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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신의 눈 아래서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리퀘스트



거대한 지하 광장에는 앞으로 수백 년을 자전할 신시대의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태양이라는 말 외에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압도하는 존재 앞에서 부복하며 경외하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어린 날에 읽은 지식백과가 돌연 회상된다. 상어의 코에는 전류를 감지하는 기관이 있어서 건전지 같은 배터리를 들고 가면 안전하다는 설명이 실려 있었는데,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피부로도 느껴지는 거대한 트리온, 눈앞에 있는 ‘트리거’의 존재감 때문이다. 찌릿할까, 아님, 저린 걸까? ‘트리거’? 저것도 과연 지금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과 같은 트리거라고 할 수 있는가? 별을 책임지는 ‘마더 트리거’라고 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이름이 더 잘 어울리리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


신.


그리고…….


“주군.”


그것과 동화되기 전, 그것에 동화된 사람이 가졌던 이름을 휴스는 알고 있다. 미쿠모 오사무는 혀를 꽉 깨물었다. 아마토리 치카는 불안한 눈으로 휴스를 바라보고, 쿠가 유마는 여느 때와 같이 고요한 눈으로 그들의 뒤를 지킨다. 그것에 다가가는 휴스 또한. 그리고 휴스는 알리다. 그들은…….


너무 늦었다.

너무 늦어서…….


마더 트리거와 신의 동화는 비가역적이었다. 시작된 이상 돌이킬 수 없었고 막을 길도 없었다. 돌이킬 수 없고 막아 세울 수 없는 자에게서 휴스는 눈을 떼지 못하고, 미쿠모 오사무 또한 눈동자를 굴려 그것과 휴스에 번갈아 시선을 주며 손에 쥔 레이거스트에 힘을 준다. 그의 시선이 휴스에게 고정된 채로 멈췄을 때는 그에게, 타마코마 제2 부대의 대장인 그에게 외부로부터의 트리온 무전이 전달되었을 때였다. 그곳으로 다가가는 적의 접근을 알린 상대는 그가 그들을 그 자리에서 안전히 빼내 올 수 있는 기회가 지금뿐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후유시마 부대의 대장인 후유시마 신지였다. ‘오래 못 버텨.’ 특수공작원, 트래퍼인 그는 미쿠모 대장의 신호를 받으면 즉시 원격 텔레포트를 동작할 것과 이를 준비할 것을 이르지만, 미쿠모 오사무는 그에게 잠시간의 말미를 요청한다.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오래 버티지 못하리란 말은 앞서 전했기 때문에 두 번은 전하지 않는다. ‘잘 판단해라. 미쿠모.’ ‘예.’ 무전을 끊고 여전히 그것 앞에 선 휴스를 보지만, 미쿠모 오사무보다 먼저 입을 연 휴스로 인해 미쿠모 오사무는 순서를 뺏긴다.


“두고 가라.”

“휴스……!”

“나는 가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반발할 수밖에 없는 미쿠모 오사무의 언성이 높아지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휴스의 부동심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동시에 뒤에 선 쿠가 유마가 어깨를 굳히며 자세를 잡는다. 이제는 쿠가 유마도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적이 가까이 다가왔다. 스콜피온을 잡은 양손이 넓게 벌려지고 발 사이의 간격 또한 균형 있게 잡힐 때, 돌연히, 잇따른 쿵 소리와 함께 그들의 등 뒤로, 천장과 바닥에서 벽들이 솟아나 출구를 막는다. ‘에스쿠도……!’ 얼핏 보면 그들을 이곳에 고립시킨 것 같은 형세지만 텔레포트로 이곳을 빠져나갈 그들에겐 이곳으로 오는 적들을 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당연히.


이만한 에스쿠도를 한 번에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두 사람밖에 없다.

그러나 아마토리 치카는 에스쿠도를 장비하지 않으므로, 한 사람밖에 있을 수 없다.


“돌아가라.”


‘후유시마가 텔레포트로 이동시키려는 걸 테지.’ 틀림이 없는 말에 미쿠모 오사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젓는다.


“맞아. 하지만 너와 함께 갈 거야. 우리는.”

“따르지 않겠다.”

“합리적인 명령이면 따르겠다고 했잖아. 지금 그렇지 못한 선택을 하고 있는 건 너야. 휴스.”


만약 그가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쿠가 유마에게 들키지 않을 리가 없겠다. 그러므로 휴스는 그러지 않는 길을 택한다. ‘시시한 거짓말을 하는구나, 휴스.’ 그런 말을 듣는 걸 반길 이는 없을 테니,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하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올곧기 그지없다. 올곧게 이곳까지 함께한 이들을 응시한다.


“알고 있다.”

“…….”


그러면 결국 내릴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리다. 일찍이 원정선에 합류한 이래로 휴스는 두 개의 트리거를 상시 소유하고 있었으니 하나는 보더에서 지급받은 노말 트리거요, 다른 하나는 그가 ‘이곳’에서 소유했던 람비리스였다. 미덴의 싸움법은 여러 개의 트리거를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 ‘어떻게 할까, 오사무.’ 유마의 목소리가 트리온 통신으로 전해져 왔을 때, 미쿠모 오사무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휴스를 제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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