 앉은 그들을 외면하기 위해서인 걸 모르는 이가 여긴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이와이즈미는 묵묵히 잔을 비웠다. 그러지 않으면 저 역시 제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공백에 채운 답을 말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다른 말이라도. 두 경우 다 원치 않은 이와이즈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그러진 그대로, 찌푸린 그대로, 고개는 떨어뜨리지 않고, 그러나…….
알고 싶지 않았어.
정말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와이즈미. 그러니까…….
이와이즈미는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 없이 그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곁에 있었다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곁에 없었기에 그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정말, 정말로, 그 말을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널 좋아했을까?
이와이즈미는 오랫동안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질문이 그 안에 생겨났을 때는 그 애가 그 곁에 없었을 때였다. 그래서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발맞춰 길을 걸으며, 수업을 듣고, 부 활동을 하고, 그러면 금방 알았을지도 모르는 정답을 떠올리고도 오랫동안 확신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던 이와이즈미는 추억 속의 그 애를 추억하며 답을 헤매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던 긴 시간이 흘러서야 마침내, 조심히 공백에 그 답을 적어넣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친구가 말을 이으려다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보고 잇지 못한 말과 같았다. 그리고……. 그리고? 너도 좋아했잖아. 너도. 너도……. 아, 그래. 그것이 이와이즈미가 채운 공백의, 빈칸에 들어갈 정답이었다. 나는 널 좋아했을까? 그 질문의 답. 나는 널……. 좋아했어. 오이카와. 너를 좋아했어. 오이카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다듬어낸 마음. 감정. 대답.
그런데 너는 어땠을까.
너는 날 좋아했을까?
그건 이와이즈미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이와이즈미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추측을 하든 그 애에게서 확답을 듣지 못하는 이상 모든 답은 말 그대로 추측으로만 머무를 수 있었다. 그동안 추억 속 그 애가 환히 웃는다. 추측 속 그 애가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하는데, 이와이즈미에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실은, 목소리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이와이즈미는 ‘그러니까 난 몰라.’라고 말해왔다, 지금껏. 편리하게 내세운 변명이 아니었다. 정말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 입 모양을 읽어내리면. 입 모양도 아니지, 시선을 읽어버리면, 꼭 저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만 같아서.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순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만하게 군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타인의 감정, 그것도 저를 향한 감정, 그것도 제가 바라는 감정을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마음을 신중히 기울여도 그것만은 결코 가늠할 수 없다.
너는 날 좋아했을까…….
너는 날…….
오이카와가 너 좋아했던 거 알아?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이유도 알았다. 이와이즈미는. 평생을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까닭도. 제삼자의 입에서 언제든 쉬이 밝혀질 수 있는 진실이었음에도 얄팍한 착각을 계속하며 외면했던 까닭도. 먼저 묻지 않았던 까닭도. 제가 바라는 감정이었음에도 정녕 바라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아니오, 하고 고개 저을 이유를. 왜냐면 말이야. 그렇다면 말이야. 우리는 말이야. 우리는…….
서로 좋아했던 게 되잖아. 우리는.
서로 좋아하면서도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뜻이 되잖아. 우리는.
서로 좋아했는데도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결국엔 받아들일 현실이라도 마주한 순간엔 아플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아프고 말 현실이라면 적어도 네가 있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네가 있다면 이리 아프진 않을 현실이겠지. 네가 없기에 이런 것이겠지. 사실이든 진실이든 결국 그 앞에 놓인 건 현실이었고 현실에 남은 건 이와이즈미였고 이와이즈미는 어느새 채워진 제 잔을 또다시 묵묵히 비워냈다. 천천히 마셔. 말리지 않은 친구들을 앞에 두고 앉은 채 한 잔을, 또 한 잔을.
어느 해인가 그는 지금과 같은 술자리에서 시간을 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떠나는 그에게 떠나지 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떠나는 것의 의미를 알기에, 배웅하러 나선 저 자신을 그는 부정하고 지워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했다. 부정하고 지워내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다. 문제는 그러하기에 지금 같은 순간이 오고 말았다는 사실이겠다. 나는 널 좋아했을까. 너는 날 좋아했을까. 나는 널 좋아했는데. 너는 날…….
너도 날…….
좋아해, 이와쨩!
어느 해인가, 네가 날 보며 웃었던 어느 날이 생각나 하루 종일 웃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낸 하루가 내게 있었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그 사실을 평생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문다. 아무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맞물린 틈을 벌리지 못하도록. 실수로라도 새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제 입을 걸어 잠근다. 결심한다. 결단을 내린다. 아. 완벽한.
결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