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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Third Wheel

  • gwachaeso
  • 3월 28일
  • 5분 분량

<WT>

리퀘스트



보더의 1등 슈터 이즈미 코헤이와 1등 오퍼레이터 쿠니치카 유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타치카와 케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근 보더의 빅 뉴스는 다음과 같았다: 슈터 최상위 순위가 변동했다. 이즈미 코헤이가 기존 1위였던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점수를 넘어서 1위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코멘트는 역시나 없음. 이즈미 코헤이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타케토미 사쿠라코에게 ‘그래야 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왜’ 그래야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이즈미 코헤이는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쿠니치카 유우를 발견하고 그를 뒤따라갔던 것이다. ‘유우 씨, 유우 씨.’ 이즈미 코헤이를 발견한 쿠니치카 유우는 웃었고, 이즈미 코헤이도 웃었고, 보더의 다음 빅 뉴스도 정해졌다. 이즈미 코헤이와 쿠니치카 유우, 두 사람 사이에 분홍빛 분위기가 감도는가? 최근 들어 간신히 냉랭했던 기류가 가라앉은 두 사람이었다. 그때는 어찌나 냉랭했는지 이대로 부대가 분열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다행히 이들에게도 적용된 것 같았다. 이즈미 코헤이는 쿠니치카 유우에게 다시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고, 쿠니치카 유우도 평소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에 그들의 친구들은 크게 안도했다. 다행이야. 괜찮아져서. 그러다 이제는 분홍빛 기류라는 얘기까지 도는 것이다. 어, 그렇게까지?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고 제 할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긴 했지만. 여기.


타케토미 사쿠라코도 지나간 복도에 혼자 남은 타치카와 케이는 이즈미 코헤이와 쿠니치카 유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더의 1등 어태커였던 그는 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해를 방지하고자 미리 말하자면 타치카와 케이는 두 사람에게 어떠한 연애적 감정도 품지 않았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를 연인 관계 측면에서 질투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도 연인 관계가 아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질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 사람 중 유독 친해진 두 사람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는 세 번째 사람? 하지만 그들에게 악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러한 관계 문제에서 그게 가장 문제가 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타치카와 케이는 그러한 문제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가? 아무도 타치카와 케이에게 묻지 않았기에 타치카와 케이에게도 대답할 기회가 없었다. 물었으면 대답할 수나 있긴 했을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게 채점되는가? 어른스럽게 ‘보기 좋네’라고 말해야 옳은 대답일까? 그러고 보면 올해 대학에 진학한 이즈미 코헤이도 이젠 어른이었다. ‘어른이 되어 봤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네요.’ 이즈미 코헤이가 그리 말했을 때 그 말에 쿠니치카 유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타치카와 케이도 거들었다. ‘뭐 달라질 줄 알았어?’


“좀 더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어요. 저 자신이.”

“그럴 리가.”

“그랬으면 진작 어른스러워졌게.”


‘타치카와 씨도.’ 제가 썩 좋지 못한 근거의 상징으로 언급되었음에도 틀린 말은 아니기에 타치카와 케이도 어깨를 으쓱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부터 애늙은이 같았던 동기들이야 적잖게 있긴 했지만 타치카와 케이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슬슬 남아 있는 공간이 없는 그들의 부대 작전실을 보라.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면 열이면 열 더 넓은 작전실로 이사 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겠다며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어떻게 짐을 빼고 치우고 했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을까. 빈자리엔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한 짐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여 비어 있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건 어느 한 사람의 탓이 아니었다. 쿠니치카 유우가 채울 때도 있었고, 이즈미 코헤이가 채울 때도 있었다. 늘 그랬듯이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보다 못한 보더에서 대청소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발 디딜 틈도 없을 뻔했다. 다행이었다.


“유우 씨.”


소파에 혼자 앉아 있던 이즈미 코헤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이즈미 코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쿠니치카 유우를 불렀다. ‘뭐야, 뭐야?’ 타치카와 케이는 분위기를 깨는 데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라 이즈미 코헤이가 분위기를 의식하여 잡든 무의식중에 잡든 상관없이 끼어들었지만 이즈미 코헤이는 그에 대꾸하지 않았다. 타케토미 사쿠라코가 알았으면 정말로 호외요, 호외! 외쳤을지도 모르지만 장소가 작전실이라 알 수 없는 작전실에서 이즈미 코헤이가 쿠니치카 유우에게 다가갔다. 쿠니치카 유우는 때마침 직전까지 플레이하던 게임을 종료한 참이었다. 게임 대기실 화면이 모니터에 가득 떠 있다. 이를 힐끗 본 이즈미 코헤이가 쿠니치카 유우에게 말했다. 아니, 물었다. ‘유우 씨.’ ‘왜?’


“솔직히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뭐를?”


쿠니치카 유우의 어투는 여전히 가벼웠다. 이즈미 코헤이가 분위기를 잡든 말든 그에게는 그를 따라 심각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타치카와 케이는 소파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어 턱을 괸 채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소파 위로 신발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는 앞서 정답게 장난을 치며 걷는 두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진 않았다. 두 사람이 그래선 안 될 분위기를 풍겨서일까? 그것은 타케토미 사쿠라코가 짐작했던 것처럼 분홍빛 봄바람일까? 철에 맞지 않게 불어오는 바람일까? 이즈미 코헤이가 마침내 말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봄바람일지라도 붉어지는 얼굴은 없었다.


“이만하면 유우 씨의 ‘최강의 말’이 되었을까요, 저.”

“설마 그게 고백 멘트야?”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만 타치카와 케이의 야유였지만 쿠니치카 유우는 그 말에 올곧게 이즈미 코헤이를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에 이즈미 코헤이는 자신이 쿠니치카 유우에게 ‘분석’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쿠니치카 유우는 1등 오퍼레이터, 조작자였다. 손에 쥔 말을 움직이고 지시하는 사람. 물론 현장에서는 대장이 지시를 내릴 때가 많고 오퍼레이터는 대장 또는 부대원의 요청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았지만, 이즈미 코헤이는 쿠니치카 유우의 지시를 존중하고 대체로 그의 결정을 따랐다. 그것은 일전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쿠니치카 유우는 이즈미 코헤이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들 사이의 냉랭함이 해소되던 순간에 쿠니치카 유우는 이즈미 코헤이에게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게임에 상황을 비유하여 설명했다. ‘코헤이.’ 이즈미 코헤이를 코헤이라고 부르며. 그때도 타치카와 케이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게임에는 말 한 두 개쯤이야 죽더라도 승리하면 그만인 게임이 많아.’

‘유우 씨.’

‘나는 이제 그런 게임은 하지 않을 거야.’


그러자면 게임의 난도가 대폭 상승한다. 그럼에도 그런 게임을 하겠다고 쿠니치카 유우가 말했을 때, 이즈미 코헤이는 자신이 해야 할 말도 정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쿠니치카 유우의 선언에 이즈미 코헤이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최강의 말이 될게요, 저는.’


플레이어가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그런 말이 되겠다.


이즈미 코헤이가 한동안 주춤했던 랭크전에 다시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점수를 올리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즈미 코헤이는 그 말대로 ‘그래야 했다.’ 그래서 마침내 슈터 1위를 차지한 지금, 그는 쿠니치카 유우에게 묻고 있었다. 이만하면 최강의 말일지. 잃어버린 말을 대체할 수 있는지. 그만큼 강해졌는지. 그에 쿠니치카 유우가 대답했다.


“코헤이.”

“유우 씨.”

“넌 언제나 최강의 말이었어.”


아.


“미안해.”


아…….


쿠니치카 유우가 사과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말로 오히려 이즈미 코헤이를 절망에 빠뜨렸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 최강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다. 그랬다면 더 강해질 구석이라도 있었을 텐데, 이즈미 코헤이는 쿠니치카 유우에게 언제나 최강의 말이었고 이미 최강이기에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없었다. 이즈미 코헤이에겐 이미 부족함이 없었다. 쿠니치카 유우가 그 사실을 인정했다. 너는 이미 완전한 말이야. 너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결과야, 지금이.

그러니…….

네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것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가능했을 뿐.

그러니…….


“미안.”


성장기가 끝나고, 성장판이 닫힌다. 닫힌 판 사이를 비집고 자라는 무언가는 없다. 너는 거기까지다. 이만하면 잘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체할 수 없다.

너도 알잖아.


“그렇겠죠…….”


아, 두 사람 사이에 사람들이 기대한 분홍빛 봄바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미안해요.”


망연자실한 이즈미 코헤이의 입에서 한숨 같은 패배 선언이 흘러나오는 것을 타치카와 케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두 사람을 보며 ‘보기 좋네.’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보기 좋지도 아니하거니와 무엇보다 그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그는 발언할 수 없다. 발언해도 아무도 듣지 않으리다. 누가 들을 수 있겠어?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사과뿐이다. 뒷머리를 긁으며, 머쓱하게 사과한다. 결국 이 방의 모두가 사과를 입에 담는다.


“미안.”



-



이즈미 부대.


B급 1위 부대. 오랫동안 A급 1위를 차지했던 타치카와 부대 소속이었던 슈터 이즈미 코헤이와 오퍼레이터 쿠니치카 유우가 대장이었던 타치카와 케이 사후 구성한 부대. 건너 유이가 타케루가 보더를 제대하면서 A급 조건 불충족을 사유로 B급으로 강등되었으나, 랭크전에서 B급 1위를 차지하면서 A급 승급 도전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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