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방황
- gwachaeso
- 3월 28일
- 2분 분량
<WT>
리퀘스트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 돌아가시던 날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쿠가 유마’는 아버지 ‘쿠가 유고’의 이름과 같은 방식으로 작명되었는데, 이름 앞에 부계 성이 붙는 작명 방식은 네이버후드의 수많은 나라에서 공통되지는 않은 작명법이었다. 아버지 쿠가 유고를 따라 이 별 저 별 떠돌아다니며 용병 생활을 시작한 이래 쿠가 유마는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과 만나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쿠가 유마처럼 성을 가지는 사람도, 그중에서도 모계 성을 따르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종종, ‘쿠가’는 어머니의 성이니? 물어보면, ‘아니. 아버지의 성이야.’ 답하는 유마였지만, 실로 그러한지는 그 또한 정확히 알지는 못했더랬다. ‘쿠가’는 정말 어머니의 성이 아닌지.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과감하게 의문을 품자면 살아계시긴 하는지.
“할 말이 잔뜩 있는 얼굴인데.”
오래간만에 야영을 하게 된 밤이었다. 가운데 피워둔 모닥불의 불그스름한 빛이 쿠가 유고의 얼굴도 붉게 그을리고 있는 밤. 쿠가 유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닐걸. 아버지한테 할 말 없거든, 난. 그러나 쿠가 유고는 언제나 ‘발뺌’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사이드 이펙트로 인해서 더욱이.
“시시한 거짓말을 하는구나. 유마.”
그러니 일일이 발끈할 필요는 없었다. 쿠가 유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쿠가 유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거짓말 아냐. 말하지 않을 거니까. 왜? 대답해 주지 않을 걸 아니까. 그러니까 그럴 만한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경고 또는 예고였다. 다만 쿠가 유마가 어찌나 단호하게 잘라 말했는지 쿠가 유고에게서는 금방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심한 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 쿠가 유고는 쿠가 유마에게 언제나 재미있고 독특한 사람이었지만 그 말은 흔히 통용되는 ‘어른스럽다’라는 표현과 대치되기도 했다. 물론 쿠가 유고는 어른이었다. 어른이기에 대답을 미루고 침묵을 지키며 입을 다무는 것도 있으리다. 쿠가 유마는 그에 비하면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였지만 그런 그를 이해할 만큼은 자란 애송이였다. 이에 화제를 돌릴 만큼. 아니? 실은 핵심을 가운데 두고 이번엔 다른 질문 카드를 뽑았을 뿐이었다. 아버지. 왜. 이번엔 내가 대답해 줄 것 같아서 물어? 아니. 아니지만 그냥 물어보려고. 어디 한 번 물어봐. 응.
“우리는 도망 다니는 거야?”
“…….’
쿠가 유마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정착한 적 없이 떠돌기만 했다. 오래 있었다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다른 나라로, 다른 별로. 그때마다 지도를 갱신하는 쿠가 유고이긴 했으나, 네이버후드를 아우르는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쿠가 유고의 삶의 목표로 보이지는 아니했다. 그저, 할 수 있기에 하는 기분이랄까. 누군가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기록하는 느낌이랄까. 알 수 없었다. 목적에 관해 캐물은 적은 없었다. 돌아가시던 날까지, 한 번도 묻지 못했기에 쿠가 유마는 한 번도 그 이유에 관해 듣지 못했다.
물어보는 게 나았으려나. 하지만 대답해 주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일찍이 쿠가 유고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입에선 검은 입김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게 그가 가진 사이드 이펙트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그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면, 자기 입에서 검은 입김이 나온다고 상상해 보면 다소 꺼릴 법하기도 해서 그런가, 거짓말을 하느니 입을 다물어버리는 경우의 수도 없지 않았다. 모른다. 그래도 역시 물어보는 게 나았으려나. 어머니에 관해서도. 그들의 방황에 관해서도.
하얀 입김조차 나오지 않게 된 흰 머리의 소년이 별들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바라보다 옥상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겨울이지만 춥지는 않았다. 다행일까.
추운 게 나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