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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Dance dance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코나미 vs. 타치카와



코나미 키리에의 소게츠는 트리온 효율을 생각하지 않은 단기 결전형 트리거로, 보더 정규 트리거의 규격에는 맞지 아니한바 소게츠를 사용하게 된 이후로 코나미 키리에 및 타마코마 제1부대의 대원들은 개인 랭크전 및 팀 랭크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트리거―예를 들어 그가 소게츠 전에 사용했던 두 자루의 짧은 호월을 사용한다면 다시 개인 랭크전에 정식으로 임하여 점수를 걸고 싸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들―그래 봤자 ‘아직도’ 고작 두 명에 불과하지만―이 제 점수를 추월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보더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코나미 키리에를 상대로 싸움 자체를 성립하게 만드는 이들도 그 둘 정도에 불과했다. 현 어태커 4위인 무라카미 코우도 포함한다면 셋 정도. 후일 쿠가 유마가 등장하여 코나미 키리에에게서 3할의 승률을 얻어내지만, 그전까지는 그와 제대로 싸울 상대라곤 겨우 그들뿐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코나미 키리에는 상당히 공격적인 소게츠의 특성으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한 방에 상대를 몰아붙여 끝장내는 것을 선호하는 한편, 한때 어태커 1위에 있었을 만큼 전투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며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수단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코나미 키리에 또한 거기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그 또한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길 원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와 제대로 겨룰 수 있는 상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얼마 되지 않은 인원 중 무라카미 코우는 스즈나리 지부 소속으로 팀 랭크전 기간이 아니면 본부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본부 소속인 카자마 소야는 개인 랭크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거니와 맡고 있는 중책이 많은 편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당연히 한 명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코나미 키리에 못지않게 전투를 즐기고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그 코나미 키리에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


오래간만에 두 자루의 짧은 호월을 허리춤에 찬 코나미 키리에가 본부에 등장했을 때 코나미 키리에의 ‘옛’ 전투체를 처음 본 대원들은 의아해했고, 오래전, ‘제1차 대침공’ 또는 그 직후에 보더에 소속되어 그를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코나미 키리에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당히 추측했다. 코나미 키리에의 옛 전투체는 지금처럼 짧은 단발머리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연두색 의복과 달리 케이프로 상체를 덮고 있었고, 전투체와는 상관없는 점이긴 하나 표정 또한 무표정하다 못해 날이 선 듯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출입구를 통과하고 복도를 가로지른 코나미 키리에가 마침내 라운지에 들어섰을 때, 이미 소식을 전해 듣고 라운지로 나와 있던 남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이 풀릴 때까지지?”


그건 남자―더 숨겨 무엇하랴,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단 한 명밖에 없거늘―타치카와 케이도 바라던 바였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코나미 키리에에게 그 이상 말을 붙이지는 아니했다. 그러나 타치카와 케이에게도 코나미 키리에에게 있었으리라 추측되는 심기 어지럽히는 일이 있었는가? 아니, 전혀 없었다. 물론 그 역시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표적인 ‘전투광’이긴 했으나, 그는 코나미 키리에처럼 분이 풀릴 때까지 호월을 휘두르게 하는 그 ‘분’이 없어도 호월을 휘두르는 데 문제가 없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편이 즐거우니까. 재밌으니까. 마찬가지로 두 자루의 호월을 허리춤에 찬 타치카와 케이는 그러한 제 태도가 코나미 키리에의 스트레스를 조금 더 가중하는 면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유쾌하게 굴지 않는 법을 모르는 자였다. 정확히는, 굴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자였다. 아니, 알면서도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자였다. 무슨 상관이랴? 그 스트레스마저, 분마저 풀어버리면 되는 것을. 싸우면 되는 것을. 자.


“싸우자고.”


호월과 호월이 부딪친다. 정확히는, 호월들과 호월들이 부딪친다. 양손에 하나씩 호월에 들려 있는 이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움직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전투에 익숙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익숙함을 넘어 이골이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실전에 익숙한 자들. 미카도시에서 방위 임무를 맡아 트리온 병사를 상대하는 것을 넘어 원정에서 마주친 적, 저들과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본 자들. 날과 날이 부딪치다 미끄러지고 손가락까지 베어내기 전에 빼낸 호월이 역수로 잡히고, 내리지른 검날에 뺨이 그이고 머리카락이 잘려 나풀거린다. 누구의 머리카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뺨이 그여 검은 트리온을 흘리는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 걷어차고, 날아가고, 중심을 다잡고, 도약하고, 부딪치고, 베어낸다. 찌른다. 내리친다. 트리온 전투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하지만 죽지 않을 것을 알지. 아프지 않을 것도 알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그 이상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승부가 난다. 타치카와의 장검이 코나미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를 케이프와 함께 베어버리며 본디 심장이 자리해야 할 자리를 갈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파고든 코나미의 단검이 본디 경동맥이 흐르고 있을 목을 베어내 그 수급을 공중으로 띄워 올린다. 망설임이 없다. 거리낌도 없다. 본디라면 사람이 죽었을 부상. 사람을 죽였을 공격. 그러나 이곳에선 실행을 저어할 이유도 없어서, 내리치고 찌르고 베어내고. 부딪치고 도약하고 중심을 다잡고. 걷어차는 분. 날아가는 울. 부서진 트리온체가 그 자리에 남아 쌓을 수 있다면 굉장한 광경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타치카와 케이가 코나미 키리에에게 물었다. 그는 ‘이제 분이 좀 풀렸어?’ 같은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코나미 키리에는 그가 좋았다. 그 점에서 그는 코나미 키리에의 호감을 얻어내는 자였다. 이렇게 묻기 때문에.


“계속할까?”


그럼 코나미 키리에도 그제야 조금 입꼬리를 올리며, 그제야 조금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그제야 조금 즐거움을 느끼며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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