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ucky Boy-and-girl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WT>
이풀님 생일 축하 연성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
전력에 관해선 언급할 필요가 없다. 전술은 저를 가르친 스승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족한 건 운이었을까?
올해 스무 살이 된 청년 타치카와 케이 이전에는 자신이 제법 괜찮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아는 열여섯 살 소년 타치카와가 있었다. 후일에도 자신의 실력을 매사 진심을 다하기에 그렇다느니 노력의 결실이라느니 하는 거짓말로 포장하지 않는 그의 문제는 그 재능이 ‘싸움박질’에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정식으로 무도를 배우면 또 모를까 그러지 않은 그는 실로 싸움박질이라고 낮잡아 이를 수밖에 없는 싸움에만 탁월한 성장 속도를 보여 제 부모의 미간을 나날이 근심으로 좁혔더랬다. 재력 있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입 안에 황금이 물려 있다고들 표현한다는데, 타치카와는 어느 순간 다물고 만 입 안에 무엇을 물고 있는지, 무언가를 물고 있기라도 하는지, 사실은 그게 제일 그의 부모로 하여금 자식을 걱정하게 하는 일면이었다. 매사 잃어버리는 흥미는 그로 하여금 범사를 방관하게 했고, 방관은 그가 범인에 무감해지도록 이끌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의 부모로부터 자식을 향한 한숨 섞인 걱정, 걱정 섞인 사랑을 들은 츠키미 렌이 부러 그와 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랜만에 타치카와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그는 그에게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날로 무뎌지는 날이었다. ‘타치카와 군’은 ‘츠키미’를 본 순간 잠깐 눈을 빛냈지만 이내 다시 심드렁한 눈이 되어 뒤로 누워버렸다. 노을을 담은 강물의 반짝거림도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는데, 어쩌면 당연할까? 자신을 낮추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멀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 사이에 당연하게 놓인 거리. 굳이 좁히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각했을 때는 상당히 떨어진 우리.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떨어지는 날이 온다. 하늘을 좀먹어 낸 검은 구멍 밖으론 눈처럼 하얀 괴물이 쏟아져 나오니 너는 범사에 감사해야 했다, 그리 일컫는 듯한 파괴와 붕괴, 무너진 지붕들이 늘어선 우리의 도시. 도시의 건물의 지붕과 옥상을 딛고 도약하는 범인이 아닌 자들이 마침내 활약하는 날. 우리는 오랫동안 이날을 대비해 왔어. 말하는 자들. 걱정하지 마. 하늘을 메꾸는 사람들. 츠키미는 그 옆에서 눈을 반짝이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더는 다물어있지 않은 입을 보았다. 재력 있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입 안에 황금이 물려 있다지. 그보다 못하면 은이 물려 있고, 아무것도 물려받은 게 없는 아이들 입에는 흙이 물려 있다지. 입 안에 물리도록 무는 흙은 개천 바닥에 더러 깔려 있었으니 개천에서 나는 용 따위 이젠 없다지. 그러나 여기, 태풍이 몰려오니 개천이 범람하고 제가 실뱀은 아닐지라도 구렁이 정도로 그칠 줄 알고 누워있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날은 열여섯 살 소년이 진로를 정한 날이요 자신이 가진 제법 괜찮은 재능을 발휘할 구석을 찾은 날이요 그런 소년을 소녀가 응시한 날이었다. 조각 난 하늘 사이로 날아오를 구멍을 찾았니? 무너지고 부서진 폐허에서 드디어 네 재능을 폐하지 않고 활로를 열 방법을 알았니? 구태여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보지 않은 이 땅의, 도시의, 소년의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 또한 압정처럼 박혀 떨어지지 않았고 소녀도 자신이 가진 모든 의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다만 알았으니 너는 곧 저들과 함께 서리라. 함께하리라. 그들의 전력이 되리라. 그리고 나는……. 둘러보면 사위는 폐허였다. 둘러 들으면 비명과 고함과 오열이 도시를 메우고 그러지 못한 자리엔 오로지 침묵만이 자리했다. 하늘은 메웠지만 하늘에서 쏟아진 것들은 맵기 그지없어서, 흔히 말하는 ‘매운맛’은 사실 통증이라서, 멀리 바라보면 누이로 추정되는 이를 안고 오열하는 아이가 있고, 나고 자랐으나 맥없이 무너지고 만 도시를 말없이 응시하는 도시의 학생들이 있고, 교정에 세워질 추모비에서 벗의 이름을 헤아릴 어른이 있고, 츠키미가 있었다.
츠키미 옆에는 소년이 있었지만, 소년 때문에 소녀가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소녀는 많은 것을 보았고, 담았고, 다시 소년을 보았다. 무너진 도시의 벽돌을 숫돌로 받은 소년에게. 남들 눈에는 철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래도 녹스는 것보다는 나을까? 츠키미의 예상대로 타치카와는 곧 그들에게 합류했다. 츠키미는 그보다는 조금 늦게 그들을 찾아가 입대 의사를 밝혔다. 타치카와는 과연 그들에게 필요한 비가시적인 재능도 얼추 갖추고 있다는 판정을 받았고, 츠키미는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받았다. 물론 적성과 소질은 함께 가지 않는 것이지만, 소질도 있고 적성에도 맞는 소년에겐 참으로 잘됐다. ‘잘됐네, 타치카와 군.’ 축하해 줄 수 있어 소녀도 좋았다. ‘응.’ ‘유감이네’ 같은 말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소녀에게도 참 잘됐다. ‘그런데 이제.’ ‘응.’
‘오퍼레이터와 팀을 이루어야 한대. 그러지 않으면 방위 임무에 못 나가게 하겠대.’
그것은 ‘운을 떼는’ 말이었다. 이제는 부대를 이루어야지만 방위 임무에 나갈 수 있게 하겠다고 체계를 잡아가는 조직에서 타치카와는 ‘오퍼레이터’ 츠키미 렌에게 운을 떼고 있었다. 운을 뗀다고, 말을 고른다고. 그에 츠키미는 타치카와의 다음 말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생각한 의도로 발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는 이제…….
그에게…….
‘그래서 쿠니치카에게 부탁했다. 걔, 게임 엄청 잘하더라고. 전에 한 번 붙어 봤는데 한 번도 못 이긴 거 있지. 그래서 같이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 자기도 하겠다고 하더라고. 재밌겠다고. 그래서 이제 다시 나갈 수 있게 됐어. 방위 임무.’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잘됐네, 타치카와 군.’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
‘고맙다, 츠키미.’
전력에 관해선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는 오퍼레이터, 직접 트리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전투원이 아니니까. 전술은 저를 가르친 스승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퍽 예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가르침을 잘 따르고 흡수하는 제자인지.
‘나도 제안받은 곳이 있는데, 수락할까 해.’
부족한 건 운이었을까?
‘어딘데?’
츠키미는 다만 웃었다. 소녀는 절대, 단순히, 소년 때문에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일단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고, 돌려 말하는 말 속에서 상부의 의향을 눈치채긴 했지만 그게 껄끄럽다고 거절하기엔 상부가 의도하려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는 이 같은 일이 없었더라도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 자리에서, 그에게 말한 이유는 조금, 운이 나빴던 자신을 보상하기 위한 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괜찮아, 하고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이렇게 될 일이었어, 그리 말하기 위해서. 노을을 담은 강물의 반짝거림도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는데, 어쩌면 당연할까? 우리 사이에 당연하게 놓인 거리. 떨어진 우리. 떨어진 하늘 조각이 다리를 만드나 했더니 그 정도로 단단했으면 애초에 떨어지지도 않았을 하늘. 그런 생각을 하는.
소녀는 다만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가 소년 안에서 평소와 조금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모른 채로. 물론 소년도 감상에 감정을 이어 붙일 생각은 아직 하지 못했으니 누구를 탓할 일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부족했을 뿐이었다.
‘비밀.’
‘뭐야,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볼멘소리를 내뱉는 그에, ‘그러니 그때까지 비밀이야.’ 조금 짓궂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어릴 때처럼. 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조금 더 많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다닐 때만큼 어렸던 그때처럼. 그와 헤어졌다. 츠키미는.
타치카와 케이는, 올해 스무 살이 된 청년으로 열여섯 살 때를 비롯하여 그보다 조금 시일이 지난 날에 놓친 감상을 주워 모아 얼기설기 꿰메 연결한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바보’였다. 지금도 썩 다르지 않은 바보. 그래도 조금은 생각할 줄 알게 된 바보였다. 바보인 것치고 빠짐없이 기억하는, 그때 말이야,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어딘가 조금, 우울해 보였던 얼굴.
승부를 결정하는 건 전력, 전술, 그리고 운.
“타치카와 군.”
기합으로 어떻게든 되는 건 실력이 상당히 엇비슷할 때뿐.
“마음은 고마워.”
전력에 관해선 언급할 필요가 없다. 전술은 저를 가르친 스승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기쁘지만…….”
부족한 건 운인가?
“거절할게.”
“왜?”
다만 그때처럼 빙그레 웃는 그가 있다. 그와는 다르게 꿰매어 연결한 감정의 실을 잘라내 풀어버린.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감상이지만 그것으로 족한 그가 그 앞에 있다.
“비밀이야.”
“그래.”
그래도 어쩌면 아직 이어진 실이 있을지도 모르지.
타치카와 케이는 자신이 제법 괜찮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아는 청년으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