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비자림

Absence

  • gwachaeso
  • 3월 18일
  • 14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드라마 <괴물>

IF 이동식 없는 한주원, 한주원 없는 이동식. 미완



1.



신문에 대서특필 된 살인범 이동식은 한때 경찰이었으며 경기도 문주시 만양읍 만양파출소에 근무한 바 있으나, 지금은 당연하게도 그 모든 소속을 잃고 네 자릿수의 번호로 불리는 인간이었다. 2건의 살인으로 기소된 그는 범행이 잔인하고 참혹하기 그지없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무기수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한기환 경찰청장의 외아들이자 서울청 외사과에 경위로 근무 중인 한주원 경위가 찾은 것은 어느 해 10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동식은 주변 인간관계가 좋아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이를 인정치 않고 일부 결백을 주장하는 이들이 존재하기도 했다. 일부 결백이란 일부는 그들조차 무죄를 주장하지 못할 만큼 명명백백히 드러난 범행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가 현장에서 체포되도록 만든 만양슈퍼 사장 강진묵에 대한 살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강진묵은 이동식과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로, 요양원에 십여 년째 머무르고 있는 이동식의 어머니를 주기적으로 찾아 보살필 정도로 그의 가족 모두와 돈독하고 선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이동식이 그를 살해했을 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강진묵의 자택 마당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이동식이 자백한 범행은 강진묵 살해가 유일하다. 다른 건에 관해선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동식이 한주원과의 면회를 허락한 이유는 그들이 완전히 초면이라는, 관계 아닌 관계가 환기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주원의 아버지 한기환 경찰청장이 과거 문주경찰서 서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한주원 역시 문주에 몇 번 방문한 사실이 있으나, 벌써 스무여 해 전으로 열 살도 되지 않았던 그가 스무 살 청년이었던 이동식과 접촉한 적은 없었다. 그 당시 이동식이 한 건의 살해와 한 건의 납치 및 상해의 유력한 용의자였음을 한주원이 기억하고 있는지 역시 불명확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전국에 없을 정도로 낱낱이 언론에 폭로되었고, 이로 인해 당시 수사를 종기 종료한 한기환 경찰청장에게 다소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만천하에 이동식의 범행이 드러나고 체포될 당시 한기환은 유력한 차기 청장 후보로 꼽히고 있던 본청 차장이었다. 그의 승진에 이변은 없었다.


이동식은 한주원을 알지 못했다. 한주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수사본부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면서도 이동식에 관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그는 이동식을 잘 모르면서도 잘 아는, 다시 말해 수없이 많은 사람 중 하나와 다름없었다. 한주원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동식에 관해서 알게 되었는지는 불명하다. 이동식은 상대가 자신에 관해 자기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한 채 그를 만났다. 그럼에도 그들의 첫인사는 처음 뵙겠습니다, 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청 외사과 한주원 경위입니다.”

“이동식입니다.”


고개를 까딱한 이동식의 태도는 예의 있다고 할 순 없었지만 무례하다고 말하기엔 여간 곤란한 것이 이보다 더 예를 차리면 그와 상대 모두 어색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동식은 짤막한 인사를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를 찾은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이동식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기에,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질문으로 그의 대답을 유도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동식이 먼저 입을 말해줄 의리 따위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와 삼십년지기 친우 사이였던 오지화 경위에게도 해당하였다. 문주경찰서 강력계 1팀 팀장 오지화는 이동식을 직접 체포한 형사이며 사건 이후 다소간의 휴직 후 복귀한 상태였다. 친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미란다 원칙을 읊어야 했을 그의 심정은 그저 참담했다. 그는 사건 당시의 실책으로 인하여 승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두 건의 살인으로 복역 중이시죠. 만양슈퍼 사장 강진묵, 강진묵의 딸 강민정 살해 건으로.”


이동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주원의 말이 질문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강민정 씨의 시신은 당신 집 지하실에서 발견되었죠. 당신은 만양슈퍼 강진묵의 가택 마당에서 강진묵의 시신과 함께 발견되어 현장에서 체포. 발견 당시 흉기를 들고 있었으며 직접 피해자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내가 죽였어. 현장에선 그 다섯 음절이, 두 어절이 그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진술 전부였다고 한다. 마당으로 들이닥친 형사들이 주춤대며 그를 둘러싸자 그는 흉기를 내려놓고 그렇게 말했다. 오함마는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바닥에 깔아 둔 보도블록을 부쉈다. 네가 민정이도 죽인 거야? 이동식은 오지화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진묵이 형도……? 단지 발치로 시선을 돌려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으나 자신이 죽여버린 사람을 얼어붙은 눈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그의 눈은 훨씬 온화했다. 불씨가 있었다. 그러나 한주원은 그게 그림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종이 위에 그려 넣은 벽난로. 실은 온기 따위 전혀 없는 까슬한 종이 질감뿐인 구겨진 남자. 구겨진 인생. 구겨진 진실. 한주원이 입을 연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하납니다.


“이동식 씨 동생 이유연 씨 말입니다.”


이동식의 입꼬리는 현재 위치에서 변함이 없다. 예상한 질문이었을 터이다.


“정말 당신이 죽였어요?”


그러나 한주원이 예상 안의 인물인가?




2.



“한주원. 한기환 경찰청장의 아들.”


한주원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으니 이동식의 발언에 따른 반응이었다. 한주원은 잠자코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이동식이 만양에서 동생의 실종에 관한 뒷말을 듣지 못한 날이 없었던 것처럼 한주원도 틈만 나면 자신의 아버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 들은 말의 성격이 다른 것을 알기 위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진 않다. 당사자는 원치 않을 이야기를 잦은 빈도로 빈번하게 들어야 했다는 공통점만이 존재하는 화제다. 한주원이야 워낙 학을 뗐고, 이동식 역시 그 두 사람을 해친 것이 실은 자신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실대로, 사실이 아니면 사실이 아닌 대로 듣기 좋은 화제가 아니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법정에선 그 두 건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재수사가 진행되었으나 남아 있는 증거가 워낙 적고 설득력이 부족하여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주원은 이동식이, 자신이 그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침묵을 길게 끌었음을 적잖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아차렸다. 다시 한번 눈꼬리가, 이번에는 불쾌함으로 떨린 것은 한주원이 그 사실을 눈치챘음을 알려 이동식은 피식 웃었다. 한주원은 기분이 나빠졌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나 그는 굉장히 감정적이었다.


“청장님이야 만난 적 있지. 몇 번.”

“20년 전에 문주서 서장으로 근무하셨으니 아마,”

“일방적인 만남이었지요. 진술 녹화실 밖에 서 계셨을 테니까.”


그랬을 것이다. 거울 너머 벽을 투시하는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이상 이동식은 자신을 노려보는 십여 개의 형형한 심지를 보지 않을 수 있었으나, 자신을 휘감은 거대한 기류의 압박에서까지 벗어나진 못했다. 그때 터진 입술은 아문 지 오랜 지금에 와선 전혀 아리지 않았다. 그때는 제 손에 기타 피크가 들려 있지 않다는 이유로 얻어터졌는데. 이제는 내 손에 피 묻은 오함마가 들려 있어도 한 대 때리는 사람이 없네. 자조적인 중얼거림에 누가 끝내 손을 올렸는지, 그러나 제지당하고 말았는지. 그때 이동식은 이제 아무 상관 없다는 생각에 내리깔았던 눈을 끝내 감았던 것 같다. 눈꺼풀 안쪽에 어른거리는 열 손가락의 핏자국이 21년 동안 그의 뇌를 주무르다 끝내 으깬 탓 같기도 하였다.


“방주선. 이유연. 그들도 당신이 죽인 겁니까? 강민정까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누가 죽였는지가.”

“그게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 아닙니까. 강민정, 강진묵 두 사람을 죽인 사람이 당신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찰나에 이동식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방주선, 이유연도 내가 죽였다.”

“지금 뭐라고…….”

“그런데, 아직 실종 상태 아닌가? 누가 들으면 시체라도 발견된 줄 알겠네, 우리 유연이.”

“이동식 씨.”


쩝 소리를 낸 그는 한주원에게서 시선을 내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의자 앞다리를 바닥에서 떨어뜨린 그는 자신에게 가까운 쪽이 아닌 유리창 너머 한주원 쪽 테이블을 주시했고, 한주원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려는 순간 빙글 돌린 눈은 한주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애초에 외사과가 왜. 왜 이 사건에 개입하지? 이제 와서, 이미 재판도 판결도 다 끝나 집행만 이뤄지면 끝나는 사건에 왜?”

“질문은 내가 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주원은 경찰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영국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도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여 두각을 드러낸 인재였다. 그러나 그런 그라고 해도 이동식이 한때 광역수사대에 속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유능한 형사였으며 ‘또라이’라고 불렸다는 사실 정보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식의 반응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웠고, 곤란하기 짝이 없는 기대이기도 했다. 그는 아직 젊고 경험이 적었다. 이동식은 한주원의 입을 쏘아붙여 막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섰고, 그에 맞춰 한주원의 목소리도 따라 커졌으나 무형의 소리는 그의 발을 걸어 멈추지 못했다.


“이동식 씨!”


이동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미 재판도 판결도 다 끝나 집행만 이뤄지면 끝나는 사건에서 이동식이 기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뤄질 수 없기에 포기하였든, 종결되었기에 더는 생각하는 것이 없든 간에. 그런데 한주원과의 면회는 그에게 퍽 불쾌한 감각을 선사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타르같이 시커멓고 끈적한 불길함에 그는 몸서리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기형의 집행은 언제 이뤄지는가? 형기가 정해진 다른 형벌과 다르게 무기형은 수인이 사망해야만 집행이 완료된다. 중간에 가석방될 수도 있지만 최소 10년은 지나야 할 사안에 이동식은 깊이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제 손으로 얼기설기 꿰맨 실밥이 기어코 터질 모양이었다.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하면.


“다시 올 겁니다.”


한주원은 감당할 깜냥이 되는가 하면.




3.



강민정은 이동식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되었다. 손가락은 한 마디만큼 잘려져 있었고, 잘린 끝은 처음 그의 실종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에 적을 두고 있었다. 어딜 갔나 했더니,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거였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헛소문 중 진실은 어느 것 하나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곳에 있었다. 누군가 돌아오길, 찾아오길, 꺼내길 바라며 그곳에 있었으니, 만양에 다시 내려온 후 잠을 잘 때를 빼곤 지하실에 머물렀다는 이동식이, 그를 그곳에 가둔 사람이자 죽인 사람만이 그에게 돌아오고 찾아오다 마침내 제 아비의 손에 꺼내어져 장사 되었다. 속죄처럼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찬 지하실을 고집하던 남자가 실은 제가 죽인 사람을 감상하기 위해 그리하였던 거라니. 대경실색하여 쓰러지고도 남을 진실에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입방아 찧을 겨를도 기력도 모두 잃었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범위를 넘어섰다면 금기의 주제로 격상되는 법이다. 만양에서는 이제 아무도 이동식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강진묵은 목격자였다.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이기도 했다. 그는 지하실에서 제 딸의 시체를 발견했고, 발견 즉시 현장에서 112를 눌러 경찰에 신고했다. 사모님 귤 좋아하시잖아. 동식이네 집 가, 갔다가, 문이 잠겨 있길래 평소처럼 지하실에 있나 해서 들어갔는데, 우, 우리 민정이, 민정이가……. 전화를 건네받은 오지화는 강진묵에게 아직 그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당장 거기서 나와요, 진묵이 형. 형 집에 가서 문 잠그고 있어. 내가 지금 갈게. 갈대밭을 수색 중이던 경찰이 한 팀은 신고 현장으로, 한 팀은 만양슈퍼로 나뉘어 움직였다. 오지화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을 후회한다.


한주원이 문주경찰서 오지화 경위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이동식은 처음으로 아는 사람의 면회를 허락했다. 이동식은 스무여 해 전부터 시작한 모든 일을 겪은 후로 자신에게 남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 도가 트였다. 이 사람은 남았다. 저 사람은 남지 않았다. 붙잡진 않는다. 이동식은 이미 떠난 사람은 붙잡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남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은 남을 것이다. 그런 예상도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예측이기 때문이다.


이동식은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그러면 그가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울청 외사과 한주원 경위시라고.”

“예. 문주서 강력 1팀 오지화 경위님.”


오지화는 짧은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참이다. 서로를 대신 소개하는 것으로 번거롭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를 덜어낸 두 사람은 부러 상대를 위해 날을 갈지 않아도 칼끝이 뭉툭할 틈이 없는 현역들이다. 관할도 아닌 곳에 와서 대뜸 날 만나자고 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오지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외사과에서 유명한 젊은 엘리트가 자기 관할도 아닌 곳으로 내려와 놓고선 공조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이쪽을 조사하여 정보를 물어가려고 하는데 짐작 가는 사건이 없었다. 그러니 상대가 먼저 날을 드러내고 부딪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행동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 이 직업 생태에서 의외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다림이었다.


“만양 일가족 살인사건. 오 경위님이 범인을 직접 체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기다린 끝에 얻은 정보가 오지화의 심기를 건드린다.


“그건 왜?”

“화내실 줄 알았어요.”


이동식은 맞은편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며 빙글 웃는다. 이곳에서 이동식은 웃음이 줄었다. 그는 일찍이 어딘가 조금 고장 나서 화를 내야 할 상황에도 웃거나 울어야 할 상황에도 웃으며 또라이라는 별명을 얻어왔다. 동네 화투판을 엎고 도박죄로 주민들을 줄줄이 체포하며 악명을 더한 이름은 그 이름이 지나치게 가까웠던 만양에선 더는 불리지 않겠지만 그와 가까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그렇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동식은 그렇게 주소지가 바뀐 이유를 막연히 짐작한다.


“내가 너에게 화를 내서 뭣 허냐.”

“이렇게 안 만들려고 20년 동안 애쓰셨잖아요. 그런데 내가 정년 1년을 앞두고 그 노력 홀랑 말아 잡수고 말았네. 미안해서 그러죠.”

“네 정년이냐? 내 정년이지. 왜 불렀냐. 빨리 말혀. 나 바빠.”


선고 이후 이동식이 수감된 후로 남상배는 단 한 번도 그를 면회 온 적이 없다.


“바쁘실 일 뭐 있다고. 항소 포기하자마자 경찰직 때려치우신 분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진짜……. 아, 얼른 말하지 못혀!”


그러나 이동식은 그가 올 것을 알았다. 검열될 편지에는 길게 적지 않았다. 만나고 싶다. 그 말 한마디면 저를 만나러 올 것을 알았다. 20년 전 제가 잡은 용의자였던 아를 데려다가 20년 동안 먹이고 가르쳐 이토록 훌륭한 살인자가 되고 말았어도. 아니, 이미 살인자였던가. 방주선, 이유연. 그 두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제 칼춤에 모가지 날아간 아이인 줄 알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똥 다 닦아주는 개고생을 했던가. 아니면 여전히 믿는가.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그가 일부 결백하다고 믿는다. 그들을 다 죽이진 않았을 거라고. 그들을 다 죽였을 리는 없다고. 방주선을, 이유연을, 강민정을 다.


“갈대밭에서 발견된 시신 있잖아요.”

“21년 전 발견된 피해자 방주선과 같은 방식이었죠. 외부에 공표되지 않은 방식까지 모조리 같았다고.”


오지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주선 살해에 관한 건은 이동식의 범행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유가족이 항의 서한을 수 통 보내기도 했으나 무기형을 선고받은 이동식이 항소를 포기하고 사건이 종료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방주선과 강민정이 발견된 모습이, 그리고 어쩌면 이유연까지도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과거 인정했던 방주선 사건의 알리바이를 이번에도 부정하지 않았다. 판결은 확정되었다.


갈대밭에서 발견된 시신의 경우 손가락이 잘린 백골에선 지문을 뜰 수 없어 신원 확인이 늦어지고 있었다. 오지화는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에겐 12년 동안 강력계 형사로 일하면서 얻은 촉이 있었다. 한주원은 갈대밭에서 발견된 그가 누구인지 안다. 이 사건을 이동식 사건과 결부하려는 이유가 있다. 방주선과 신원 미상의 시체, 이 둘 또한 이동식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이 둘을 포함해서, 뭔가가 더 있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알고 싶습니다. 어디까지가.”


이동식이 저지른 살인인지.


한주원이 돌아간 후 오지화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내가 죽였어. 피 흘리는 강진묵을 앞에 두고 오지화에게 그리 말하던 이동식이 어른거렸다. 네가 민정이도, 갈대밭에서 발견된 사람도 죽인 거야? 상상 속에서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연이도, 주선 언니도? 그는 다만 침묵하다 눈을 감았다. 그는 오로지 침묵하다 오지화가 수갑을 채우는 순간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지화가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만큼 바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화야. 이제 쉬고 싶다. 쉴 수 있을 리 없잖아. 사람 죽인 놈이 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오지화는 손을 들어 이동식의 뺨을 내리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으나 끝내 그러지 않았다. 수갑을 채우고 끌어내 차 뒷좌석에 던지듯 처넣은 후 강도수에게 말했다. 저 새끼 잘 감시해. 터질 것처럼 뜨거운 머리와 눈이 왜 진작 터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던 밤. 지금 오지화는 그 밤 건너편에 서 있다.


“이동식 씨.”

“진짜 또 왔네. 빈말인 줄 알았는데.”


빈말하는 거 싫어합니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이동식이 장난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시늉하면 한주원은 필요 이상의 말까지 짜증스레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에 벌써 사람을 갖고 놀려고 드니 가능한 한 세 번째 만남은 없었으면 싶지만 한주원의 의지대로 결정될 일은 아니었다. 자기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흐름에 휩쓸리는 것이 한주원은 퍽 불쾌하다. 당연하게도 한주원만 불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남상배 전 만양파출소 소장은 왜 만난 겁니까? 좌천되었다고 해도 아직 광수대에 줄이 많으시더군요.”

“지화는, 저에 관해 재미난 얘기라도 좀 해주던가요? 걔가 그럴 애는 아니지만.”


엎치락뒤치락하며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청년과 장년이 양쪽의 의지 없이는 어려운 오늘의 면회를 성사시킨 것엔 단순히 상대를 엿 먹이기 위한 것보다 중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첫수를 던진 건 한주원이었다.


“나는 당신을 연쇄 살인의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가 던진 돌을 잡아 판에 올려놓는 이동식이다.




4.



만양정육점 사장 유재이는 1년 전 강렬한 살의를 품고 사람을 죽이려 한 적 있다. 그러나 살인에 실패한 그는 오늘도 그의 어머니가 말없이 떠난 가게 문을 열고 큼지막한 우도를 들어 고기를 써느라 분주하다. 돼지와 소의 뼈를 바르고 근육을 가르고 살을 째는 손은 능숙하고 정확하다. 이 같은 솜씨로 작정하고 사람을 찌르면 필시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거나 그만한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유재이는 1년 전 이동식을 죽이려고 했다. 그를 죽이지 못한 지금 유재이 안엔 평생 정착하지 못할 미움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오늘 마지막 손님은 만양파출소 순경 오지훈이다. 저녁쯤부터 손님이 끊겨 일찍 셔터를 내릴까 했더니 길 끝에서 걸어오는 청년이 보였다. 이동식과 파트너였던 오지훈은 그의 범행에 큰 충격을 받은 가까운 사람 중 하나였다. 이동식은 오지훈을 참으로 아꼈다. 누나인 오지화가 제 딴엔 귀여워해 주는 거라고 오지훈에게 기술을 걸며 장난칠 때도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리기 일쑤였다. 오죽 그를 아꼈으면, 오죽 그를 따랐으면 그 오지훈이 그 오지화에게 대들기까지 하며 이동식을 변호했을까. 결국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를 일으킨 건 보다 못한 오지화의 파트너 강도수였으며 아직도 남매 사이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동식이 형이 그랬을 리가 없어. 분명 누명을 쓴 거야.


이 어린 순경은 재판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선 할 말 못 할 말 가릴 겨를이 생겼으나 유재이 앞에서는 아니었다. 물 대신 들이켠 술은 물처럼 스며들어 그를 흠뻑 취하게 하고, 유재이는 가만히 그의 주정을 들으며 언제쯤 오지화에게 전화를 걸면 좋을지 고민했다. 오지훈이 무엇을 주장하든 이동식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민정이를, 어떻게 동식이 형이 민정이를 죽이냐고. 그게 말이 돼?

그럼 진묵이 아저씨는.


오지훈을 미치게 만드는 지점은 언제나 동일했다.


강민정을 죽이는 건 말이 안 되고, 강진묵을 죽이는 건 말이 돼?


유재이의 지적에 오지훈은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건. 작작 마시고 들어가. 지화 언니 부르기 전에. 유재이는, 서로뿐인 남매가 언제까지 불편한 감정으로 상대를 대할지 자신이 대신 걱정하는 것이 배 아픈 고민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떨치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며 체념한다.


미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고,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고, 용서하고 싶은 것도, 그를 믿고 싶은 것도, 그를 믿어도 그가 미운 것도 그와 유재이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동식이 체포되고 문주서 유치장에 아직 머무르고 있을 때, 유재이는 식칼을 신문지로 잘 싸맨 뒤 품에 넣고 길을 나섰다. 민정이를 죽인 사람. 진묵이 아저씨를 죽인 사람. 아저씨 동생을 죽인, 아저씨. 사실 그건 중요치 않았다. 슬프게도, 유재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그가 엄마를 죽였냐는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 유재이는 그런 자신이 괴물 같다고 생각하고 만다.


미안하다. 재이야.


유재이는 그 말에 담긴 진심을 알고 칼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내려가지 않았다. 철창을 잡은 그는 그만큼 가까이 있었기에 유재이가 창살 사이로 칼을 내리찍는다면 능히 죽을 수 있었다. 빈말과 진심을 구분할 줄 아는 유재이는 때로는 진심으로 하는 빈말조차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빈말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이동식은 빈말을 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유재이는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그를 죽이기 전에.


아저씨. 사실만 말해 줘. 내가 후회하길 바라지 않잖아. 지금도.

재이야.

아저씨가 우리 엄마도 죽였어?


그토록 많은 거짓말을 늘어뜨렸으니 이제 진실을 말할 때도 되었다. 이동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동식이 강진묵이 아닌 다른 자의 살인에 관해 말한 건 유재이 앞이 유일했다. 유재이는 이동식이 진실을 털어놓은 유일한 사람이고,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저씨 동생도, 아저씨가 죽인 거 아니지.

아니야.

민정이는, 민정이는 아저씨가 죽인 거야?

아니. 내가 죽이지 않았어.

진묵이 아저씨는 왜 죽인 거야?


그토록 많은 거짓말을 덜어내었으니 이제 침묵할 때도 되었다. 이동식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유재이는 이미 충분한 진실을 얻어냈고, 추론할 수 있는 진실은, 잔인했다. 설마. 그토록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게 한 진실이 이토록 잔인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토록 끔찍할 줄, 누가, 유재이는 헛구역질을 했다. 미리 속을 게워 두었기에 넘어오는 건 목 끝이 타는 신맛뿐이었다. 유재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손바닥엔 땀이 찼다. 그러나 목장갑을 낀 손으로 부여잡은 칼이 미끄러져 내릴 일은 없다. 동시에 그의 진심을 알아버린 유재이가 칼을 놓칠 일도 없다. 왜냐면, 그러면 아저씨. 나는 이제.


나는 이제 엄마를 어디서 찾아……?

미안하다. 재이야.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 재이야. 미안해.

나는 이제 어디서 엄마를 찾고, 어떻게 엄마를 찾아서, 누구에게서 엄마를 돌려받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아직 못 찾았단 말야. 나는 아직 못 돌려받았잖아.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멋대로 아저씨가 죽여버려. 나는 죽여버리지도 못하게, 나는 찾지도 못하게, 어떻게 아저씨가 멋대로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재이야. 지훈이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

아저씨가 뭘 미안해요. 언니에게 안 걸리게 잘 데리고 가줘요. 부탁해요.


결국 유재이는 오지화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박정제가 오지훈을 부축하여 데리고 나가는 걸 길 앞까지 나서서 배웅하니, 깜깜하니 더 나오지 말고 들어가라고 손사래 치는 박정제였다. 유재이는 가게로 돌아와 그리 어질러지지 않은 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에 진이 빠진 그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내일 치울까, 그런 생각을 막연히 갖는다. 내일은 가게 문도 열지 말고 종일 집에 콕 틀어박혀서, 이불에 돌돌 말려 굼벵이처럼 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고 깨어나지 않고 언제나 상상으로 끝나는 상상을 하며 행주로 상을 훔친다.


아닐 수도 있잖아.


중얼거린 말엔 확신이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진실을 붙잡고 사는 데 얼만큼의 미련이 남았는가 하면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요, 피곤하기 그지없는 생이 연속된다. 그러나 바닥을 박박 긁어내면 앞으로 몇 년은 더 버틸 미련 때문에 유재이는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붙들린 채 동여맨 채 남아 있다. 이동식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이동식 역시 각오했다. 이유연을 영영 찾지 못할 것을 각오했으나, 알죠. 아저씨. 아저씨의 각오가 나와는 상관없다는 거. 고개를 푹 숙이는 이동식이 유재이는 미웠다. 밉고 또 미워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믿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유재이 혼자 들은 말은 증언이 되지 못한다더라. 증거도 되지 못한다더라. 이동식이,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어? 그건, 아니지만. 재이야……. 유재이는 끝까지 저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하길 거부하는 이동식에게 정말 정말 화가 났기에 그를 다시 보지 않기로 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이감되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친 게 마지막 기억이다. 동시에 꿈의 첫 기억이 되고 마는 유재이의 기억. 꿈. 깊게 이루지 못한 잠의 증거.


이튿날 셔터를 올리는데 이른 아침부터 누가 기다렸다는 듯이 곁에 와서 유재이가 자물쇠를 풀길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 사러 오셨어요? 유재이는 자신에게서 고기를 사 가는 만양 주민의 얼굴을 모두 외우고 있지만 최근 재개발 건으로 인해 오가는 외지인이 늘어난 만양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정육점을 찾는 외지인은 처음인데, 이 경우 목적은 고기가 아니라 고기를 파는 사람에게 있다고 보는 게 옳았고 유재이는 열쇠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상대방을 응시했다. 재미난 건, 유재이만큼이나 상대도 유재이를 상대로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당신은 또 뭐라고.


유재이 씨 되시죠. 만양정육점 사장이신.

그런데요.

잠시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어 올린 신분증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경찰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만양정육점 유재이에겐 더없이 익숙하여 진위를 숨기기 어려운 공무원증이다. 가장 밑에 적힌 소속은 경찰청, 그보다 윗줄에 적힌 이름은,


한주원…… 뭐라고 부를까요. 한주원 씨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면 그렇게 부르고.

경위입니다.

알겠어요. 한주원 경위님. 내가 뭘 협조하면 되죠?


유재이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5.



유재이가 유치장에 접근한 시간대를 포함하여 약 8시간의 폐쇄 회로 텔레비전의 기록이 삭제되었다. 이에 관하여 유재이는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 들키든 말든 상관없었으니까. 내가 신경이라도 썼을 것 같아요? 들통날 게 뻔한데. 말 그대로였다. 후문에 주차된 차의 블랙박스가 품에 칼을 숨긴 유재이를 촬영하고 있었고, 자신을 감추려 하지 않은 유재이의 행동은 치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유재이가 잡힌 것은 아니었다. 명명백백하게 자신의 행적을 드러낸 그는 스스로 진술을 하기 위해 경찰서에 출두하며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서에 몰래 침입한 동기 역시 숨기지 않앗다. 이동식. 살해하려구요. 그날 유재이의 진술이 녹화된 영상 파일엔 담당 형사 오지화, 강도수의 음성도 함께 기록되었다. 파일은 지금도 문주경찰서 기록보관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증거물로 제출되어 사용된 적은 없다.


한주원은 물었다. 오지화에 관해서.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강진묵은 오지화가 지시한 장소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의도라는 단어가 껄끄럽게 밟히는 미묘한 문장은 오지화와 이동식의 오랜 친분을 의식한 결과다. 당시 오지화는 앞서 해결한 사건의 공로를 인정 받아 승진과 서울청으로의 발령이 내정된 상태였다. 눈앞에서 희생자를 내었다는 불명예를 안은 지금은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다 못해 없느니만 못해졌지만 오랜 기간 일선에서 활약한 그가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었을까? 참으로 물기 좋게 놓인 미끼라고 할 수 있겠으니, 찌를 흔든 사람이 한주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사에도 참여한 현직 경찰이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졌으니 당연하게도 문주서와 만양파출소 모두 파란을 피할 수 없었다. 한주원이 오지화를 찾아갔을 땐 내부 감찰이 소득 없이 종료된 이후였다. 쉴 틈 없이 들들 볶인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외사과에서 웬 애송이가 찾아 오데. 그러니 방어적으로 굴어도, 이해할 수 있나? 감안할 수 있나? 한주원이 누구에게 물었냐면, 이동식에게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화가…… 강진묵을 내가 있는 곳으로 보내어, 내가 그를 살해하게 한 후, 나를 체포했다.”


이동식은 강진묵의 집에 먼저 와 있었다. 그를 살해할 준비를 마친 후였다.


“지화와 내가…… 공범이다.”


이동식은 오른팔 팔꿈치를 책상에 붙이고 앉아 있었다. 머리를 괴었던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주원은 고개 한 번 까딱이지 않고 마른세수를 하는 이동식을 응시했다. 손가락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진심이야? 그럴 리가 없지. 뒤에 붙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다만 이동식은 그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했다. 오지화. 박정제. 남상배. 유재이. 조길구. 황광영. 오지훈. 강도수. 임선녀. 정철문. 곽오섭. 그리고 광역수사대. 여청과 광수대, 외사과가 얽힌 사건이 있다. 불법체류자 여성만을 노린 연쇄 살인. 그걸 여기에 와서 묻는다고. 갈대밭 휘날리면 구덩이에 외친 모든 이야기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 나가 비밀이 없는 해 질 녘의 땅. 진실이 묻히는 땅에 와서 진실을 묻는다고. 이동식은 새삼 지금 자신이 만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만 자신을 깨닫는다. 여기는 만양에서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교도소였다. 그럼에도 눈앞의 남자는 저를 벗어날 수 없는 그 땅으로 끌고 가 기어코 고개를 처박길 원하는 모양이다. 진흙으로 세례받은 머리를 무겁게 들어 올리면 감당하기 버거운 진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일찍이 유재이가 겪어야 했던 절망과 같은 닮은 것이 그날 이동식의 손에서 떨어진 열쇠보다도 더 싸늘한 쇠꼬챙이가 되어 그의 내장을 후벼 판다. 쇠를 쥔 손의 뼈 마디마디가 시리지만 놓을 수 없다. 왜냐면, 아, 자신은 백 번 사죄해야 마땅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재이에게. 다른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묻어버린 그들에게.


“알고 싶은 게 뭡니까. 내 입으로 듣고 싶은 게 뭐냐고. 말 같지 않은 소릴 지껄이며 헛수작 부리는데, 상응하는 그 이유 좀 들어봅시다.”


아니지. 아니야.


한주원은 듣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이 못 되었다. 이동식이 파악한 한주원은 그것이 유일한 증거일지라도 만족하며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듣고 싶은 대답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끌어내는 건 자신이어야 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