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 gwachaeso
- 3월 28일
- 5분 분량
<WT>
리퀘스트
그것은 장난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행위였다.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그보다 과한 흥미의 혼합물에서 도출된 악의는 더는 그것을 ‘장난이었다’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게끔 했고, 문제, 그보다는 사건이라고 명명해도 부족함 없는 한 엔지니어의 부적절한 행위를 파악한 상부는 즉시 징계를 논의할 준비를 마쳤으나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대처와 수습이었다. 사건에 휘말린 보더 전투원들을 수습하고 지금, 그리고 장차 발생할 추가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것. 그리고…… 해당 사건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하는 것. 다행히 마지막 문제는 보더의 기억 봉인 기술을 사용하여 관련자들의 기억을 봉인하는 것으로 벌어진 사건 틈으로 누출되는 본질적인 문제를 얼추 봉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본질에 있었다는 점을 외면할 순 없으리다. 그러나,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질이기에 그것을 본질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껏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본질을 해결할 의지가 생겼는가? 그 말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도.
보더의 전투원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이가 어리다. 거기에 처음엔 C급 훈련생으로 입대했을지라도 재능과 적성에 따라 엔지니어나 오퍼레이터로 소속을 변경하다 보니 치프를 제외한 엔지니어와 오퍼레이터의 연령대 역시 높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해당 행위를 저질렀다고 진술한 아이의 말은 거짓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든 말든 여파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첫째, 최초로 신고가 들어온 즉시 보더에서 전원의 트리거를 수거, 긴급 업데이트를 진행하여 피해가 그 이상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고, 둘째, 다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보더로선 다행스럽게도 해당 사건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보더에서 거래 또는 협상을 시도할 만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방지, 대처, 수습. 그리고, 입막음. 피해자 대다수는 해당 행위자에 대한 최고 수위의 처벌과 다신 재발하지 않게끔 하는 분명한 방지 대책을 요구하였으나, 외부에 알리지 말아주십사 하는 보더의 부탁에는 별수 없이 동의했다. 이 역시 그들이 아직은 어리기 때문일까? 그들이 분노한 지점은 대부분 같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랬다면 그들은 절대 보더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이 고통을 타인이 겪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들 또한 아이에 불과한데도. 책임자는 그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또한 감사를 표했다. 다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처벌은 확실하게 하겠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일부 트리거에 작은 바이러스가 심겼다.
통각 센서를 활성화하는 바이러스가.
스와 코타로는 여전히 제 발이 제 발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오른발을 흔들었다. 보더에선 그런 그에게 심리 상담을 받기를 권장했고 그 역시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막 상담심리사의 상담실에서 나오는 길. 머리를 벅벅 긁는 그의 머릿속엔 아직도 트리온 병사에게 발이 밟혔을 때 느낀 고통, 참지 못하고 지른 자신의 비명,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당황하여 새하얗게 질린 대원들의 표정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다채로운 색깔로 새록새록 하기 그지없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들에겐 별다른 피해 없었다는 점이다. 무사히 트리온 병사를 박살 내고, 먼저 베일 아웃 하여 작전실로 돌아온 스와 코타로를 향해 달려온 그들은 울렁거리는 속을 참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스와 코타로에 더욱더 충격을 받았다. 당장 그 짓거리를 저지른 놈을 때려눕히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거라고 씩씩대는 사사모리 히사토를 간신히 달래어 멈춘 스와 코타로 또한 성인(聖人)은 아니었지만,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성인(成人)이긴 한 것이 지금의 속쓰림을 불러왔으니, 그래도 제가 내린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음이다. 그래도, 타인이 저와 다른 결정을 내린다고 했을 때 그를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라운지로 돌아온 그는 일전, 네츠키 에이조와 처벌과 보상을 논의했을 때 들은 명단에 있었던 인물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섰다.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러며 손짓하는 것은 둘만이서 나눌 얘기가 있다는 뜻이렷다. 타치카와 케이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비록 그 자신은 스와 코타로에게 별다르게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함께 옥상으로 올랐다. 어느새 밤이라 어둑한 하늘에 별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별일까, 인공위성일지도.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데 스와 코타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넌 괜찮냐.’ 그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오른팔은 지금도 제자리에 멀쩡하게 붙어있었으니까.
온전하게.
뺨이 그이는 통증에 아, 아야. 그러며 발을 멈춘 것이 원흉이었다. 갑작스럽게 발을 멈추고 손을 멈추고 검을 멈춘 대장에 이즈미 코헤이와 유이가 타케루가 비명처럼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타치카와 씨!’ 손을 들어 뺨을 만져도 피 같은 건 묻어나오지 않았다. 트리온은 손에 묻어나는 성질이 없는 물질이니까. 그런데 꼭 피가 묻어야 할 것 같은 통증이라서, 욱신거림에 잠시 눈앞의 모든 것을 향한 집중력을 잃고 말았다.
그게 문제였을까? 그건 아니었다. 대원들이 경고하지 않았어도 그의 몸은 익숙하게 바닥을 박차고 도약하여 벽을 딛고 건너편 층고가 낮은 건물의 옥상에 무사히 안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내려앉은 순간 발바닥에서부터 찌르르 전해져 오는 충격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 그래서 그만 본의 아니게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느껴지는 충격. 아픔. 이번도 분명했다. 타치카와 케이가 입을 열었다.
“이즈미, 유이가. 둘 다 본부로 돌아가라.”
“타치카와 씨!?”
“대장 명령이야.”
항명은 듣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타치카와 케이는 자신의 현재 신체 능력이 트리온 전투체의 기본 설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다른 것은 통증의 유무뿐이었다. 최근에 트리온 전투체를 갱신했을 때 전투체 설정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 뒤로 몇 번의 전투와 랭크전이 있었으나 이러한 문제는 발생한 적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늘이, 처음. 갑작스럽게 발생한 문제는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치카와 케이의 결정은 참으로 대장답게 내린 결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장에는 그런 그를 칭찬해 줄 다른 대장이나 웃어른이 없었다. 타치카와 케이가 모두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잘했어, 잘했어.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노란 눈을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순백을 띠는 저 단단한 장갑은 오로지 트리거로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타치카와 케이의 양손에 각각 한 자루씩 들린 트리거, 호월은 타치카와 케이가 마음만 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휘둘러져 저것을 두부처럼 베어낼 수 있었다. 타치카와 케이는 그럴 수 있었고, 그래야 했다. 그는 보더의 전투원이 아닌가.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서도 물러서는 법을 모르는 그는 또한 물러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데……. 그러든 말든 발은 이미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뛰어내림과 동시에 호월을 휘둘러 선공을 개시했다. 선공, 호월. 약 1초 동안 가동하여 최대 15m의 거리로 참격을 날릴 수 있게끔 하는 기술, 옵션 트리거를 사용하는 데 타치카와 케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탓에 충격을 받은 팔이 삐걱대는 걸 느끼면서도, 내리치는 순간 손에서부터 팔꿈치, 어깨까지 충격이 전달되어 팔이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충격은 곧 고통임을 알면서도. 바닥에 내려앉으니 신발이 아스팔트 바닥을 긁으며 가가각 소리를 내며 밀려 나갔고, 팔과 마찬가지로 발목에서부터 무릎으로 올라와 허리까지 가해지는 통증이었지만 타치카와 케이는 멈추지 않았다. 트리온 병사의 손에 마치 손톱처럼 달린 날카로운 날을 피하고, 대신 가슴이 베이고, 발목을 잘라 베어냄과 동시에, 얼굴이 베였다. 온몸이 다 따끔거리고 고통스럽고 숨이 막히고 고통이 엄습하고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건지 아니면 토해내고 싶은 기분으로 울렁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타치카와는 마침내 트리온 병사의 그, 거대한 눈 중심에 호월을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을 갈라냈다. 동시에 마지막 발악처럼 휘둘러진 그것의 팔이 타치카와 케이가 피할 수 없는 각도로 엄습하여 날아들었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타치카와 케이 역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면서도.
타치카와 케이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그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떨어져 바닥에 그대로 머리를 부딪치고 기절했다는 것 같았다. 타치카와 케이에게 달려와 그를 회수한 것은 타치카와 케이의 전투체에 이상이 발생한 것을 보고 받고 그럼에도 전투를 속행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함께 전달받은 뒤 뛰쳐나온 시노다 마사후미였다고 했다. 의식을 회복한 타치카와 케이가 전해 듣기로, 이즈미 코헤이는 타치카와 케이의 명령에 불복했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트리온 병사를 혼자 상대하느라 그를 도우러 가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타치카와 케이가 내린 대장의 명령을 들은 즉시 유이가 타케루에게 아스테로이드를 쏘아 그를 베일 아웃 시켰고, 유이가 타케루는 늘 그랬듯 눈물로 억울함과 서운함을 호소했으나 이즈미 코헤이 또한 늘 그랬듯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즈미 코헤이는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해 먼저 사과했고, 그러나 다신 그런 명령을 내리지 말라는, 의미 없을 항명을 한 뒤 의무실을 떠났다. 타치카와 케이는 의무실 침대에 혼자 남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오른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온전히 붙어 있었다. 무사히 붙어 있었다.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스와 코타로가 괜찮냐고 물었을 때 타치카와 케이는 다만 웃었다.
“문제없어.”
그러는 스와 씨는 제법 많은 것 같다고 가볍게 말하자 습관처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러운 어투로 그럼 없겠냐고 말하는 스와 코타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원들에게 절대 티를 내지 않을 것이다. 이는 타치카와 케이가 그의 부대원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과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척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날의 경험이 타치카와 케이 안에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남긴 것 또한 사실. 저 대신 분노를 금치 못하는 시노다 마사후미 앞에서도 실실 웃었던 타치카와 케이였다. ‘넌 지금 웃음이 나오니.’ 그러나 참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필요하지 않은 자극이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에도 흥미를 잃는 날이 오게 된다면 필요해지게 될지도 모르지.
스와 코타로가 미심쩍은 얼굴로 타치카와 케이를 보며 다시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너?”
타치카와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