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 the Rainbow 1
- gwachaeso
- 3월 21일
- 3분 분량
<WT>
무라아라무라. 사망 소재 주의
1
그는 제법 멀쩡한 모양새로 모두 앞에 나타났다.
모두가 그의 사망을 예상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기에는 너무나 험준한 격전지라, 전선이 이동하거나 전세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다. 그제야 시도할 엄두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가운데 도착한 사람이었다. 그들 가운데로. 살아 있었냐고,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이냐고, 아니, 뭐가 어떻게 되었든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였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어 보이며 모두에게 의아함을 안겼다. 아니. 난 곧 죽을 거야. 그러고는 그리 말했다.
뭐?
내 시신은 집에 돌려보내고 싶었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 말도 전하고 싶었고.
그래서 왔어. 미안해.
모두 앞에 나타난 그의 모양새는 꽤 멀쩡했다. 그럴 리 없는데도.
이윽고 그의 트리온체가 부서지고 무너진 자리에 피 흘리는 자가 바닥으로 기울어져 쓰러졌을 때,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일부는 비명을 지르고 일부는 황급히 그에게 달려와 상태를 살폈지만 그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 스스로 자신의 시신을 지고 동료들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이 죽음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는 어떻게 트리온체를 ‘부지’했던 것일까? 트리거 사용자의 전투는 트리온체로 이뤄지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상자가 발생하는 때는 트리온체가 부서진 뒤 본래 육신이 전장에 무방비하게 놓였을 때였다. 트리온체가 더는 육신에 가해지는 공격을 막아주지 못했을 때. 그러나 그는 트리온체가 아닌 본래 육신에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트리온체로 육신을 전환한 뒤 귀환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세 가지 정도 들 수 있었다. 첫째, 트리온체가 파괴된 후 운 좋게 몸을 숨겼으나, 다시 트리온체로 전환하기 직전 습격을 받았다. 둘째, 트리거에 보관된 본래 육신에 타격을 입히는 공격 수단을 적이 가지고 있다. 셋째…… 는 지나치게 악의로 가득 찬 가능성이라 그 자리에서 함께 언급되진 않았다. 다만, 도망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놓여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면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진실은…… 그가 전하고자 했다면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그가 무어라 말했는지는 그의 유언 전문과 함께 불문에 부쳐졌다.
그래서 그의 시신이 집에 돌려보내졌느냐고 하면, 그 뜻대로 그리되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 말을 그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남겼느냐고 하면, 그 역시 그 뜻대로 그리되었다.
그 자리에 모이지 않은 이에게도, 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도. 다만.
코우, 아라후네가 너에게 남긴 말이 있어……. 문을 열면, 어둠 속에 무릎을 세우고 주저앉아 있는 인영이 있었다. 이번엔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로. 보이지 않은 채로.
2
옥상에서 나눈 대담이다.
“코우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충격이 크겠죠. 예상하긴 했습니다.”
“그렇겠지.”
“사람이 꼭 모든 경험에 숙달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침공은 장기전으로 전환되어 계속되고 있었고, 소강과 대치가 번갈아 이뤄져 지금처럼 잠시간 짬을 내는 것도 가능해졌을 때였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라후네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애의 사이드 이펙트는 현 상황에서 그 애 자신에게 유용할지라도 좋지는 않아요. 난간에 등을 기댄 아즈마가 말했다. 그야 지금은 전쟁 중이니까.
“기억하지 않는 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지금도 그 녀석 안엔 이 모든 일이 기억되고 있겠죠.”
“아라후네.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부 나쁜 일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도 지금은 좋은 일 한두 가지로는 덮기 힘든 일이 워낙 많잖아요.”
당신도 알지 않냐고 다 아는 소리를 덧붙여서 괜히 서로 심상할 필요는 없었다. 아라후네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로 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서로와 만나면 나눌 이야기가 언제나 적지 않은 편이었다. 아즈마는 한때 그 아래 많은 제자를 두어 길러내는 것에 재미를 붙였고, 아라후네는 스나이퍼 기술을 이론화하여 보급하는 데 관심을 두었으므로 무언가를 가르쳐 널리 퍼뜨린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날이 끝날 때까지 온종일 기술과 그것을 가르치는 방법과 이론화, 문서화 등에 대해 토론하고 토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이 그런 질문을 할 때는 아니기는 해서, 아라후네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연장자에게. 아, 물론. 지금 질문이 그가 연장자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근데 아즈마 씨는 왜 여기 계셨던 겁니까?”
그 말에 아즈마는 쓰게 웃었다. 또는 가볍게 웃었다.
“전망이 좋아서.”
“그 이유로요.”
“그 이유면 다지.”
마지막 순간에도 그거 하난 좋았거든.
올려다보면 과연 그랬다. 하늘은 새파랬고, 멀리 보이는 본부 건물은 꽤 멋있게 자리하고 있었으며(비록 지금은 트리온 병사의 포격으로 인해 외벽이 너덜너덜했지만) 사방은 탁 트여 경계 구역과 그 너머 미카도시(이곳도 현재는 경계 구역화 된 상태이긴 했다)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젠 가야겠지. 대화 즐거웠다, 아라후네.
잘 있으렴. 그러면서 ‘나중에 또 보자’라고는 하지 않은 그에 고개를 돌렸지만, 시선은 그보다 문이 열리는 쪽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사이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사이, 어디서 구했는지 한 손에 흰 국화를 든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아라후네는 그가 누군지 알았다. 오쿠데라였다.
“코아라이? 너 여기 있어? 어…….”
아라후네와 오쿠데라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말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멀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