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 gwachaeso
- 3월 25일
- 8분 분량
<WT>
오키 → 미즈카미 → 이코마
1. 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오키?」
「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아니―. 그쪽은 저격을 경계 당할 것 같아서.’
트리온 무전을 통해 호소이가 물었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호소이는 5인 부대의 오퍼레이터였다. 인원이 늘수록 오퍼레이터에게 가해지는 부하가 커지는 트리온 연결 시스템상, 다수의 정보를 병렬적으로 사고하여 처리하는 능력은 오키보다 훨씬 뛰어날 게 자명했다. 그러니 오키가 흘리듯 중얼거린, 또는 중얼거리듯 흘린 과거의 파편 역시 어렵지 않게 주워 든 것이겠지. 아마 그에게 생각할 시간, 정확히는, 과거를 더듬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언제 어디서 오키가 그런 말을, 또는 그와 비슷한 말을 했는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는 그럴 기회를 호소이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 했다.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 호소이가 지난날을 떠올리는 일은 없었으면 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제부터 그가 이동할 방향을 지시해 달라고 호소이에게 지시했고, 지시를 달라는 지시에 응한 호소이는 곧 머잖은 회상에서 회항하여 발을 돌렸다. 호소이는 오키의 지시에 불응하지 않았다. 본디 오키는 호소이에게 부탁할 수는 있을지언정 지시를 ‘내릴’ 위치는 되지 않았다. 가족같이 굴러가는 부대였어도 분명히 자리잡힌 명령 체계는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있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오키는 그것이 싫어 호소이에게 부탁하는 말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 그가 드디어? 드디어. 지시를 내렸으니 호소이도 무언가 차이를 알아차렸으리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게 지금 그가 내린 결정인 듯했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오키는 그런 지시를 내렸고, 호소이는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미나미사와가 말했다. 트리온 무전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치를 변경해야 할 때였다. 이동해야 할 때였다.
「그 실력을 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 쓸 수는 없었어?」
조금 전 들려온 목소리는 그러했지만, 그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아, 랭크전에서는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말은 ‘뒤’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랭크전에는 언제나 ‘뒤’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엔 ‘뒤’가 없었고, 다만 소리쳤고, ‘오키!’ 오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는 그래 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다.
이윽고 임무가 종료되었을 때 오키 코지는 본부에게 무전을 쳤다.
오키 부대, 귀환합니다. 라고.
2.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는 사람이다.
「오키!」
쏴.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꿈의 이름은 악몽이 되었다. 악몽에서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하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한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 꿈에서조차도 그날처럼.
그날도 나는 명령에 따랐지만 기록에 남은 명령은 없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자의로 당신의 의중을 판단했고, 이에 따른 문책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것은 내게도 필요한 책망이었기에 나는 나를 나무라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참작 사유도 받아들여졌다. 그날 당신이 남긴 기록 중에 해당하는 명령은 없었지만, 다른 소리는 남았기 때문이다.
웃음소리.
외침 뒤에 짧게 흘리는, 그러나 분명히 녹음된 웃음소리. 아,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실로 그랬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사가 말을 놓는 데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 규칙이었다. 방해하는 것은, 훼방 놓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절대로.
현실에서조차도.
웃기네요, 그것참.
현실은 게임 같지 않다고 한 것은 당신이었는데도 말이에요, 미즈카미 선배.
사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다. 오키 코지는 미즈카미 사토시의 미즈카미 부대가 오래가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미즈카미 부대는 언젠가 원정 시험에서의 임시 부대, 미즈카미 9번대처럼 임시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오키였다. 부대가 존재했던 기간을 보면 실로 그랬다. 오키가 이코마 부대의 스나이퍼에서 미즈카미 부대의 스나이퍼가 되고 나서, 미즈카미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오키의 생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니 미나미사와도, 호소이도 알았을 것이다. 그들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를 포함하여 남은 모두가 미즈카미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의견을 모았다(어쩌면 그것이 ‘패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승착’이었을지도). 덕분에 미즈카미 부대는 내분 등의 사유로 해산되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존속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미즈카미는 자신의 부대를 이끄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헷갈리지도 않았다. 그가 말 하나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말 하나 없이 앞으로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자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이제 와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다만 소리쳤고, 다만 붙잡았고, 적의 공간 이동 기술이 누군가가 그를 붙잡았을 때는 동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끝까지 적을 붙잡고 놓치지 않았다. 과녁이 되었다. 그리고 외쳤다. 트리온 통신 특성상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들린다는 걸 알 사람인데도. 굳이 소리쳐가며. 내게.
「오키!」
‘즐겁지 않아.’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던진, 질문이었을 리가! 어떤 말을 해서든 미즈카미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멀쩡할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갈수록 점점, 속된 표현으로 ‘맛이 가고’ 있다는 걸 모두가 느껴가고 있을 때였다. ‘글쎄. 복학을 할까.’ 학교로 다시 돌아갈까 한다는 그에게 그런가요, 하고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즐겁겠죠, 뭘 하든 즐거울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 또한 그리 생각하길 바라며 꺼낸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글쎄.’ 즐거울까? ‘지금보다는요.’ 그 말에 그건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그에 아주 조금 안심했던 저였고, 그는.
지금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고, 말하기에 저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맞아요. 전혀 즐겁지 않아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모두가 그럴 거예요. 모두가 알고 있어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야. 그 말은 당연히 그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놓길 바라서가 아니고. 당신도 알아주길 바라서였건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서.
‘야. 너.’
본부로 돌아온 날 라운지에서 멱살이 잡혔다. 하도 움직임이 민첩한 사람이라 조금 놀라기는 했어도, 세게 졸리지도 않았고 트리온체라 아프지도 않은 데다 급히 떨어뜨려 놓는 손길이 있어 오래 잡히지도 않았다. 오키의 멱살을 잡은 이는 카게우라였다. 떨어뜨려 놓은 사람은 무라카미였고, 왜 그랬냐고 화를 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결국 손을 놓는 사람은 다시, 카게우라였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상한 걸 짓씹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기다 팽개치듯 손을 놓는 그도 오키를 보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멀쩡했을 리가 없었다고. 그 역시.
당연하지 않아요? 멀쩡할 리가 없잖아요, 멀쩡할 리가.
하지만 오키에겐 아직 기회가 있었다. 다섯 사람이 우당탕 넘어진 꼴로 찍힌 사진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원망할 수도 있었다. 원망? 아니. 어쩌면. 부러워할 수도. 아니, 역시 원망할 수도. 당신을 탓할 수도. 당신을 시기할 수도. 시기. 질투.
미즈카미 선배. 내 손을 빌려 한 복수는 즐거웠나요?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이 꿈의 이름은 악몽이다.
3. 내 손을 빌려 한 복수는 즐거웠나요?
웃지는 말지.
웃지나 말지.
총성이 울리매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했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했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꿈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땐 휴학생 주제에 복학 따위 생각하지 않은 저였지만, 학업은 저에게도 다가온 문제였다. 오키는 ‘그 대신’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필요한 학업을 마치기 위해 학교에 복학했고, 오늘은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난 날이었다. 교정을 뒤로한 오키의 발이 늘 향하던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류장으로, 그러나 목적지는 어제와 조금 다르다.
학교생활은 우리 생 모든 나날이 그렇듯이 즐거운 날도, 즐겁지 아니한 날도 있는 평범한 생활이었고, 이러한 날들을 보낼 수 있도록 그를 이끌었다. 규칙적인 생활은 그의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오키는 자신의 대학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제법 멀쩡하게 살고 있는 저이지 않은가. 실제로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삶일 터였다. 버스에 몸을 싣고 내린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에게 환승을 요구한다. 방위 임무가 없는 날, 그리고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 두 경우의 수가 겹치면 방문해야 하는 곳이 있다.
“미즈카미 선배.”
잠든 미즈카미는 대답하지 않는다. 꿈을 꾸는지, 꿈 없는 잠을 자고 있는지.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와 어디선가 쉬익, 쉬익하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 그 둘조차 아닌 채 삐삐거리는 기계음, 그 모든 소리 속에서도 뒤척이지 않고 잠든 사람. 잠들어버린.
오키에겐 아직 기회가 있었다.
다섯 사람이 우당탕 넘어진 꼴로 찍힌 사진을, 그것을 띄운 휴대전화를 흔들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아세요? 벌써 1주년이래요, 이 사진 찍힌 지. 저는 몰랐는데 알아서 알림을 띄워주지 뭐예요. 저도 그래서 알았어요. 1년이나 지난 지.
“작년엔 우리가 이랬었는데.”
호소이와 미나미사와가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도 이 사진을 올렸다. 아무렇지 않게 1년 전 우리라고 말하며 사진을 올리니, 미나미사와는 제게도 그날 찍은 사진이 있다며 오키에겐 없는 사진을 우수수 올리고, 호소이는 다시 보니, 아니, 다시 봐도 부끄럽다며 그만 올리라고 그들을 타박했다. 오키는 미나미사와가 올린 사진들을 저장하며 폴더에 그들을 한데 묶었다. 한 번에 찾기 편하도록, 정리 정돈은 그때그때 해야 한다.
마음의 정리도 이와 같다. 제때제때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슬어버린 부분은 별수 없지만. 녹에 찔리지 않도록 피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도.
“미즈카미 선배, 그거 아세요.”
꿈 이야기는 부러 꺼냈다.
만약 당신이 꿈속에 있다면, 내 이야기를 통해, 내 이야기 속의 꿈을 통해 지금 이곳, 지금 이 현실을 보길 바라며 부러 꺼냈다. 꿈은 곧 무의식이 일궈내는 이야기이니 결국 말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재현되는 것은 같지 않은가. 그러니 당신이 꿈속에 있다면 보라, 이 현실을. 나의 현실을. 이곳을, 우리 꼴이 어떤지나 보시라고요.
하면서, 부러 꺼낸 꿈 이야기였지만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마무리 짓기 전에 먼저 지어야 할 끝이 있었다. 하지만 미즈카미가 깨어나지 않는 이상 끝은 없었다. 따라서 오키는 미즈카미를 원망했고, 부러워했고, 역시 원망했고, 시기했고, 그럴 자격이 있었고, 그럴 수 있었다. 그날을 회상하면.
“미즈카미 선배.”
쏴.
그날 미즈카미는 명령했다, 오키에게.
아,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실로 그랬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사가 말을 놓는 데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 규칙이었다. 방해하는 것은, 훼방 놓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절대로.
현실에서조차도.
현실에서조차도?
“웃기네요, 그것참.”
현실은 게임 같지 않다고 한 것은 그였는데도.
미즈카미 선배.
언젠가 그는 대답해야 하리라.
“내 손을 빌려 한 복수는 즐거웠나요?”
그날. 부름 속에서 들은 명령을 놓치지 않은 오키였다. 하지만 단번에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선배. 선배 말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지금. 그러나 미즈카미는 항명에도 거듭 명령했고, 쏘라고. 가족같이 굴러가는 부대였어도 분명히 자리잡힌 명령 체계가 오키를 옭아맸다. 미즈카미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오키는 거듭 항명했고, 거절했다. 선배, 선배 말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그 사람이 죽어요…….
사람이 죽는다고요.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곳에서.
「오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오키는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기록에 남은 명령은 없다. 오키는 자신의 의지로 그의 의중을 판단했고, 즐거웠나요? 선배. 잠든 그에게 오늘도 질문한다. 결국. 또. 이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렇지만.
대답해 주세요.
“그 짧은 순간의 상상 속에서.”
오키는 그 사람의 어깨를 쐈다.
“즐거웠냐고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미즈카미도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원망해요?”
그래서 깨어나지 않는 거예요?
“꿈이 더 좋은 거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다. 외침 뒤에 짧게 흘리는, 그러나 분명히 녹음된 웃음소리. 그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키는 그것이 비웃음인 것을 혼자 알았다. 그게 그들의 끝이었다. 그게 마지막.
꿈에서 당신을 보았으니 나는 명령권을 다시 당신에게 반납했고, 회수한 당신은 나를 보며 명령했다. 웃지 않고. 쏘라고. 저격은 나의 역할이었으므로 나는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꿈에서는. 꿈에서조차도 그날처럼. 쏴.
“어깨를 쏴.”
미즈카미 선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가족같이 굴러가는 부대였어도 분명히 자리잡힌 명령 체계가 있었다. ‘알겠어요.’ 나는 당신에게 대답했다.
“이코 씨.”
기사가 말을 놓는 데 방해할 수 있는 자라면 역시 당신밖에.
어디에도 없는, 아무 데도 없는 당신밖에.
4.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오키는 착각하고 있어요.”
미즈카미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죠, 많은 것을요.”
그는 예시를 하나 들고자 한다. 오키가 자신의 행동과 의도를 오해석한 사례를. 입을 여는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신경질적이지는 않고, 착잡한 것에 가깝다.
“먼저 저는 그 애를 비웃지 않았어요. 웃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허탈해서 웃은 거였어요. 저 역시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오키가 빗겨 쏜 그 순간에.”
끝까지 멍텅구리로 남을 자신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이자에게, 그리고, 오키에게.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알아 모든 것이 허탈해졌고 웃음이 나왔다. 특히 오키에게는 이를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졌는데, 문제는, 눈앞이 진짜로 깜깜해졌다는 점에 있었다. 거기서 그는 두 번째 사례를 끄집어낸다.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깨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오키의 억측이에요. 애초에 저는 ‘깨어있다고요’.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 듣고는 있어요. 전부 다요. 그러니까 저는.”
“부끄럽죠. 엄청. 미안하고요. 이것도 엄청이요. 얼굴을 붉힐 수가 없어 이러고 있을 뿐, 오키에게 당장 일어나 말하고 싶어요. 오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왜 그런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사람 부끄럽게. 대충 그런 말을요.”
그가 고개를 든다. 그리곤 미간을 찌푸린다. ‘진짜예요. 진짜 일어나고 싶다고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툴툴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금 숙였던 고개를 든다. 그리곤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니까…….
팔을 뻗는다. 그대로 그것의 얼굴을 붙잡는다.
“너 누군데 자꾸 이코 씨인 척하냐고.”
그대로 힘주어 밀어버려 바닥에 처박는다.
오키 부대는 스나이퍼인 오키, 어태커인 미나미사와, 오퍼레이터인 호소이로 이루어진 부대로, 그들의 원형에서 몇 남지 않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부대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원형, 다시 말해 그들이 ‘온전’했을 때와 같이 랭크전 상위권에 도전하길 희망한다면, 그때와 비슷하게라도 인원 보충이 이뤄져야 그들이 가졌던 장점을 모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랭크전에 도전할 생각 따위 없는 오키는 가능한 한 인원 보충 없이 제 부대를 유지할 방법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랭크전에 참가할 계획부터 세우지 않았다. 그래야 언젠가…… 그가 깨어났을 때, 그에게 명령권을 반납하는 것에, 되돌아올 명령 체계에 혼란이 없을 것 아닌가. 이후의 결정은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는 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은 생각은 그의 머릿속을 필요 이상으로 번잡하게 했기에 오늘날 오키는 가능한 한 제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려 하고 있었다. 그때 걸려 온 전화였다. 오키. 호소이?
호소이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대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는.
「깨어났어.」
수화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