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ch Ball
- gwachaeso
- 3월 28일
- 6분 분량
<WT>
시노다 마사후미가 제자를 들였다.
코나미 키리에는 그가 싫었다.
두 자루의 짧은 호월을 겹쳐 들어 그 위로 내리치는 한 자루의 긴 호월을 막아낸다. 그대로 내리누르는 힘에 자세를 무너뜨리는 대신, 빠르게 고쳐잡은 한 자루만으로 날을 미끄러뜨려 공격을 흘려냄과 동시에 상체를 수그려 상대에게 파고든다. 뒷걸음질로 도약하여 이를 피하는 상대는 아직 자세를 다시 잡지 못했다. 승기를 잡은 건 소녀다. 트리온으로 형성되는 전투체에는 근력의 차이가 없으므로 기술과 판단, 합하면 전투 센스에 승패의 모든 것이 달려 있었고 어려서부터 출중한 실력을 보인 소녀는 제 손에 잡힌 승기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예측하지 않으면 방어하기 어려운 각도로 찔러넣는 검격을 예상했다는 듯이 맞받아치는 상대는 앞서 말한 것의 예외에 해당하는 소년이었다. 기술과 판단, 전투 센스가 없는 것은 아니나 흔히 말해 ‘플러스알파’가 더해진 소년. 소녀의 손에 잡힌 승기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빼앗곤 하는 소년. 모가미 소이치가 가르친 소년 진 유이치는 소녀 코나미 키리에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 낮지 않은 승률을 얻어내는 거의 유일한 상대였고, 문제의 알파에 해당하는 가히 사기적인 사이드 이펙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투 센스가 썩, 코나미 키리에의 기준으로도 나쁘지는 않은 소년이었다. 돌려 말했지만 결국 코나미 키리에가 인정하는 소년이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었다. 어디 가서 지지 마. 안 져. 나한테는 지고. 그건 어렵겠는걸. 그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진 유이치가 보더에 들어오고 모가미 소이치를 스승으로 사사했을 때만 해도 뾰로통하기만 했던 코나미 키리에가 흙먼지로 더러워진 얼굴에, 눈가에서부터 볼을 내리긋는 두 개의 흰 자국을 닦아낸 날에도 그들은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비슷했을까? 다르지는 않은 대화였다. 진. 코나미.
죽지 마.
그럼 나한테 죽을 테니까.
그에 진 유이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건 힘들겠는걸. 그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나미 키리에는.
현재로 돌아오면 공중으로 높이 도약하며 빙그르르 돈 코나미 키리에의 호월이 진 유이치의 호월이 들린 팔을 베어내고 가슴까지 깊이 갈라버린다. 트리온 유출 심각. 전투체 파손. 경고음과 함께 터지는 연기, 빛, 먼지 속에서 진 유이치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나타나 뒷머리를 긁는다. 근래 계속 지기만 해서 이기고 싶었다는 말에 코나미 키리에는 흐응, 하고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지만 곧 요즈음 들어 그들이 대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계속 졌다고? 응. 앞서 말했듯 진 유이치는 코나미 키리에가 인정하는 소년으로 절대 약하지 않았다. 그런 진 유이치를 코나미 키리에 만큼이나 몰아붙인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코나미 키리에의 귀에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누구에게?”
“알잖아. 타치카와 씨.”
아. 아하, 이름을 들은 코나미 키리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이름은 코나미 키리에도 알고 있었다. 타치카와 케이. 시노다 마사후미가 들인 첫 번째 제자.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렸던 기억이 났다. ‘시노다 마사후미는 어떤 생각으로 제자를 들인 걸까?’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지난날이 연달아 떠올랐다. 과거 제자를 들였고 제자를 잃은 어른들은 두 번 다시 아이들을 제자로 받지 않겠다며 손을 뗐는데, 왜? 린도 타쿠미도 카자마 신의 동생이라는 카자마 소야를 가르치지 않는다는데, 왜? 키도 마사무네도 더는 저희와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는데. 왜.
왜 다들 떠나가고 왜 다들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왜 다들 새 사람을 만나며 지난 사람을 묻으려고 하는지. 왜 가족 같았던, 아니, 그의 가족이었던 그들이 반목하며 갈라설 준비를 하는지. 어린 코나미 키리에에게는 싫은 일투성이뿐인 날들이 근래 계속되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시노다 마사후미가 제자를 들였다. 그나마 조금 전까지는 진 유이치와 오래간만에 대련을 하며 그 사실을 잊고 개운해질 수 있었는데, 또 생각나고 말았고 기분 또한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코나미 키리에의 표정을 본 진 유이치 또한 제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얼굴을 흐리지만 이미 늦었다. ‘시노다 마사후미가 제자를 들였다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코나미 키리에는 어땠던가. 어떤 생각을 했던가. 그 소식을 듣고 난 코나미 키리에는,
“한번 싸워보고 싶어.”
타치카와 케이가 먼저 그에게 대련을 신청한 날 그를 박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나미 키리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자루의 짧은 호월을 든 코나미 키리에 앞에 타치카와 케이가 두 자루의 긴 호월을 들고 자세를 잡는다. 이윽고 달려든다. 내리치고 피하고 찔러온다. 도약하고 물러서고 미끄러뜨린다. 진 유이치가 곤혹스러워했던 이유를 코나미 키리에도 슬슬 알 것 같았다. 기술은 아직 조금 투박할지라도 시노다 마사후미의 가르침을 제법 잘 소화한 듯하다. 판단력 또한 아직 명징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긴 해도 이제 막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천부적이다. 출중한 전투 센스. 코나미 키리에에게만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소년이었다. 질 생각은 없지만 조금 어려울 순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공중으로 높이 도약하며 빙그르르 돈 코나미 키리에가 내리치는 호월을 두 자루의 긴 호월을 겹쳐 든 타치카와 케이가 막아낸다. 그대로 내리누르는 힘에 자세를 무너뜨리는 대신, 날을 미끄러뜨려 공격을 흘려냄과 동시에 상대에게 파고든다. 승기를 잡은 건 소년인가? 그러나 뒷걸음질 치는 듯하다가 예측하지 않으면 방어하기 어려운 각도로 찔러넣는 소녀의 검격을 소년은 받아치지 못한다. 진 유이치라면 받아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넌 못했지. 코나미 키리에의 호월이 타치카와 케이의 가슴에서부터 호월이 들린 팔까지 긴 호를 그리며 깊이 갈라버린다. 트리온 유출 심각. 전투체 파손. 경고음과 함께 터지는 연기, 빛, 먼지. 코나미 키리에의 승리였다. 박살 내겠다는 각오대로, 각오를 이루는 데 성공한 코나미 키리에였다. 그런 코나미 키리에였지만,
“왜 그런 표정이야?”
말갛게 개지 못한 마음이 얼굴로 드러난 탓에 연기, 빛, 먼지 속에서 얼굴을 드러낸 타치카와 케이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그러나 코나미 키리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기 싫었다. 타치카와 케이. 시노다 마사후미가 들인 제자. 코나미 키리에는 그가 싫었다. 코나미, 정확하게 말해야지. 모가미 소이치가 살아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까? 모른다. 모르지만, 그래. 타치카와 케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싫어할 만큼 잘 아는 상대도 아니었다. 좋아할 만큼, 즐거운 대련이기는 하였다. 그러므로 코나미 키리에는 타치카와 케이가 싫은 게 아니다. 코나미 키리에는 그가 싫었다.
코나미 키리에는 시노다 마사후미가 싫었다.
그렇지만, 그래. 사실 그가 정말 싫은 것도 아니었다. 투정 부리고 싶은 것뿐이었다. 왜 다들 떠나가려 해. 왜 다들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려 해. 왜 다들 새 사람을 만나며 지난 사람을 묻으려고 해. 왜 나의 가족이었던 당신들이 반목하며 갈라서야만 해. 코나미 키리에는 자신이 제법 단순히 생각하고, 호불호가 명확하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것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분출하는 방식 중 가장 확고하고 단순한 방법을 선호하는 것뿐이었다. 부수는 것. 박살 내는 것.
“한 판 더 할래?”
그래서 타치카와 케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을 때, 코나미 키리에는 눈을 깜박이며 잠시간 그를 보았다. 부수는 것. 박살 내는 것. 가장 확고하고 단순한 방법을 선호하는 코나미 키리에와 싸움을 즐기는 타치카와 케이의 성정은 같지 않으나 일부 공유하는 면이 있었고 조금 전 공방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 알게 된 두 사람이었다. 잠시 후 코나미 키리에가 대답했다.
“응.”
外
“왜 그런 표정이야?”
이겼잖아. 말갛게 개지 못한 마음이 얼굴로 드러난 탓에 타치카와 케이가 의아함을 담아 묻는다. 왜겠냐고. 몰라서 묻냐고. 대꾸하고 싶지만 입술을 꾹 깨물며 답하지 않은 이유는 더는 말하지 말라는 주문을 들은 그가 그것을 들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멋대로 말하지 않을 타치카와 케이가 아니라서 문제다. 킬킬대며 웃은 타치카와 케이는 이내 쿨럭이며 기침하고, 피가 튀고, 코나미 키리에는 ‘거 봐’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은 채 그를 노려본다. 할 수만 있다면 공중으로 그를 높이 날려버리고 싶다. 그대로 소게츠를 올려 쳐 떨어지는 그를 벽에 곧장 처박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래전 진 유이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진. 죽지 마. 그럼 나한테 죽을 테니까. 다르지 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때인가. 코나미. 대답 좀 해달라듯 저를 부르는 타치카와 케이에게 드디어 코나미 키리에가 말한다. 그가 바라는 대로. 죽지 마. 당신.
“죽지 마…….”
“…….”
흙먼지로 더러워진 얼굴에, 눈가에서부터 볼을 내리긋는 두 개의 흰 자국을 닦아낸 날은 과거로 족하다. 타치카와 케이는 모르는 날의 이야기다. 그는 그날이 지나간 후일에 시노다 마사후미가 들인 제자니까. 시노다 마사후미가 제자를 들였다지. 그때는 그게 못내 싫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래서 박살을 내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왜 다들 떠나가려 해. 왜 다들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려 해.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오래된 생각이 부활하여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파고드는 목소리.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불안을 내모는 목소리.
“죽지 않을 거야.”
“봐. 두 동강은 아니잖아?”
코나미 키리에는 끝내 저와 함께 적을 베어버리라는 타치카와 케이의 제안을 거부했다. 출중한 전투 센스의 뛰어난 판단력은 그것이 블랙 트리거 사용자를 끝장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코나미 키리에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빙그르르 돈 코나미 키리에의 소게츠가 진 유이치가 가진 사이드 이펙트가 없는 한 예측하기 불가능한 기이한 각도로 꺾여 블랙 트리거 사용자의 목을 참수하듯 베어냄과 동시에 그자의 손에 들린 창 형태의 블랙 트리거가 겁도 없이 날 부분을 붙잡고 버티고 선 타치카와 케이의 손을 베어내고 가슴을 꿰뚫는다.
“대신 구멍은 좀 났지만.”
“하나도 안 웃겨…….”
“하하.”
무릎을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코나미 키리에는 제가 해야 할 말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난날 하지 않았다가 후회한 적이 있기에 코나미 키리에는 제가 그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니면 이 바보는 말하는 걸 잊어버릴 테니까. 있잖아. 응.
“하고 싶은 말 있어?”
할 수 있겠어? 성한 오른손을 들어 턱을 만지던 타치카와 케이가 눈을 깜박이며 잠시간 코나미 키리에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그를 보며 웃었을 때 코나미 키리에는 문득, 정말 문득 그가 저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더랬다. 정말 새삼스럽게도. 눈을 접으며 웃는 그를 보며 코나미 키리에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어렵네.”
어려워……. 떨어지는 손을 보며 코나미 키리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문장을 떠올렸다. 오래전 떠올린 문장과 같은 문장을 떠올렸다. 시노다 마사후미가 제자를 들였다. 코나미 키리에는 그가 싫었다. 여기서 그는 시노다 마사후미, 였지만.
오늘날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코나미는 문장을 명확하게 수정한다. 코나미 키리에는 타치카와 케이가 싫었다. 싫어. 정말 싫어. 이런 건 싫어. 정말, 정말.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