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편련
- gwachaeso
- 4월 7일
- 7분 분량
<HQ!!>
사쿠우시
중2중3에서 중3고1로 넘어가는 겨울 이야기
‘한 살 차이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만 계절은 겨울이었고 사쿠사 키요오미는 창밖으로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싣고 한참을 달려온 버스는 이제 속도를 완전히 줄이고 빈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돌고 있었으니 가만히 있어도 사선으로 눈이 날릴 만큼 바람이 불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어차피 경기는 실내에서 진행되니 야외 환경에 크게 민감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는 더욱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사쿠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점도 그 지점에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다른 애들보다 먼저 씻고 나와야겠다.’ 그 생각은 문득 든 생각이 아니며 눈발을 바라보는 내내 들던 생각, 일찌감치 내린 결정이었다. “키요오미, 무슨 생각해?” 그렇다고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바람이 많이 분다는 생각.” 그렇게도 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하. 그렇기엔 평소보다 더 뚱한 얼굴인걸.” 그 말에는 조금 의아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응.”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더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 그러니 그것은 그 말에 평소와 다름없이, 결론을 얻기 전엔 어중간하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 탓에 거듭하게 된 ‘생각’에서 도출해 낸 생각, 감상, 단상이었다. 한 살 차이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결론으로 매듭짓기에는 그 형태가 뚜렷하지 못한 탓에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다. 지도교사의 지시에 따라 버스가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는 안전띠를 풀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아직도 자고 있냐며 양옆 앞뒤에 앉은 친구들을 깨우고 풀어놓은 가방을 다시 싸매는 등 ‘내릴 준비’를 조용히 완수하기엔 아직 어린 탓에 소란스러운 버스 안에서 이러한 사쿠사의 생각은 홀로 고요하고 괴괴했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풀 생각 따위 처음부터 하지 않은 덕에 얻게 된 여유는 그에게 그러한 상념에 잠길 시간을 주었다. ‘시간이라.’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만 계절은 어느새 겨울에 다다라 있었고 사쿠사 키요오미는 창밖으로 날리는 눈발을, 정말로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나? 눈발 사이로 스쳐 지나간, 이미 주차된, 하얀 버스 앞에 모여 서 있는 학생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진 않았던가? ‘한 살 차이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차이는 대상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였다. 사쿠사 키요오미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은 겨울이었다. 겨울이 끝나면 그는 3학년으로 진급하게 될 것이다. 3년제인 중학교에서 최고 학년 곧 마지막 학년의 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는…….
*
애매하다고 하여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애매함은 조금 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맞붙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대회 본선에서 마주친 상대였다. 여름에 이어 겨울까지, 맞닥뜨릴 기회라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게 있었고 이미 소진한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고 돌아가기 전 잠시 만나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위해 사쿠사는 제 사촌인 코모리가 특별히 더 신경을 써주었음을 알고 있었다. 평소 그렇게까지 가깝게 지내진 아니해도 대회 마지막 경기라는 특성상 유대감이 치솟은 아이들이 사쿠사를 붙잡는 걸 솜씨 좋게 무마해 준 코모리는 예전에도 ‘우시와카랑 있으면 꽤 즐거워 보인다.’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저 역시 그 말을 결국 부정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 낸다. 맞붙으면 확실히 즐겁다. 저와 다른 회전에도 눈이 가고, 경기장 밖에서도.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확실히.
하지만 그것도 올해까지다. 이유는 너무 당연해서 따로 설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와카토시 군은 그대로 시라토리자와 고등부로 진학하는 거야?”
“그래.”
한 살 차이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학교 대회가 고등학교 대회와 따로 열리는 것은 조금도 애매하지 않고 당연하기만 하다. 특별히 유급 사유가 존재하지 않기에 우시지마는 다가오는 3월 예정대로 중학교를 졸업, 4월부턴 중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 말인즉슨 이제 1년 동안은 사쿠사와 우시지마가 정식 경기에서 같은 코트를 밟을 일은 없다는 뜻이 되었고 동일하지 않은 대회 일정상 만날 기회도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 봤자 1년이지만, 1년이라도 어쩐지 심란했다. 미묘하게 신경 쓰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표정이 어둡다, 사쿠사.’ 우시지마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그래?’ 그런데 왜일까. 왜인지, 사쿠사는 우시지마의 얼굴에도 미묘하게 그늘이 져 있는 걸 눈치챘다. 매듭짓기에는 그 형태가 뚜렷하지 못한 감정은 아직 어린 그들의 손에 쉬이 잡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묻지 않으면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조금, 자신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와카토시 군. 사쿠사. 와카토시 군 얼굴도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무슨 일 있어?”
“사실,”
“우시지마!”
그 순간 제삼자의 목소리가 우시지마를 불러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우시지마를 부른 건 그들 또래의 학생이었고 멀찍이서부터 손을 흔들며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한 명뿐이었으면 마저 이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그 뒤로 우르르 따라 몰려오는 학생들에 이어지지 못한 뒷말은 무참히 스러지고 말았다.
“뭐야,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어?” “감독님이 다들 모이래. 이제 집 간다고.” “뭐야, 누구? 오코조 중학교?” “우시와카 친구야?” “2학년?” “우시와카 다른 학교에도 친구 있었어?” “우시지마! 너도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코치님이 사주신대!” “야, 옷에 흘리잖아!” “칠칠찮게.” “집 가면 몇 시지?” “지금 몇 시야?”
그들은 모두 우시지마와 같은 흰색에 보라색 줄이 그어진 저지를 입고 있었고 등에는 시라토리자와라고 적혀 있었다. 우시지마에겐 아직 사쿠사의 코모리만큼 눈치 빠른 친구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막아줄 친구가 없었고, 대신 딱 그 나이대의, 짓궂은 아이들이 잔뜩 포진하여 있었다. 거기다.
“우시와카 얼굴이 어두운 이유?”
사쿠사의 질문은 또 어떻게 듣고 만 건지.
“차여서 그렇잖아, 차여서!”
“…….”
‘아무튼 우리 먼저 갈게! 너도 얼른 뛰어와!’ 순식간에 주변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그들은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주변을 뒤흔든 뒤 똑같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으로 모습을 감췄다. 먼저 돌아가는 그들을 눈으로 배웅한 뒤 다시 사쿠사를 돌아보았을 때 우시지마는 아직 그가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실로 사실이었다. 사쿠사는 딱 보아도 저희를 놀리려 든 이들에게 조금의 무게도 달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건 본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뿐이었고, 따라서 사쿠사는 우시지마가 그들의 말에 반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반박이라고? 그렇지만. 그렇잖아?
그렇지만…….
“거절당한 것은 사실이다.”
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온 대답에 사쿠사는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표정이 어두운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 말에는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냐,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어.’ ‘그런가.’ 사쿠사는 날리는 눈발을, 눈발 사이로 다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아서 입 속살을 조금 깨물었다. 왜? 왜일까. 멀리, 주차장에 주차된 무수히 많은 버스 중 어느 하얀 버스 앞에는 눈발처럼 흰 옷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서 있었다. 사쿠사의 눈에도 든 것을 우시지마가 보지 못했을 리는 없으므로 그는 이내 곧 작별을 고했다. ‘이제 가 봐야겠다.’ ‘응. 나도.’ 거짓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멀리 저와 같은 저지를 입은 코모리가 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촌을 위해 힘써준 사촌을 위해 저 역시 서둘러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지.”
“잘 가. 와카토시 군.”
사쿠사는 계단을 내려가는 우시지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더 있는 것 같아.’ 문득 그 애의 말을 회상하고 만 계절은 한참 전부터 겨울이었고, ‘맞아. 마음에 안 들어.’하고 동의한 나날 또한 여전히 겨울에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 도출해 낸 생각, 감상, 단상에서 그는 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애매하다고 하여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애매함은 조금 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반박하지 않는다 하여 마음에 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수긍은 아무래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매듭짓기에는 아직 그 형태가 뚜렷하지 못한 감정이 그 이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결론을 얻기 전엔 어중간하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 탓에 거듭하게 되는 것에는 감정도 포함되는가? 버스에 오른 뒤로도 눈발은 그치지 않았고 사쿠사는 창밖으로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나? 눈발 사이로 스쳐 지나간, 이미 주차된, 하얀 버스 앞에 모여 서 있는 학생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진 않았던가?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의 버스는 먼저 떠났으므로 만약 사쿠사의 눈에 그들이 닿았다면 그건 사쿠사 본인이 보길 원하는 걸 사쿠사 본인의 눈이 그 자리에 놓은 것이 분명할 터였다. 그러니 다시 말해 보자면 사쿠사는 그들을 보길 원하였는가? 아니, 좀 더 좁히는 게 옳겠지. 좀 더 좁히고, 조이고, 줄이 죽죽 져 보이는 눈발 사이로 보길 원한 것은 그 하나뿐이니. 왜?
문득 시작된 줄 안 고민은 반년을 가고 만다.
*
그들이 다시 만나는 날은 반년이 꼬박 지난 후에야 올 수 있었다. 전국대회 본선 일정 중 중등부와 고등부의 일정이 겹친 날은 딱 하루뿐이었고, 그 하루에 중학교 3학년으로 진급한 사쿠사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한 우시지마와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또한, 노력했다. 마지막 해까지 지역 대표로 출전한 그는 그와 마찬가지인 우시지마에게 다가갔고, 우시지마도 그를 알아보았다. 또 보게 되었다는 말에 그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노력했으니까.”
“그래.”
그렇지만 운도 좋았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이날도 운이 좋았기에 만날 수 있던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쿠사에겐 우시지마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따로이 존재하였으니, 그리하여 다른 날보다 더욱이 더 노력한 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우시지마에게 강조하고 싶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있잖아. 와카토시 군.’ 6개월 전, 그에겐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이 새로이 생긴 바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6개월 동안 그는 거듭하여 생각하며 사려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뒤 여름이 시작된 날에야 도출해 낸 생각, 감상, 단상에서 그는 멈춰 섰다. ‘대답해 줄 수 있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좋아.”
어중간하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 탓에 거듭하게 되는 것에는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매듭짓기에는 그 형태가 뚜렷하지 못했던 감정도 이젠 그때만큼 애매하진 않았다. 그 모호했던 감정들이 이제는 조금 더 확실해졌으니, 역시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싫었던 것 같다.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그렇지만 그걸 밝히는 것까지 오늘의 몫은 아니라서, 오늘은 단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긴장한 손바닥에 땀방울을 맺히게 할 수 있었다. 사쿠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러나 조금 경직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시선은 멀리, 아스팔트 위로 아른아른 움직이는 공기로 향하는 일 없이 똑바로. 앞에 선 사람의 눈을 응시하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조금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린 날이기에 더욱 오기를 내어 물을 수 있는 질문이리다.
“……어떤 사람이었어?”
“사람?”
“와카토시 군을 거절한 사람. 저번 겨울에 말했던 사람 말이야.”
그 말에 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오는 대답을 사쿠사는 기다렸다. 사쿠사는.
“좋은 선수지.”
“그렇구나…… 어?”
“성격은 나쁘지만 실력은 좋은 선수였어. 다만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단점이었지. 이번 예선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그 단점에 발목 잡혔고.”
“어, 그래?”
“이번 대회도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던 단점이…….”
“잠깐만, 와카토시 군. 잠깐만.”
“왜 그러지?”
“계속 배구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만.”
“배구부야?”
“당연히.”
“그럼 차였다는 건?”
“시라토리자와로 진학하라고 권유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렇구나.”
“사쿠사?”
“그렇구나…….”
문득 시작된 줄 안 고민은 반년을 갔다. 오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뒤 여름이 시작된 날에야 도출해 낸 생각, 감상, 단상에 그는 주저앉았다. 지난 반년 동안 뭉치고 뭉쳐 형태를 만든 감정 또한 그를 따랐다. 어중간하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는 탓에 거듭하게 되는 것에는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고, 정제되어 정체를 밝힌 감정은 더 이상 그에게 ‘왜?’라고 묻지 않았다. 좀 더 좁히고, 조이고, 줄이 죽죽 져 보이는 마음 사이로 원한 것은 이 하나뿐이니. 하나밖에 없으니.
“어디 아픈 건가?”
“아니, 괜찮아.”
진짜 괜찮아. 정말 괜찮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제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싫었던 것, 역시. 눈에 들길 원하는 이는, 따라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여 저를 내려다보는 탓에 올려다보는 시야에 가득했다. 오늘의 몫이 아니라서 밝히지 않은 감정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키요오미, 무슨 생각해?’ 그렇다고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많이 덥다는 생각.’ 그렇게는 말하지 않겠다만, ‘하하. 그야 여름인걸. 그래도 오늘은 조금 시원하지 않아?’ 그 말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
6개월 전. 아무리 저 외엔 아무도 없는 빈집이란 걸 알고 하는 짓거리다만 불이 나도록 초인종을 누르는 친구 놈에 이와이즈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문을 열었다. 이 미친놈이 진짜……. 정원에 쌓인 눈 좀 그러모으다가 산 채로 파묻고 무덤을 만들어버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와이즈미였지만,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내민 친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아주 성이 나 있던 탓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냐.”
“우리 당장 교복 맞추러 가자!”
“다음 주에 가기로 했잖아?”
“아니! 지금 당장 이 자식에게 내 확고한 진학 의지를 보여줘야겠어!”
“무슨 소리야?”
고등학교 올라가기만 해 봐, 아주 철저하게 밟아줄 거라고! 결국 그가 내민 휴대전화 속 메일의 내용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며 열었던 대문을 다시 닫았다. 잠깐, 이와쨩!? 안 갈 거야!? 나 혼자 가!?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뒤 그를 돌아보았다. 야. 오이카와. 넵.
“지갑이 있어야 교복을 살 거 아냐.”
일시 정지 한 채로 두고 온 고질라 애니메이션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볼일을 해치우러 갈 때였다. 가자……! 타도 시라토리자와……! 타도 우시와카……!
두고 보라지!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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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말
보낸 이 : 우시지마 와카토시
받는 이 : 오이카와 토오루
메일 내용 : 시라토리자와 입학생 모집 공고
답장 : 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