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원 가드
- gwachaeso
- 3월 28일
- 1분 분량
<SD>
태섭한나. 산왕전 직후. 지인에게 드림
경기가 끝난 뒤 넘버 원 가드라는 글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공에 묻고 문질러지고 번지는 수난 끝에도 사라지는 것은 간신히 모면한 자국이 손에 남았다. 손바닥 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맥처럼 갈라진 표면의 금과 금 사이, 까만 잉크는 그 틈을 틈틈이 메우고 있었고,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짤막하고 거뭇한 얼룩은 언젠가 입었던 생채기 또는 지나간 시간의 자취를 연상시켰다. 이 매직은 유성이었던가, 수성이었던가? 송골송골하게 맺힌 땀에 지워지기도 하였으니 수성이 맞는가? 무엇이었든, 지우기는 어렵지 않을 듯했다. 지우기는, 조금 아쉬웠다.
손바닥을 내놓고 한참을 골몰하고 있으니 무얼 하고 있냐며 네가 다가왔다. 그예 지워지는 것이 아쉬워 손을 씻지 못하겠다고 우는 소리를 냈더니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너는 호탕하게 웃었다. 웃더니, 손을 제 손바닥으로 끌어와 꾹 잡고 힘주어 눌렀다. 뭐, 뭐 하는 거야? 복사. 코팅. 짜잔, 하고 손을 뗐지만 너의 손엔 거의 묻어나지도 않은 잉크였다. 그렇지만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쥔 너는, 자, 이제 마음 놓고 손 씻어. 필요하면 언제든 또 그대로 복사해줄 테니까. 하고 웃었다. 이렇게. 짝. 손을 다시 펼치고는 내 손과 다시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대로 다시 한번 힘주어 손을 잡았다. 어때, 해결됐지? 나는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리듯 끄덕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는 소리는 냈지만 진짜 소리 내어 울고 싶진 않았기에, 웃는 것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