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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선의 끝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WT>

IF 아즈마 부대가 원정에 간 이후

폭력성, 잔인함, 사망 소재 주의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그가 익히 잘 아는 자의 팔이었다. 그것은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고개를 높이 젖히지 않아도 되는 위치, 즉 땅 위에 놓여 있었는데, 오쿠데라 츠네유키의 시야에서 보이는 것은 팔뿐이었다. 그래선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것은 팔꿈치쯤에서 잘린 팔뿐. 오로지 그뿐. 그러나 거기까지라면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팔에서 떨어지는, 그래서 팔이 놓인 바닥에 고이는 것이 검은 트리온 연기가 아니란 걸 보았을 때도 그에게서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는 것에 가깝다. 지를 새도 갖지 못했다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어디서도 팔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몸을 일으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것을 안고 걸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잘린 팔을 품에 안고서.


걸어온 길 끝엔 무엇이 있었나?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무엇을 바랐나?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바란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팔이 없는 당신. 그래서 저의 품에 안긴 팔을 돌려드릴 수 있는 당신. 보더의 기술이라면 팔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보더의 기술이라면 어지간한 중상자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보더로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어떻게? 그건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사실, 그래서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그를 발견하는 일이 없길 바랐다. 이미 보더로 돌아갔기를, 누군가 그를 발견했기를, 부축했기를, 치료했기를. 그러나 현실은 바람 같지 않고.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자를 흐린 눈으로 바라본다. 이곳은 처음 그가 팔을 발견한 곳을 기준으로 삼아 원정선이 놓인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야 했다. 왜 그는 이곳까지 걸어갔을까. 방향을 몰라서? 잘못 들어서? 그렇기엔 정확하게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오지 않았나. 최대한 먼 곳으로 몸을 돌려서. 아마도, 유인하면서.


그가 그 자신에게 베푼 마지막 관용인지 아니면 이 자리에 이르러서까지 적을 노렸던 것이었는지 그의 몸은 나무에 기대어 가려져 있었다. 팔은 없었다. 오쿠데라 츠네유키가 바랐던 대로. 그건 그의 손에 들려 있으니까.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선택해야 했다. 이제, 지금까지 들고 온 팔을 여기 두고 갈지. 그를 두고 갈지. 선택하고 할 것도 없었다. 우선순위는 확실했다.


다만 그의 왼손에서 총을 빼앗아 놓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트리거는 아니었다. 트리거가 아닌 총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일반 무기론 트리온 전투체를 부술 수 없으니, 트리온 전투체가 아닌 이들, 이에서 벗어난 이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 살상을 위한 무기. 왜 그가 그걸 들고 있을까? 물으면 조금 이기적이지. 적들은 다 들고 있었잖아? 우리만 본체를 비무장으로 두었잖아? 하지만 그뿐이 아니지. 그뿐만이 아니라.


코아라이 노보루의 관자놀이를 꿰뚫어 베일 아웃 시킨 자는 그들의 대장이었다.


‘아즈마 씨!’


트리거를 강탈당하기 직전이었다. 원정선의 베일 아웃 범위를 간신히 충족한 거리였고, 뒤이어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흔드는, 꿰뚫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 직후 느껴야 했을, 빛줄기의 경로를 따라 전송되는 감각은 없었다. 한 발짝 차이로 베일 아웃 범위에서 벗어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대장에게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 베일 아웃이 동작하지 않아도 트리온 전투체가 파손될 시 트리거는 해당 위치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위치에 본체를 사출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연기에서 눈을 떴다. 동시에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탕, 탕! 연달아 울리는 총소리는 자신을 엄호하기 위해 아즈마 하루아키가 당긴 방아쇠에서 비롯된 소리라고 생각했고, 그의 대장을 신뢰하는 그는 방향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달리면서도 아즈마 하루아키에게 ‘당신의 탓이 아니다’라고 말할 생각을 했다. 한 발짝 발을 잘못 디딘 건 자신이 아닌가. 그렇게 경계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면 시도하지 않는 게 나았으리란 말도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어야 할 수 있으리다. 그런 생각에 잠긴 탓에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아즈마 하루아키가 당겼을 두 번째 총성이 첫 번째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부에서 그에게 허락한, 또는 명령한, 또는 그의 판단에 맡긴 선택권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 역시 무사히 자리를 이동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저격수는 한 번 저격을 마치면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 그런데 그는 저희를 구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렀다.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저를 추격해 오지 않는 적을 의심하지 않은 채로 그저 그의 대장을 걱정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기에 다른 생각은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오쿠데라 츠네유키는 그저.


모두가 살기를. 바랐는데. 빛이 죽은 눈으로 그는 자신이 마지막까지 적에게 잡히지 않은 채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한다. 그를 이곳으로 유인한 붉은 선의 끝이었다, 이곳이. 선(善)의 끝. 이것이. 퇴로를 위해서 트리온 전투체를 잃은 적마저 확인 사살한.


최선의 마지막. 총은 들고 갈 수 없었다. 트리온 전투체가 아닌 그에게 저격소총은 상당히 무거웠고, 그는 자신이 그것을 짊어질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적확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버지의 손에서 총을 빼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그 옆에 그의 팔도 내려놓았다. 분명, 이때는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가장 탄속이 빠른 라이트닝으로 트리온 전투체의 머리를 저격한 후, 즉시 트리온 전투체를 해제하여 ‘진짜’ 총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그런 짓을 저지른 저격수를 적이 가만두지 않을 걸 알면서도. 용서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살인이 다 그렇지만서도.


긍정할 수 없는 선택을 통해 제가 살아남았음을 아는 아들은 사뭇 우울하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당신의 아들일 거외다. 당신을 등에 업고 돌아가는 이는 소년보다 청년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러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원정행이기도 한지라.


그러나 이런 생떼를 부릴 수는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런 변명은 꺼낼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우리가 이런 우리가 될 줄 몰랐다. 우리는 모두가. 나는. 모두가. 당연한 소리로 살길 바랐다. 죽을 줄 알지 못했다. 왜. 어째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눈발이, 그친 줄 알았던 눈발이 날아와 얼굴에 달라붙는다. 얼굴 위로 두 줄기 선이 얼어붙는다. 정말로? 아니. 실은 몇 줄기인지도 모르겠다. 몇 걸음이나 뗄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원정선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즈마 씨.”


그러나 당신은 대답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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