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는 무엇으로 사는가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WT>
사담님 생일 선물
____는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신은 천사에게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으라고 명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의 명령을 어겨 땅으로 추락했던 천사는 구두 장인 밑에서 일하며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은 후 다시 승천할 기회를 얻는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 사람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코나미 키리에는 독후감 숙제를 하다 말고 제 앞자리에 앉아 수학 숙제를 풀고 있는 진 유이치를 힐끗대다 책을 놓는다. 코나미 키리에 앞에는 자기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소년이 버젓이 앉아 있다. 자기 미래뿐만이 아니다. 마음만 내키면 코나미 키리에의 미래도 훤하게 볼 수 있는 소녀이다. 그러니 두 번째 질문의 답은 그 앞에서 의미를 잃었고, 나머지 질문의 답 또한 의미를 잃지 않으리란 보장을 잃는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연 사랑이 있는가? 사람은 정말로 사랑으로 사는가? 모든 사람이 그러한가?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없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나. TV만 보아도 그런 것을. 신문만 읽어도 알 수 있는 것을.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기만 해도 뻔한 것을. 소년의 눈에는 보일 것을.
그러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것을 믿기에 화평을 말하고 평화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코나미 키리에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이들의 일원이고, 그들이 믿는 가치를 그도 믿는다. 레프 톨스토이는 트리온이나 트리거나 네이버 같은 건 몰랐겠지. 그가 말하는 사랑이나 가치도 오늘날 코나미 키리에에 의해 해석되는 사랑과 가치와는 다르겠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는 독후감에 그러한 사정을 구구절절 길게 적지는 않기로 한다. 우리는 비밀 조직이니까! 그리고, 그의 주장도 코나미 키리에의 생각과 아주 다르지는 않으니까. 않아야 할 테니까.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그렇진 않으리라 믿고 나아가는 우리들이니까. 그러니 코나미 키리에의 안에도 사랑이 있을지어다. 또한 다른 이들의 마음속도 그럴지어다. 그러니, 당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질문에,
그날 카라스마 쿄스케가 평소와 다른 길로 하교하는 코나미 키리에를 목격한 것은 우연이었다. 코나미 키리에는 보통 하교 후 곧장 보더로 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보더, 타마코마 지부는 그의 집이었고, 모두가 있는 집이었고, 모두가 기다리는 집이었다. 카라스마 쿄스케 또한 코나미 키리에의 모두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으니 그곳은 그의 집(그곳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진 않아도)이었고 그 또한 코나미 키리에의 가족이기도 하였다. 그건 코나미 키리에가 카라스마 쿄스케의 가족인가 하는 것과 별개로 분리되는 사실이지만, 카라스마 쿄스케가 코나미 키리에를 어떻게 여기고 있든 상관없이 코나미 키리에가 그를 가족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이라고, 적어도 카라스마 쿄스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그들의 관계는 그러하다고. 그리고 그건 그가 코나미 키리에와의 어떤 관계를 바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별개이고, 사실이라고. 적어도 카라스마 쿄스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생각 중에 발견한 코나미 키리에였다. 평소라면 마주하지 않았을 하굣길에서 그가 코나미 키리에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코나미 키리에가 평소와 다른 길로 하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라스마 쿄스케는 무엇을 했냐면, 아니, 하지 않았냐면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코나미 선배.”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기에 당당하게 코나미 키리에를 불렀다. 마주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사람이 말을 걸어왔으니 그에 따른 당연한 반응으로 코나미 키리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토리마루!?’ ‘어디 가세요?’ 타마코마 지부로 가는 길이라고 거짓말하기엔 갈림길을 지나친 지 오래다. 함께 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예를 들어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면 카라스마 쿄스케도 코나미 키리에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고, 카라스마 쿄스케는 지나가던 길에서 지인을 발견한 사람이 할 법한 행동으로 코나미 키리에에게 아는 체를 하고 다가가 말을 붙인다. 사실 거기까지라면 평소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러나 카라스마 쿄스케는 무언가 평소와 다른 느낌을 감지한다. 코나미 키리에에게서. 어딘가 평소와 다른 느낌을. 그러나 그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카라스마 쿄스케로선 알기 어려우리라. 왜냐하면 조금 말하기를 주저하며 입을 뗀 것치고 그의 볼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왜 주저한 것일까? 의문을 가질 정도로. 코나미 키리에가 말했다.
“케이크 사러 가.”
“케이크요?”
“응.”
‘생일 케이크.’ 덧붙이지 않았다면 카라스마 쿄스케도 그 이상의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나미 키리에가 덧붙인 감정에서 카라스마 쿄스케는 그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마침 오늘은 아르바이트도 없었다. 그러니,
“같이 가도 되나요?”
동행을 제안하고,
“마음대로 해.”
허락을 받는다.
……누구의 생일인지 알 수 없어서 물었을 때였다. 코나미 키리에는 ‘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그리곤 또다시 덧붙이기를 ‘그치만 보더에 있었어.’ 하니 카라스마 쿄스케는 코나미 키리에가 챙기고자 하는 생일의 주인이 오래전 타마코마 지부에 있었음을 직감한다. 지금은 없다는 사실도. 그러나 코나미 키리에는 그 사람의 생일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도. 카라스마 쿄스케는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질문을 통해 그 사실을 파악하고 말을 아낀다. 오늘의 그는 제법 정직하게 살기로 한다. 거짓말을 하여 코나미 키리에를 놀릴 때가 아니다. 놀리고 싶지도 않다. 그의 거짓말은 그렇게 악의적이지 않다.
“옛날에 책을 읽었는데.”
조그만 제과점에서 조그만 케이크를 포장하여 드는 일은 카라스마 쿄스케가 맡았다. 코나미 키리에는 조금 앞서 걸어가며 조금 센티멘탈한 질문을 꺼내고, 카라스마 쿄스케는 조금 뒤에서 따라 걸어가며 조금 늦게 발을 내뻗는 것으로 그들의 간격을 유지한다. 코나미 키리에는 ‘독후감 때문이었는데.’ 하고 연상된 과거를 마저 이어 말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 책이었어.”
“톨스토이요?”
“응.”
유명한 책이고, 또 짧은 이야기이기에 카라스마 쿄스케도 읽은바 있는 책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코나미 키리에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카라스마 쿄스케를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 카라스마 쿄스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그에 ‘그게 뭐야.’ 하고 투덜거림이 돌아오기 전에 덧붙여 말했다.
“사랑일까요.”
“확신이 없네.”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아서요.”
“소신도 없어.”
사람의 마음속에는 과연 사랑만 있을까? 사람은 정말 사랑으로 살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TV만 보아도 그런 것을. 신문만 읽어도 알 수 있는 것을.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무척 뻔한 것을. 아마 눈앞의 소녀도 알고 있을 것을. 소년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러면 좋을 것 같네요. 사랑으로 살 수 있으면.”
노을로 붉게 물든 강변을 따라 나란히 걷는 순간엔 그 어떤 거짓말도 필요 없었다.
소녀가 원하는 대답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건 소년이 소녀와 어떤 관계를 바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가 생각하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에 저를 돌아보는 소녀와는 분명 어느 정도는, 분명 조금 많은 정도로는, 상관이 있을 순 있겠지. 보라.
“그게 뭐야.”
웃는 소녀를 보며 카라스마 쿄스케는 생각한다. 레프 톨스토이는 트리온이나 트리거나 네이버 같은 건 몰랐겠지. 그가 말하는 사랑이나 가치도 오늘날 카라스마 쿄스케에 의해 해석되는 사랑과 가치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 마음에 그러한 사정을 구구절절 길게 적는 대신 다만 생각하기로 한다. 사람은, 아니, 카라스마 쿄스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