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iniscence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리퀘스트
“다음번엔 내가 이길 거야.”
주저앉았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 사이드 이펙트가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코나미 키리에는 진 유이치가 싫었다.
진 유이치는 코나미 키리에보다 두 살 위의 소년으로, 보더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가미 소이치의 제자가 됨으로써 그의 마지막 제자이자 막내 제자가 되었더랬다. 아니, 어쩌면 모가미 소이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보더에 들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가진 사이드 이펙트는 그에게 미래를 보여주었으므로 보더에 들어올 적에 이미 모가미 소이치의 제자가 된 자신을 보았어도 무리는 아니었다. 뭐, 모가미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네이버에게 어머니를 잃었다는 소년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어 줄 어른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에게는 새로 들어온 신입이 아주,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다. 모가미 씨와 먼저 대련 약속을 잡은 건 저인데, 가르침 받기로 한 건 저인데, 한동안은 ‘유이치’에게 신경을 좀 더 써줘야 할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자면 여느 때와 같이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가미는 아이의 속내 정도야 빤히 들여다보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코나미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선배’로서. 괜찮을까?”
심통 난 아이를 멈춰 세우는 일에 자신 있는 어른.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코나미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선배니까! 결국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들어 올리며 돌렸다. 흥!
“이번만이야.”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해. 코나미.”
“됐어. 그만 사과해. 모가미 씨.”
모가미 씨 잘못도 아닌걸. 그러며, 툴툴거리며 몸을 돌린다. 린도 삼촌에게나 놀러 가 볼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생각만 하며 발을 뗐을 때다. 모가미 뒤에서 호월을 잡고 서 있던 소년이 코나미를 돌연 불러 멈춰 세우지 않았더라면 코나미는 그대로 린도 타쿠미의 방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저기.’ 코나미의 이름은 ‘저기’가 아니라 ‘코나미 키리에’였다. 보더에서 자란, 보더의 막내 아이. ……진 유이치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가미 소이치의 막내이기도 했건만. 거기서부터 기분이 상한 코나미가 고개를 홱 돌려 소년을 돌아보았다. 뭐야?
“소용없어.”
“뭐?”
“가 봤자 린도 씨는 외출해서 아무도 없을 거라고.”
“유이치…….”
“아.”
코나미 키리에의 얼굴이 결국 짜증으로 붉어진다. 코나미 키리에는 이래서 진 유이치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련을 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같은 순간이 제일 문제다. 그때마다 곁에 있던 모가미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모든 것이 코나미 키리에의 기분을 거스른다. 무심한 듯 무감하게 무신경하게 말하는 소년의 모든 것이.
예상했음을 알아도, 피하지 않을 것도 알아서, 코나미 키리에는 소년의 무릎을 걷어찬 뒤 씩씩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트리온체라서 아프지 않을 것도 알았다. 대신 효과적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진 소년, 진 유이치는 바닥에 얼굴을 댄 채로 멀어지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넘어진 진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소녀를. 바라보며 다시금 그의 시야 한구석에 ‘켜지는’ 창을 응시한다. 아직은 모른다. 왜인지도 모른다.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높은 확률로. 변하지 않을 미래에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날이 온다.
보이는 것은 그때의 우리뿐.
어른들은, 형과 누나 들은, 어디로 갔을까?
“린도 씨는 방금 외출했어.”
“아, 그래?”
그럼 나중에 말해야겠네.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니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거실로 향하는 코나미를 보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있던 진이 말했다.
“우리 전에도 이런 대화 나눈 적 있었는데.”
“뭐어, 평범한 대화잖아? 린도 씨 외출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응. 근데 그때는 코나미가 내 무릎을 걷어찼어.”
“내가!? 거짓말!”
코나미가 즉각 반발한다. 만약 키자키 레이지가 거실에 있었으면 그대로 그를 붙잡고 진이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은 그대로 실실 웃을 뿐 거짓말이라거나 농담이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야 진짜인걸. 진짜 그랬는걸. 진! 진짜야!? 거짓말 아니고!?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쉽게 믿을 수 없어 어깨를 흔드는 코나미에 아이고,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웃으며 돌아눕는 진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랬는걸.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그때의 우리는 그랬는걸.
예상했어도, 피하지 못할 것도 알아서, 바꾸는 데 실패한 과거에서 우리는…….
“진! 대답 좀 해봐! 내가 언제 그랬는지!”
“거짓말 아냐. 진짜 그랬어. 난 그때 넘어지기까지 했는걸.”
“진짜로!?”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은 지금의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