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팔을 걷을 이유가 없다
- gwachaeso
- 3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Fate Zero>
팬아트
태초에 말씀이 계셨나니 이 말씀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아버지이시더라 [요 1:1]. 말씀 속 아버지는 그의 주 되시며 영원히 산 아버지가 되시겠으나 죽은 아버지로부터 말씀으로 계승 받아 자리한 멍, 흉, 또는 영의 주인 됨을 이르는 표증은 그의 오른팔에 있나니, 그에겐 그것을 가린 천을 걷고 드러낼 이유가 없으며 남에게 보일 하등 까닭도 없었다. 그러함에도 훤히 드러낸 팔이 여기 있다. 팔이 여기 있으니 사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까닭이란 진정 대수로운 것이 그 팔과 연결된 손에 쥐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 갈래로 쭉 뻗어나간 칼날들. 그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피가 묻어 있는가, 아니면 붉은 조명이 만들어낸 붉은 그림자인가. 알지 못하나 너는 모세가 받아온 계명을 잊었느냐 꾸짖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모세가 받아온 석판의 계명이 이르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생명이 길어지도록.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도, 도둑질하지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2-16]. 말씀하셨으나 그는 과연 이들 중에 몇 가지나 지켰으며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했으며 회개하지도, 기도하지도 않고 사제의 의복을 걸쳤나. 그러나 그는 도리어 이리 대답할지도 모르는 바이다. 주여, 그들은 내 이웃이 아니외다. 어찌 내 이웃도 아닌 자를 살피라 말씀하시나이까. 그러하다며 도리질하면 이를 보신 주께선 이리 다시 물으실까. 살아생전 네가 네 곁에 이웃을 둔 적이 있기는 하더냐고. 그러면 다시 물어야지. 너는 누구이길래 나의 주를 속여 말하느냐. 주께선 내게 말씀하신 적이 없건만. 단 한 번도 없건만.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주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하셨다 [요일 4:1]. 그러나 그는 그의 주보다 이천하고 팔백 년도 더 전에 먼저 이 땅의 왕이 된 자의 영의 말에 귀 기울였으니 그 영이 육을 얻었을 때는 그도 영구히 변화하였더랬다.
무엇이 변했나? 알고자 한다면 돌아라. 돌아서 그림자를 보아라.
그림자가 변했다. 영구(營救, 죄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내다)해야 할 자의 그림자가 영구(永久)하게 변했다. 사람의 그림자인가, 그것이. 사람의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을 쓴 붉은 용의 그림자가 서린다 [계 12:3].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요 온 천하를 꾀는 자의 그림자가 어린다 [계 12:9].
벽 위로, 등 뒤로, 붉은 조명을 받으며, 조명인가? 그것은. 빛일지도. 노을일지도. 여명일지도. 실은 모두 아닐지도. 모두 아닌 붉은 빛을 받으며 오니(汚泥)가 조명(助命, 목숨을 구하여 주다)한 자가 팔을 걷고 서 있다. 생각해 보면 팔을 걷을 이유가 없는데도 드러낸 자가. 아니, 드러나고 만 자가. 양수가 아닌 진흙에서 꺼내어진 자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