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 gwachaeso
- 3월 27일
- 15분 분량
<WT>
스와카자스와 SF 안드로이드
1. 2 years
키자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미카도시를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미카도시에만 영향력을 한정했던 보더가 전국적으로 ‘필요’해지게 된 지도 그쯤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 좋은 변화, 현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더는 네이버의 게이트를 미카도시 경계 구역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엔 미카도시뿐만이 아니라 전국 전역에 보더 지부가 필요하게 되었다. 보더가 거의 독점했던 기술도 일부는 민간 기업과 공유하게 되었으며, 이는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끌어내게 되었고, 이후론 대충, 그들이 개발해 낸 전자제품 신제품을 소개한 카탈로그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 흔히 ‘근미래’라고 표현했던 미래가 도래했음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카탈로그는 스와의 책상 또는 종이류 재활용 통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퇴근하며 내버려두고 온 사무실 책상 서랍 속이라던가. 미카도시를 떠난 지 2년째. 그러나 보더를 떠나지는 아니했기에 어느 지방의 보더 지부로 배속된 지 2년째. 그와 동시에 전투 요원에서 사무직원으로 근무를 변경한 스와는 여전히 미카도시 타마코마 지부에서, 이제는 전투 교관으로 훈련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키자키가 보낸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명절에는 꼬박꼬박 고향인 미카도시로 돌아갔으므로 얼굴 본 적이 까마득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사이가 틀어질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므로 새삼 결투장 같은 게 날아올 일도 없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와 탁자 위에 올려둔 채로 스크롤을 내렸다.
아, 이 녀석들. 나 빼고 자기들끼리 마셨다고 자랑하는구먼. 과연 주점으로 보이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의 사진이 ‘너 빼고 마셨다’라는 짧은 문장 아래로 올라와 있었다. 발송 시각은 2분 전이었다. 그리고 스와는 2분, 그리고 2분 동안…….
사진을 노려보았다. 장난해?
가져온 맥주는 따기도 전이었다. 그러니 알코올 때문에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그 정도 판단은 가능할 만큼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사진을 누르면 누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면면이 그를 반기는데, 시선은 단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단 한 명. 거기에는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 한 명 찍혀 있었다. 있어선 안 되는. 있을 수가 없는.
스와는 당장 키자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키자키의 전화번호야 휴대전화 주소록에 당연히 저장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간신히 그 애의 이름을 검색해 번호를 찾는 것이 한계였던 만큼 눈이 돌아간 스와는 그래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전화를 받은 목소리의 주인이 키자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여보세요. 그 말에, 야. 그렇게 외치긴 했지만. 너.
「목소리 좀 줄이지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그제야 전화를 받은 사람이 키자키가 아닌 걸 깨달았다. 라이조. 그래. 이름을 부르는 사이 아주 조금 식은 머리로 깨달은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일부러 보냈지. 너. 맞아. 잘 알고 있네. 진정했어? 아니. 그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꺼낸 테라시마에게 좋은 말이라곤 이 이상 들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장 물어야 할 말을 꺼내 그에게 물었다. 본론으로 들어갔다고 하고 싶지만 본론이라 해서 딱히 길어질 말은 아니었다. 그거 뭐야. 스와. 그거 뭔데 거기 껴 있는 거야. 알잖아. 알긴 뭘 안다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실제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지만.
“카자마가 거기 왜 있어?”
「……제법 잘 만들어지긴 했지? 너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말문이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카자마 소야는 죽었다. 2년 전에.
2년 전에 죽은 친구가 조금 전 찍힌 사진 속에 버젓이 앉아 있을 리는 없으니 머리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야 했고 이윽고 납득 가능한 답을 도출해 냈지만, 그럼에도 스와의 입에선 원색적인 욕설만이 그의 인내심을 끊고 뛰쳐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끝내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으니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 ‘미친’의 ‘미’까지는 나올 뻔하긴 했다. 그 뒤 들린 문장이 아니었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사이 전화를 바꿨는지 전화기의 주인인 키자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버님 부탁이었다.」
입을 다물었다. 말을 자를 수도 없어서, 키자키의 말은 그대로 마저 이어졌다.
「전에 잠깐 얘기 나오긴 했지만…… 어머님께서 많이 편찮으셔. 그런데 요즘 많이 선전하잖아. 보더와 기술 교류한 기업에서 만드는 생활 보조 간병용 안드로이드.」
알고 있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커스텀도 가능하다고 홍보하던 광고지 속 그거.
“……많이 안 좋으셔?”
「지병도 있으시고 나이도 있으셔서. 아무래도.」
“…….”
「둘째 아들이랑만이라도 시간 보내게 하고 싶으시다고 어렵게 부탁하시길래, 그래서 협조했다. 우리도.」
수화기 너머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동화책에 그려진 증기기관차의 연기처럼 길게, 뻗어 나와 흩어지는 연기를 연상케 했다. 연기 속에서 말이 이어진다. 이런 얘기 꺼내서 미안하긴 해. 하지만 우리도 마음이 편치는 않아. 스와. 하지만.
「걜 잃은 게 우리만은 아니야.」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듣고 있어?」
듣고는 있었다. 대답할 수 없었을 뿐이다.
「우리에겐 친구였지만…….」
친구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는 하나 남은 아들이기도 했으니까…….」
하나뿐인, 다른, 다른 무언가였다고는…….
「…….」
…….
.
언제 올라올 수 있냐? 와서 그냥 얼굴 보고 말하자고. 테라시마의 말이 수화기 너머로 끼어들어 들어왔다. 스와는 그가 볼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고.
2. Turn back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하마터면 방금 문 돗대를 그냥 땅바닥에 뱉어낼 뻔하였다. 간신히 붙잡아서 망정이지 다시 입에 물 생각은 새까맣게, 또는 새하얗게 잊힌 채 카자마를 돌아본 기억이 났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냐? 안다. 그럼 쓸데없는 복선 깔지 마, 망할 자식아. 이것도 복선으로 취급되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건 너잖아, 스와. 그건 그랬지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갑자기 이런 고백을 들을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기에 스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가히 공격과도 같은 고백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고백. 고백의 예고조차 제삼자에게 안기는 충격이 이럴진대, 진짜 고백을 받을 누군가에게 다가올 그의 고백이란 얼마나 충격적일까. 짐작할 수 없었다. 감히 추정할 수 없었다.
너무한데.
내가 뭘.
친구로서 응원해 주진 못할망정 재 뿌리는 발언만 하고 있잖아, 스와.
내가 응원하면 뭐,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 같냐?
그 말에 너는 미묘하게 웃었다.
응.
나는 당연히 웃지 않았다. 그야, 반가울 리 있겠냐고. 네 고백 따위.
확 실패하라지. 그래도 소리 내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친구였으니까.
친구…….
네가 그랬잖아. 친구로서 응원해 주진 못하겠냐고. 네가 그랬다고. 우리는…….
우리는…….
“스와.”
부름에,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았다. 그날 그 자리에, 그 자리 그대로 서서 말을 거는 것쯤이야 우연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금방 그 사실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그것에 붙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상관없이, 그것은 나를 스와라고 부른다. 내가 아는 목소리로,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로. 재생하지만 그뿐이라는 것을 나는 내 온몸에 힘을 주어 버티듯 서서 견뎌내고 겨우 상기해 낸다. 그뿐이야. 그뿐이야…….
“나는.”
“말하지 마.”
나한테 할 생각이었다고는 말하지 마. 말하지 말라고.
왜…….
이제 와서…….
웃기네요. 아니잖아요. 알고 있었잖아요. 적어도 반은 눈치채고 있었잖아요.
하지만 직접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어. 한 번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 않아요?
맞아.
맞아…….
영원히 확신할 수 없어. 영원히 질문의 답을 알 수 없지. 영원히 추리할 뿐이야.
영원히.
끝까지.
죽을 때까지.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다시 돌아가서 너에게 묻는 거야. 야, 카자마. 돗대 따위 땅바닥에 뱉어내고 말하는 거야.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긴 해? 그럼 너는 말하는 거야. 안다. 안다고. 그래. 그럼 쓸데없는 복선 깔지 마. 그럼 너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럼?’
그럼…….
나는 말하는 거야. 다시 돌아가서 너에게 말하는 거야. 사실, 나. 너를.
“그날에도 말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았다. 나, 언제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그보다 저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스와. 솔직해져라.”
뭐라는 거야?
“너는 말 못 해. 지금에 와서도.”
뭐라는 거야, 너?
‘확 실패하라지.’ 그 일그러진 바람대로 너의 고백은 세상에 나올 일 없이 실패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한다지. 고백할 네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죽은 바람에 너의 바람은 이뤄질 일 없이 사라지고, 사라져서, 세상 누구도 너의 마음을. 아니. 아니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꽉 막힌 채로 살아갈 거예요? 말했잖아.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그럴 거라고. 그래야지.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어…….
“좋아해, 스와.”
너는 못하지만 나는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듯이.
그렇게 말하듯이…….
알고 있었다. 이것의 목소리는 목이 아닌 스피커에서 재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목을 비틀어도 소리를 멈추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이것과 다른 나는 내 목을 쥐어짜야지만 겨우 소리낼 수 있었다. 야. 너. 그래 봤자 소용없어. 알아?
“넌 카자마가 아니야.”
“그런가.”
“그래. 왜인지도 알아?”
분명 질문이었지만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행동은 실로 정답이었다. 실로 관심 없었으니까. 왜인지 알아서 뭐 해. 안다는 것을 내가 알아서 뭐 해. 그러니 그것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 하고 싶은 말을 하기를. 그러기를.
“이래서야.”
“걔는 성격도 나쁘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너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
나를 죽이려고. 나를…….
나는…….
그러자 그것이 속삭였다. 멱살이 붙잡힌 채로, 스와.
“그때로 다시 돌아가.”
무슨 소리야.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스와 코타로가 여기 있고.”
“카자마 소야가 여기 있겠지.”
“그때는 말하는 거야.”
“스와.”
뭐라는 거야, 너. 뭐라는 거야, 지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카자마에게.”
그럴 수 없으니까 여기 이렇게 있는 거잖아, 멍청아.
“그럴 수 있게 되면 그땐 망설이지 말라고 하는 거야, 너야말로 이 멍청아.”
그리곤 그것이 웃었다. 너와 똑같이, 그날의 너처럼.
아, 뭐라는 거야. 정말 뭐라는 거야……. 정말…….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속으로 중얼거릴 수 있었다. 너에게. 이렇게. 야, 카자마. 저것 좀 봐. 널 닮아 놓고 헛소리하는 것 좀 봐. 웃기지. 웃기지…….
웃고 있어?
너도.
원래대로라면 먼저 말을 거는 것은 그것이 되어야 했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턴 내가 먼저 그것에게 말을 걸었다. 야. 여전히 그것을 카자마라고는 부를 수는 없었지만, 야. 가자. 그렇게는 그것을 부를 수 있었다.
“깜깜해지기 전에 내려가야지. 계단 안 보여.”
“난 상관없는데.”
“얼씨구.”
좋겠다. 그렇게는 그것에게 말할 수 있었다.
“좋겠다.”
그렇다고.
3. Bad Ending
“걔는 성격도 나쁘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만.”
“너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거든.”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
스피커를 망가뜨리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발성을 의도하고 음원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목울대가 있을 부근에 설치되었던 듯한 스피커는 망가진 것인지 더는 아무 소리도 출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그것은 이제 입만을 소리 없이 뻐끔대며 나에게 무어라 무언가를 전하려 하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이 순간 나에겐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을 권력이 있었고, 권력을 내 마음껏 휘두르는 나는 폭군이었으며, 그것을 내게 세습한 너의 모습을 똑딴 그것에 나는 속지 않을 만큼 영민했다(실은 어리석었다). 양위를 했으면 죽으소서, 선왕이여. 아니면 죽음으로써 선위하십시오, 폭군이여. 아니면 입을 다무소서. 영원히. 죽고 싶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너에게 그것이 중요하다면.
나에겐 너무도 중요했어……. 알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만큼, 살아온 기반을 무참히 버릴 만큼.
“야…… 우리는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별거 없는 도시가 무어 그리 좋다고 이렇게 쓸데없이 발에 챌 만큼 많은 추억을 쌓아온 거냐?”
견딜 수 없을 만큼.
문장이 너무 길어, 스와. 그렇게 말해주면 좋았겠다. 그러나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린 그것에선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봐……? 어떻게든 다리가 꼬이지 않도록 쓰러지는 그것을 받쳐 난간에 등을 기대도록 앉혀두었다. 뭐야. 뭔데. 스피커 뒤에는 전원 스위치라도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이 그것은 눈 뜬 채 그대로 숨 없이, 허리는 조금 앞으로 기울어진 채로 맥 없이, 앉아 있어서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너도 어쩌면. 오늘의 이 순간처럼 어쩌면.
아.
‘확 실패하라지.’ 저주한 것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저주했다는 사실을. 저주란 상대 무덤과 내 무덤을 같이 파는 짓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와 코타로는 함께 팠던 거야. 자신의 무덤도.
너의 무덤 옆에.
“……그래. 곧 갈게. 기다리고 있어.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무슨 일이야.”
테라시마가 전화를 끊고 주섬주섬 자리를 일어나며 말했다. 스와가 로봇을 망가뜨린 것 같다고. 스와가? 아무래도 그럴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되물으면 생각보다 망가지기 쉽긴 하다고 변명 아닌 변호를 늘어주는 친구였다. 감정이 좀 격해졌나 보지. 아무래도.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래도 된다는 말뜻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카자마를 죽였어.’
‘……그건 카자마가 아니야. 아니라고 말한 건 너였…….’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때를 말하는 거야. 2년 전에, 내가.’
그것이 그날을 알고 있는 이유야 별거 없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그 말에 테라시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기억이 있다. ‘트리온체로 고백할 생각은 아니지?’ 그 말에 의상 따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헛, 하고 굳어지던 얼굴에 에휴, 한숨쉬었던 그였기 때문이다.
4. Past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던 건 너잖아, 스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스와 씨, 그게…….”
“그게 뭐?”
“그게…….”
왜 다들 나한테 사실을 알려주길 망설였을까?
“카자마 씨가…….”
“카자마? 걔가 왜?”
“그만…….”
그만…….
왜 마지막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못했는지.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말하지 마. 왜 나는 머릿속에서 수없이, 연거푸 그리 외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선 멍하니, 멍청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책에는, 특히나 추리 소설에는, 복선이란 게 있고 단서란 게 있고 독자는 그것들을 모아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밝혀놓을 진상을 추리한다. 그러니―내 말은, 그것은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풀려야 할 진상이란 것이다. 물론 저처럼 추리 소설을 진탕 읽은 독자라면 중간쯤 읽었을 때 작중 인물들보다 먼저 진상을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그건 책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떠들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일까? 그만. 그만해. 그만 말해.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어라 말할지 알고 있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버리고 말았고, 그렇지만 이건 책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 마지막에 도달할 때까지,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왜?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좋아하는 사람 있냐?’
이 전쟁이 끝나면 고백할 거다.
‘있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수 있으면, 그럴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혼자 꿍쳐놓을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질문을 했던가? 혹시나 하면서도 확인용으로.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는 다시는 펼쳐보지 못할 페이지가 되어버렸으니 그러면 안 되는데 난.
노을 진 하늘을 마주하며 난간을 잡고 선 네가 눈에 선하다. 아직은.
언젠간 잊어버릴, 그리하여 잃어버릴, 그러기 쉽도록 책에서 찢긴 페이지지만.
내 손에 쥐어진.
내 손에만.
“스와 왔네. 알아볼 수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앨범을 만들었나 보다. 그들 모두 손에 찢긴 페이지만 들리게 되어서, 스와만이 잃은 게 아닌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는 그들 머릿속에서 흐려져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저장하고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재생하는 장치를. 그것을 본 순간 스와도 그 사실을 이해하고 말아서 생각처럼 모나게 굴 수 없었다. 마주한 순간엔 저 역시 날 선 모를 깎아버려야 했다. 테라시마는 스와를 ‘기억하지’라고는 묻지 않았다. ‘알아볼 수 있지?’ 염색을 관둔 지 꽤 되어 까맣게 돌아간 머리카락을 빤히 보던 그것은 일상적인 투로 스와에게 말했다. ‘염색은 이제 관둔 거냐?’라고.
그 말에 저는 웃었던가……. 소리가 있었나, 얼굴만 일그러뜨렸나.
대답했던가.
맞아. 관뒀어.
전부 관뒀어.
친구만이 아니었던 관계로 만들던 감정도.
그밖에 다른 것들도.
나고 자란 고향에 머무르는 것도. 살아온 기반을 유지하는 것도.
아, 우리는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별거 없는 도시에 쓸데없이 발에 챌 만큼 많은 추억을 쌓아와서…….
‘좋아하는 사람 있냐?’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무슨 대답을 기대해서?
스와에게는 다 읽지 않고 엎어놓은 책들이 꽤 많았다. 읽다 보면 결말을 읽고 싶지 않은 책들도 제법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말부를 아예 뜯어놓는 식으로 훼손한 책은 지금껏 단 한 권도 없었다. 당연히, 당연히도. 그렇지만 그가 뜯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뜯긴 책이, 찢긴 페이지가 흩날린다. 허공에. 다시 말해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 아.
우리가 함께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면 좋았겠다.
우리가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우리가 함께…….
“그날에도 말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5. Past 2
임무는 실패했고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너는 돌아왔다. 우리는 여기서 ‘돌아오다’란 동사와 ‘너’란 명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임무는 실패했으나 유능하기론 버금을 허용치 않는 너의 부대는 너를 두고 올 생각 따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너’는 돌아왔고, 다만 거기에 너의 의지는 없었다. 너의 의지 없는 귀환. 너의 의지, 그것을 ‘너’라고 본다면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문장은 참이고 의지가 없는 육신, 비록 그뿐일지라도 그것을 너라고 인정한다면 네가 돌아왔다고 말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러니 너는 돌아왔고, 동시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건 너였고, 동시에 네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나였다. 네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상관없이 그냥 나, 그대로인 나.
너를 좋아했던 나. 너는 모를, 모르는, 너는 모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그런…….
너를 남겨둔 채 전쟁이 끝났다. 아직 혼란에 잠겨 있는 미카도시와 불안에 잠겨 있는 시민들, 좀 더 이기적으로 파고들자면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쯤 나는 끝나지 않는 잔업에 지쳐 잠시 엎어져 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이 전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그 애를 만났다. 어쩌면 너와 더 친했을지도 모를 녀석이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스와 씨.
그 애는 코트 차림이었다. 날씨가 쌀쌀하니 그럴 수 있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나도 아는 새에 미간을 찌푸리고 그 애를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그 애를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그 애가 아니라 그 애의 코트 차림이다. 차림새에 분노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게 들릴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와.
“타치카와. 너도냐?”
그제쯤 있었던 일이다. 대충 그날 치 일은 마무리되어 일을 도와준 사사모리에게 일어나보자고 말하며 트리온체를 풀었는데, 아이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묻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와 씨. 사실 저.
조금 무서운 것 같아요. 원래 몸으로 있는 것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란 어찌나 무서운지.
사사모리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그들이 겪는, 대표적인 후유증 그 첫 번째였을 뿐이었으므로.
“스와 씨가 생각하는 이유는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고, 라고는 묻지 않았다. 그 전에 먼저 그답지 않게 주변을 둘러본 아이가 다시금 스와와 시선을 맞췄다. 후일 생각하기로는 이즈미라던가 그의 부대원이 나타나진 않을지 조금 경계했던 것 같다. 그 역시 한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지 않았나. 그러나 스와에게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들에겐 비밀이야.
그리 말하고는 트리온체를 해제했다. 스와는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 물었다.
“야, 너…….”
“미리 말하는데 싸운 건 아니야. 붙잡으려다가 넘어져서 구른 것뿐이니까.”
인대가 늘어났다며 가볍게 깁스로 감싸인 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얼굴에도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라고 물을 필요는 덜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다는 거니까. 어차피 제 부상을 보이기도 했겠다 이제 와 감출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타치카와는 순순히 말했다. 어제, 추모식이 있었던 공원에 오늘, 본부로 가기 전 혼자서 털레털레 가보았더랬다. 손에는 꽃 한 송이를 쥐고 도착한 그곳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울고 있었고, 그러다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어느 부인을 포착. 붙잡는다고 붙잡았는데 하필 헛디딘 곳에 열두 단 정도로 이뤄진 그리 높진 않은, 그래서 다행인 계단이 있었다. 부인은 무사히 계단 위로 올려보내고 저는 영웅처럼 추락. 그래도 그 뒤에 바로 병원에 다녀와서 지금 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스와는 이마를 짚었다. 그랬으면 트리온체로 쫄래쫄래 나다니는 게 아니라 쉬었어야지, 이 자식아. 그랬다간 좀이 쑤셔서 죽었을 거야, 진짜로. 틀림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죽는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이제 와 말하는 것은 도리어 죽음을 과하게 신경 쓰는 걸 드러내는 꼴이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녀석이 들어야 했을 말을 들려주기로 했다. 들키지 않도록 숨기느라 듣지 못했을 말을. 그래도.
“잘했네. 제법 멋진 행동을 했잖아, 너.”
“글쎄. 잘 모르겠어, 스와 씨.”
그런데 의기양양해야 할 줄 알았던 녀석의 태도가 썩 밝지 않았다. 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었어? 그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가 부인을 바로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털어놓는다. 부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말을 걸기 위해 그쪽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왜 말을 걸려고 했냐면, 부인이 중얼거린 이름을 들어서 그렇다.
소야.
“…….”
“카자마 씨 가족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모르겠어.”
다가갔다가 넘어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타치카와는 한사코 도와주겠다는 말을 거절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아무튼 그래서 현재 이 상태. 그래. 그렇구나.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타치카와가 트리온체를 풀었을 때 꺼버린 담배가 품 안의 담뱃갑 안에 든 마지막 한 개비였다. 스와 씨라면 알았을지도. 친했잖아.
카자마 씨와. 그 말에 너도 친했으면서, 하고 말하며 살짝 발로 차는 시늉을 한다. 그 뒤론 한참을 더 가벼운 웃음 섞인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애를 먼저 내려보냈다. 다시 트리온체로 신체를 전환하는 그 애를 보다 집에나 가라고 면박을 준 후, 몸을 돌려 입김을 연기처럼 뿜어내며 밤하늘을 보았다. 잔업은 끝도 없이 쌓여 있고, 돌아가면 마저 일을 해야 하고, 그렇지만 그래…….
일이 다 끝나면 이곳을 떠나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돌아온 건지 아닌 건지, 너인지 네가 아닌 건지 아리송한 너와 달리 나의 선언은 이같이 명확하니 달리 해석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나면.
여길 떠나는 거야.
그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이름을 듣고 그 애처럼 다가가긴커녕 다가가지 못하고 말도 걸지 못하고 그저 멈춰 있기만 할 멍청하기만 한 나는 아마 여기서 계속 살 수 없을 것이다. 없을 터이니, 그래. 그러니.
가자.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살자.
나 역시 알고 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래. 그러니까다. 그러니까 나는.
가자.
그 말은 곧.
살자.
이와 같음을 나는 알았고 내가 나를 옳게 읽어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애에게 그러했듯 잘했네, 제법 멋진 결심을 했네, 나, 하고 칭찬하지 못했다. 도무지 말이다, 잘했네, 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대신 마음속 한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이내 옥상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옥상에 남겨두고 가는 내가 내 등 뒤에서 말하는 말을 듣지 않고 내려가기로 한다. 실로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고 무사히 살 수 있게 되지만 언젠간 마주해야 할 날이 올 것을, 그때도 사실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남겨두고 간 내가 내 등 뒤에서 던지는 말은 다음과 같다.
“확 실패하라지.”
6. Bad Ending 2
그는 사람에게서 수많은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중에 어떤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건강에 이롭지만, 어떤 소리는 반드시 들려야만 한다. 귀에 닿아야만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그래, 숨……. 숨소리도 이에 해당하였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숨소리, 바람 소리. 재현할 필요가 없어 설정되지 않은 소리는 재생하지 않는 기기에선 들을 수 없는 소리. 살아있는 사람의 소리. 인간의 소리. 스피커에서 재생되지 않고 장기, 기관에서 울려오는 소리. 키쿠치하라 시로는 듣지 못한 소리. 기계 껍데기를 쓴 앨범에선 들리지 않는.
볼 거야?
‘만날 거야?’라고 묻지 않은 것은 우타가와가 그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키쿠치하라는 고개를 저었다. 일찍이 데이터를 입력할 때 의자에 앉은 그가 마주한 것은 누군가의 껍데기가 아닌 컴퓨터, 그리고 녹화 기기였다. 키쿠치하라는 그것이 만들어지든 말든 솔직히 상관하고 싶지 않았으나…… 가족의 부탁이라기에 그만 협조하고 말았다. 가족인가. 아니면 유가족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모른다. 이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안 볼래.
그래서 그대로 보지 않을 줄 알았다. 끝까지. 기계에는 기계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있어 그 소리만 잘만 감지한다면 그것을 보지 않도록 이동 동선을 짤 수 있었다. 키쿠치하라의 의견이 분명하기에 다른 이들도 그에 협조해 주었다. 보고 싶지 않을 수 있지. 당연하잖아. 나라도 불편할 것 같은걸. 아무리 부탁받았다곤 해도. 뭐가? 로봇이? 아니.
내 마음이.
마음을 읽는 사이드 이펙트 소유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의 소리를 읽을 줄 아는 이는 아직 없어서 우리는 얼마든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그래서 키쿠치하라가 속으론 비명을 질러댔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명까지야. 그날도.
비명은 지르지도 못했다. 일생 그는 소리에 압도된 적은 있어도 정적에 압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 정정. ‘더는’ 들리지 않는 소리. 심장 소리. 숨소리. 생의 소리. 대신하여 진득하게 흐르는 물의 소리. 흐르지 마. 말해 봤자 멈추지 않는.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듣고 싶지 않아……. 소리도, 정적도.
거리의, 모 건물 아래에서 그들과 만나고 그것을 보았다. 음주 운전은 할 수 없어 택시를 다시 부르려고 했다는 테라시마를 발견한 건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고 있던 우타가와였다. 라이조 씨. 오랜만이에요. 어디 가시는 길이면 태워드릴까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키쿠치하라는 우타가와의 붙임성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뚱하니 있는데,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나사가 아닌 넋이 빠진 사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안아 들고 있는 스와를 테라시마의 뒤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직후 우타가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봉지.”
“어?”
“비닐봉지 어디 있어?”
급하게 꺼내준 빈 봉지를 받아 입을 벌렸다. 아, 정말. 최악이야. 생각하면서.
웩.
7. 2 years 2
최초에 보더가 있었고, 경계구역이 있었다. 경계구역 밖에는 미카도시의 나머지가 있었고, 제3차 대규모 침공의 피해는 경계구역과 미카도시의 경계가 아닌 미카도시와 그 외부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었다. 진원지인 미카도시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다. 피해는 제1차 대침공 때를 방불케 했고, 일부는 넘어섰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고 또 죽었다. ‘부상자’가 아닌 ‘사상자’로 표현되는 인명 피해는 보더 요원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네가 있었다.’ 스와는 그날을 그리 회상했다. 또한 표현했다. 2년이 지나 지난 2년을 돌아보며 스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네 생각을 하진 않았어.’ 정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스와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정 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못 된다.
죽은 친구에게. 앞으로도 영원히 친구로 남을 사이에. 친구로 끝난 친구. 사이. 마지막까지 친구 외 다른 사이는 되지 못한. 그런 그에게 하는 고백. ‘생각보다 네 생각을 하진 않았어.’ 나는…….
요금소를 넘어선다. 2시간을 꼬박 운전한 차가 미카도시로 서서히 진입한다. 스와 코타로는 2년 전 미카도시를 떠났다. 머무를 수는 있어도,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고 있어?」
내비게이션을 화면에 띄운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친우의 음성이다.
“거의 다 왔어.”
대답하며 되묻는다.
“어디로 가면 돼?”
차로 와서, 차 댈 곳이 있어야 해. 그러자 그건 걱정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넘어온다.
「미카도시 시립 병원.」
주차장에 빈자리 꽤 있더라. 너 올 때까지 다 차진 않을 거야. 밥은 먹었어? 슬슬 점심 때인데. 식사부터 하자고 할 걸 그랬네. 끼어들 틈도 없이 이어지는 친우의 말이었다. 때문에 스와는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어야 했지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너흰 먹었어?’ 간신히 대답한 후 다시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하마터면 조금 전 ‘병원?’하고 되물을 뻔하였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올 뻔한 것이다. 그게 병원에 왜 있어? 그러니까…… 정비소가 아니고? 그러나 다행히,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입을 막은 것은 의문 뒤를 뒤따라 급히 쫓아온 답, 상기해 낸 그것의 목적이다. 간병용이라고 했었지. 참. 그럼 병원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환자는 그것이 아니라 그것 옆의 사람이니까. ‘입원하실 만큼 많이 안 좋으신가.’ 입 밖으로 내어도 되는 정도의 물음은 딱 그 정도이나 스와는 친우의 질문에 답할 때 외엔 입을 열지 않기로 한다. 실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수를 사양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스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와만…….
「걜 잃은 게 우리만은 아니야.」
스와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럼에도 유세나 유난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알고 있다.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이 스와만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스와가 겪은 상실을 내리칠 수는 없었다. 누구도. 아무도. 높이 매달린 차량용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스와는 2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을 회상한다. 당시 스와는 보더 전투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전투에도 직접 참전했으며 눈앞에서 직접 전우의 사망을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부상하는 장면은 적잖게 목격했었다. 트라우마가 생길 법했다. 트라우마가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든 일이 끝난 뒤 미카도시를 떠난 사람이 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더를 그만둔 사람도, 멀리 떠난 사람도 있다. 스와는 미카도시 외부의 보더 지부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보더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멀리 떠난 편에 속했다. 아닌가, 그렇게 멀리 떠난 편은 아닐지도. 정말 멀리 떠나기로 작정한다면 정말 멀리, 멀리 떠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멀리 떠난 건 아닐지도. 그리고 신호가 바뀐다. 이 이상의 생각은 그만두기로 한다.
그만둔 생각은 그 외에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외양만큼은 똑 닮은 사진 속 그것을 보다, 실행한 휴대전화 갤러리 속 사진을 보며 생각한 것. 2년이 지나 2년을 돌아보며, 그를 보며, 스와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말하지는 않고, 생각만 했다. 처음엔.
‘어이, 카자마.’
이름을 생각했고,
‘생각보다 네 생각을 하진 않았어. 나는.’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며 그런 평가를 내렸다. 자신에게. 스와는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네 생각을 하진 않았다는 말. 진짜야, 나는. 그저.
생각한 만큼 네 생각을 했어.
그만큼만 생각했을 뿐이야.
‘그뿐이야.’
하나뿐인, 다른, 무언가. 무언가였을 뿐인, 그런 것. 그런 생각이었을 뿐이야.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받아들인 무언가.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상실. 2년 전에 끝난…….
「듣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