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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Snow Dream

  • gwachaeso
  • 3월 28일
  • 5분 분량

<WT>

예감님 생일 선물



팀 랭크전에서 맵 선택권은 순위가 가장 낮은 부대에 주어지며 이때 맵 선택권을 가진 부대는 지형뿐 아니라 기후 또한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지형은 보통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도심, 주거지역, 공장 지대, 교외 등 하나를 고르게 되지만, 기후는 폭우부터 폭설까지 폭넓게 설정이 가능하여 처음 업데이트된 직후 랭크전에 참가하는 많은 부대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또 그만큼 빠르게 식어버렸다. 지금이야 그냥저냥 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당시의 이유를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래전 A급 1위를 차지했던 아즈마 부대도 지형은 다양하게 고르더라도 기후 설정은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와 상통한다. 낮은 순위를 차지한 적이 거의 없어 보통은 맵 선택권 자체를 획득하지 못한 아즈마 부대이지만, 대장인 아즈마 하루아키의 포지션이 스나이퍼였다는 점이 바로 그 단서이다. 폭우와 폭설, 그리고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폭염까지. 조준경을 통해 상대를 관측하고 저격해야 하는 저격수들에겐 뭐 하나 좋을 게 없는 조건들이었던 것이다. 육체에 가해지는 부하야 트리온 전투체 설정으로 무마할 수 있지만, 시야를 가리는 눈발들, 조준경 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줄기들, 눈을 찌르는 일광은 저격수의 저격을 크게 방해했다. 물론 뛰어난 저격수라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이 모든 방해 따위 감수하고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 물론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저격수도 있을 수 있었다. 정답은 없었다. 도전하면 해 볼 뿐.


그래도 뛰어난 저격수가 있다면 한번 던져볼 만한 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저격수가 있는 부대를 상대해야 한다면, 이를 통해 상대 저격수를 무력화하는 것은 힘들더라도 최소한 그 정확도 정도는 떨어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노미야 부대 대장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한 바를 통해 계획했다. 무엇을? 오늘의 훈련을. 얼굴에 눈덩이가 날아와 꽂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이 계획의 중요성을 이해했고, 진지한 태도로 훈련에 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최초에 누가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얼굴에 눈덩이를 꽂아 넣을 생각을 했는가?

그에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깔끔하게 자백한다. 실수였다고. 실수였어요. 진짜로요.


믿어줘요!


하지만 그의 대장은 그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이누카이 스미하루를 앞에 두고 커다란 정육면체 트리온 블록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아즈마 부대가 해산되고 독립하여 니노미야 부대의 대장이 된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그들의 부대가 원정 부대로 발탁되기 위해선 랭크전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선 다양한 패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폭우부터 폭염, 폭설까지,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라도, 그게 아니면 상대의 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최근 그들의 전투 훈련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조합하여 설정한 맵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의 배경이 되겠다. 배경, 팀 훈련으로 미리 약속된 시각에 모인 니노미야 부대는 눈이 오는 기후로 설정된 시가지 A에 발을 디뎠다. 밖은 눈이 다 녹은 한봄인데도 한겨울이 계속되는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눈 오는 날은 요 며칠 갖가지 기후를 시험해 본 그들도 처음으로 설정해 본 기후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랭크전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기후 설정이었다. 그래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우와. 신기해.”

“전분 밟는 기분이네요.”

“차가운 건 그대로고.”


들떴다.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니노미야 마사타카는 속이야 어떻든 겉으론 조금도 티 내지 않고 이동 속도나 트리온 입방체를 띄우거나 하고 있었지만, 이누카이 스미하루와 츠지 신노스케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많이 들떴다. 제일 많이 들뜬 건 이누카이 스미하루. 그보단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는 것 같지만 들어보면 이누카이 스미하루의 말에 맞장구는 전부 치고 있는 것이 츠지 신노스케. 하늘에선 펑펑 눈이 내리고, 길 위로 녹지 않고 쌓이는 눈은 제법 잘 뭉쳐졌다. 트리온 전투체라 손으로 아무리 눈을 뭉쳐도 빨개지며 얼어붙지 않아 제법 좋았고, 트리온 전투체의 신체 온도가 제법 적당한 온도로 설정되었기 때문인지 손에서 쉽게 녹지 않는 것 또한 눈을 뭉치는 걸 제법 용이하게 하였다. 아니, 왜 자꾸 눈을 뭉치는 일에 집중하냐고. ‘집중해라.’ 결국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이들의 집중력을 환기한 후에야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눈에 관한 집착을 간신히 버리는 이들이었다. 차례로 대답하며 그제야 트리거를 꺼낸다. 아직까지 안 꺼냈다고?


“이누카이, 라져.”

“츠지, 라져.”

「하토하라, 라져.」


그 뒤론 익숙한 훈련 매뉴얼이 이어진다. 변화한 환경에서도 익숙하게 전투할 수 있는가가 오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다. 시야를 가리는 눈발에서도, 발을 끌게 만드는 눈과 빙판에서도, 우리는 우리와 맞서는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공격을 날리고 방어하며 도약할 수 있는가? 쏘아 맞힐 수 있는가? 우리와 같은 조건에 있는 자들을.


그들보다 먼저.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훈련의 마지막은 개인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몸을 숨기고, 공격할 타이밍을 노린다. 오늘은 특별히 눈 속에서 이 탐색전이 이뤄졌고, 그렇기에 오늘의 개인전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특별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시작은 이누카이 스미하루였다.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앞선 골목을 지나가는 백웜 차림으로 지나가는 츠지 신노스케를 우연히 발견했고, ‘오호라.’ 그렇지만 그 손에서 어설트 라이플을 내려놓았다. 오늘의 그는 제법 다른 승부를 겨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승부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가슴이 시키는 한 무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아이이기 때문이다.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긴 해도,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란 참기 힘든 유혹에 그만 넘어가 버리고 마는 아이. 또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본디 고등학교 3학년이란 다소 편견에 가득 찬 발언일 수 있기는 하나 그럼에도 다른 학년보다 다소 돌아버리는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으므로…… 바로 그 고등학교 3학년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차분히 발로 밀어 눈을 모으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허리를 조금 숙여 눈덩이를 뭉친 후…… 일부러 인기척을 내어 츠지 신노스케의 시선을 끌었다. 츠지 신노스케가 이누카이 스미하루를 발견한다. ‘이누카이 선배!’ 하지만 당황한 탓에 선공을 쓸 타이밍을 놓쳤다. 아직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런 점에 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놓쳤고, 15m 거리로 뻗어나가는 선공을 사용하지 못한 이상 근거리 무기인 호월보다는 원거리인 돌팔매, 아니, 눈팔매가 먼저 상대에게 닿는 것은 당연한 상식 되시겠다. ‘선배?’ 이누카이 스미하루의 손에 어설트 라이플이 쥐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츠지 신노스케의 입에서 다소 얼빠진 물음이 나오지만,


퍽!


“나이스 샷.”

“이누카이 선배…….”


얼굴에 직격하는 눈덩이에 부를 수 있는 건 이름뿐이다. 그리고…….


퍽, 퍼퍽! 퍽!


“도망가야겠네.”

“도망가지 마세요. 선배.”


츠지 신노스케 또한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하여 눈을 뭉치기 시작한다.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었긴 해도 아직 아이에 불과한 이들에게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란 참기 힘든 유혹이다. 오퍼레이터 히야미 아키가 내쉬는 한숨을 듣지 못했을 리 없는 그들이지만 치열한 눈싸움 공방이 펼쳐지는 지금, 오퍼레이터의 지시보다는 파이터의 혼이 그들을 움직이고 있다. 결국 그들이 훈련을 뒷전으로 두고 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그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그만 신나게 놀면서 그를 잊고 만다. 그리고…….


퍽.


“아.”

“헉.”

「니노미야 씨.」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얼굴에 눈덩이가 날아와 꽂힌다. 정확하게, 그것도 눈코입을 동시에 가격하는 절묘한 위치로. 그에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자백한다. 실수였다고. 츠지 신노스케를 향해 던지던 눈덩이였지만 빙판을 밟고 살짝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에서도 미끄러져 절묘한 곡선을 그리며 정통으로 날아간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의 대장은 자기 대원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또는 믿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동시에 그는 일찍이 츠지 신노스케가 했던 것처럼 눈에는 눈, 그리고 눈에는 눈으로 갚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누카이 스미하루를 앞에 두고 커다란 정육면체 트리온 블록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크기를 보건대 저건 아스테로이드가 아니다. 하나로 뭉쳐 쏘는 메테오라다. 아직은 ‘트리온 몬스터’라 불리는 아마토리 치카가 보더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그 전, 뛰어난 트리온 보유량으로 입대한 날부터 기대주로 꼽히던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자랑하는 트리온으로 손수 말아주는 거대한 메테오라가 높이 떠오르고, ‘믿어줘요!’ 이누카이 스미하루가 웃는 낯으로 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이누카이 선배가 던졌습니다.’ 츠지 신노스케는 도망가고, 히야미 아키는 셋 다 똑같다며 한숨을 내쉴 때,


퍽.


“어?”

“아?”

“뭐?”


한 줄기 섬광이 날아와 니노미야 마사타카가 띄워 올린 트리온 큐브의 끄트머리를 꿰뚫어버린다. 그리고 이누카이 스미하루에게, 트리온 무전이 전달된다. 오직 그에게만 닿도록 전달되는…….


「이누카이. 도망가.」

“하토하라……!”

「죄송해요, 니노미야 씨.」


그러나 이미 그 목소리는 웃음기를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저격당한 트리온 큐브가, 그것도 메테오라를 담은 트리온 큐브가 폭발하기 직전, ‘하토하라. 나이스 샷.’ 이누카이 스미하루는 마지막으로 손에 들려 있던 눈덩이를 니노미야 마사타카의 트리온 큐브를 향해 힘껏 던졌다. 이 역시 나이스 샷이다. 이윽고 터져나오는 섬광과 함께 폭죽처럼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쾅! 하지만 이 경우는 좀 더 다른 효과음이 어울리리다.


펑!



“죄송해요, 니노미야 씨.”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작전실로 돌아와 니노미야 마사타카 앞에 나란히 선 이누카이 스미하루, 츠지 신노스케, 하토하라 미라이가 머리를 숙이며 사과할 때, 안쪽의 오퍼레이터 데스크에서 일어난 히야미 아키가 니노미야 마사타카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니노미야 씨도 똑같아요.”

“그럴 리가.”

“아뇨, 사실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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