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쿠헨 엔딩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토리코나
새 신부는 아름다웠고,
아름다웠다.
바움쿠헨이라고 했던가. 답례품으로 받은 빵 상자에는 적히지 않은 이름을 떠올리며 오른손에 쥔 그것을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자리에 앉지 못한 전철 안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정말 살짝 들어 올리고, 그만큼 시선을 살짝 내렸다. 품에 소중히 끌어안고 종종걸음을 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 부딪치지 않게 신경쓰며 들고 온 답례품 빵 상자였다. 결혼식 답례품. 코나미 키리에의 결혼식에서 받은―답례품. 아니, 이제는 코나미 키리에가 아닌―키리에의 결혼식에 참석한 카라스마 쿄스케는 코나미 키리에가 직접 건네는 답례품을 받았다. ‘자, 여기!’ 내밀면 받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코나미 선배.’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흐응 웃는 ‘코나미 키리에’에 ‘그러게요, 코나미 선배.’라고 말할 수밖에 없듯이.
주례는 린도 타쿠미가 맡았다. 친구들의 편지는 키자키 레이지와 진 유이치가 읽었다. 카라스마 쿄스케는 무엇을 했냐면 신부 측 손님 의자에 앉아 린도 요타로와 함께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친 다음엔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와 함께 단상에 섰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코나미 키리에와 가까이 붙어 선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가까이 붙어 선 것도 아니지만. 그 자리는 린도 유리와 우사미 시오리가 차지했기에 카라스마 쿄스케의 자리는 키자키 레이지와 진 유이치 다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정말 가까이 선 것이다. 손님석과 손님석 사이로, 주례사를 듣기 위해 신랑과 함께 걸음 하던 그와의 거리와 이를 비교하면 이보다 더 확실할 수가 없다.
답례품은 피로연 중에 받았다. 식사까지는 마치고, 함께 온 일행에게는 미리 전해뒀던 거짓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며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코나미 키리에에게 인사하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준, 그리하여 거짓말을 용인하고 입을 닫아 준 진 유이치에게는 그 어떤 눈짓도 하지 않고 고마움을 전했다. 섣부른 행동 따위 단숨에 알아챌 만큼 눈치 빠른 이들이 모인 이 자리였다. 카라스마 쿄스케는 진 유이치의 배려에 감사했고, 진 유이치는, 알았겠지. 카라스마 쿄스케가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사이드 이펙트는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 일에도 썩 유용하게 쓰였다. 그의 눈에는 보였을까? 아니. 그런 것을 이 자리에서 떠올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냐면 당연히 결혼식이다. 새 신부, 새 신랑이 웃으며 미래를 그리는 결혼식.
그 자리에서 벗어난 지금은 그때 자신이 했던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오만한 상상을. 그럼에도 그 불경하기 그지없는 상상을 오직 떠올리는 것으로만 그치고 문장으로는 절대 서술하지 않을 작정을 한다. 카라스마 쿄스케 자신은. 문장이 되지 못한 사념은 말도 되지 못하고, 그래서 카라스마 쿄스케는 진에게 ‘무엇을’ 보았냐고는 물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 자신이 바라던 대로. 정말.
바라던 대로…….
카라스마 쿄스케가 바란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알지 못한 채로 묻어두는 것이다. 알지 못한 것은 끝까지 알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것이다. 진 유이치에겐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에겐 생각보다 많은 것의 무지가 허용되지 않고, 다만 입을 다물 수만 있었다. 그러면 그것은 카라스마 쿄스케 같은 사람에겐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 카라스마 쿄스케는 진 유이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베푼 배려에. 모르지만, 그가 배려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인 그 자신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대신 베푼 연민에.
감사하는 게 좋겠지. 그에게만이 아니라 범사에 모두 감사하는 게 좋겠다.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진 유이치에게도 감사하고,
알아챘을 텐데도 끝까지 입을 다물어 준 친구들에게도 감사하고,
새 신부의 곁을 지키는 새 신랑이 좋은 사람이라는 점에도 감사하라.
그렇다면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고, 참으로 감사한 날이 되리다.
오지 않은 날 대신 자리한 환희의 날.
오지 않은 날을 그리는 건 오직 그 자신뿐.
……그가 카라스마 키리에가 되는 날도, 자신도 코나미 쿄스케가 되는 날도 결국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카라스마 쿄스케는 카라스마 쿄스케고, 코나미 키리에는 코나미 키리에인 날도 이젠 끝났다……. 아니. 카라스마 쿄스케는 여전히 카라스마 쿄스케지만 코나미 키리에는 이제 코나미 키리에가 아니다. 아니? 그는 이제 ‘코나미 키리에’가 아닌가? 정말?
그러진 않다. 코나미 키리에는 변함없이 카라스마 쿄스케가 알던 코나미 키리에다. 단지, 이름이 바뀌었을 뿐. 아주 사소한 사실 하나가 달라졌을 뿐.
그래도 미리 앞서 ‘키리에 씨’라고 불러도 되냐고 한번은 물어볼 걸 그랬다. 때를 놓친 건 그것뿐이다. 나머지는 그 자신이 스스로 잡지 않기로 하여 잡지 않은 순간들이었으니.
덜컹대는 전철에 서서 한 손으론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론 답례품 빵 상자를 들고 사소하고 잡다한 생각에 잠겼다 건져지길 반복한다.
바움쿠헨 엔딩이란 우스갯소리를 들어본 적 있다.
그건 그 자신의 엔딩이니 새 신부와 새 신랑의 엔딩은 그와 다르길 바란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김 받길 바란다. 아니.
실은 당신만이 귀하게 여김 받길 바라고,
당신은 오로지 당신만을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상자 속 빵과 함께 밀어 넘길 생각은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