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미즈이코
“이코 씨 결혼식에 가는 꿈을 꿨어요.”
아침 인사론 썩 적절하지 않은 인사다. 그러나 퉁퉁 부은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소파까지 비척비척 걸어간 뒤,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던 이코마의 허리를 잡고 내리 끄는 미즈카미에게 이를 책잡을 사람은 적어도 여긴 없다. 만류하는 사람만 있을 뿐. 땀 냄새 나. 상관없어요. 안 난다고는 안 하는구나. 괜찮아요, 정말로. 냄새나도. 소파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아침 뉴스를 보고 있던 이유에도 그대로 그를 소파에 주저앉힌 미즈카미에겐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냄새나 낙엽, 먼지 따위 하등 상관없었다. 무슨 일 있어? 잠을 설쳤어요. 꿈이라도 꿨어? 네. 그리곤 하는 소리가 저 소리. 결혼식에 가는 꿈을 꾸었다는데 눈은 퉁퉁 부어 있고 분위기도 침울하기 그지없다.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여는 이코마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지만, 양팔로 이코마의 허리를 끌어안고 불편한 자세로 앉은 미즈카미의 어깨를 느리지만 확실한 힘으로 내리누르는 것은 여느 때의 아침과 조금 다르리라. 순순히 눌린 미즈카미의 머리가 이코마의 무릎에 닿는다. 더 자고 싶겠지. 더 자. 그러나 이번엔 반항하며 고개를 젓는다. 자고 싶지 않아요. 꿈을 이어 꾸는 것이 못내 싫은 모양이다.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아. 결혼식.
이코 씨. 좋아해요. 용기 내서 말했던 날이 6개월 전이었던가. 동거를 시작한 건 1년 전이었으니 그보다 반년은 더 일렀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새 자취방을 물색하던 이코마에게 무리 없이 대학에 합격한 미즈카미가 투룸은 어떻겠냐며 먼저 제안해 왔다. 월세도 반반씩 부담하면 이만하니 괜찮지 않냐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전부터 이코마를 좋아하고 있었던 미즈카미에게는 자신의 ‘수작질’이 상당히 불경하게 다가왔던 듯하다. 혼자 있을 때면 함께 있을 때는 드러내지 않는 불안을 드러냈고, 이를 목격하고 말을 걸어오는 이코마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또는 과제 때문이라고 발뺌하며 무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이면 제법 오래 버텼다. 바란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짐 싸 들고 나가겠다고. 자신을 역겹게 여긴대도 이해한다고 말하던 미즈카미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발코니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더랬다. 그리고 이코마는 그런 미즈카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팔을 벌렸다. 미즈카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보지 못했겠지만. 미즈카미. 네. 대답은 참 잘했다. 이리 와. 그 말에야 고개를 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코마를 바라보았고, 거짓말쟁이는 나 혼자로 족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코 씨 여자애 좋아하잖아요. 너도 좋아해. 그 말에는 정말 구겨진 종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 ‘좋아해’는 이코 씨와 입 맞추고 싶은 ‘좋아해’에요. 이코 씨와, 그, 이상도 하고 싶은 ‘좋아해’라고요. 절박하게 터져 나오는 외침은 노성에 가까웠다. 이코 씨래도 화낼 거예요. 그러나 그에 버릇없다 책잡지 않는 그는 팔 또한 내리지 않았다. 미즈카미.
왜 난 아니라고 생각하지?
“멋지게 차려입었어, 나?”
“회상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맞아요. 멋있었어요. 그래서 더 짜증 났어요.”
“짜증이라니.”
“짜증 나요.”
안 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한 거예요. 6개월 사이에 늘어난 투정이지만 뻔뻔하게 내뱉으면 좋을 말엔 힘이 없었다. 무릎베개를 베고 있다곤 해도 여전히 편하지 않을 자세일 듯하여 어깨를 붙잡고 일으켰다. 미즈카미. 일어나라. 조금 엄하게 들렸을지 지체 없이 몸을 일으키는 미즈카미가 퉁퉁 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이코마와 눈을 맞췄다. 음,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는 건 그래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나아진 발전이었다. 그대로 잡아당겨 미즈카미가 이번엔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한 뒤 등을 툭툭 두들겼다. 그러지 마요. 아팠을 리는 없는데 단번에 돌아온 거절에 잠깐 의아해하다가, 꿈에서도 그랬단 말이에요. 이코 씨. 그 말에 마저 투정을 받아주기로 했다. 대신 천천히 쓸어내리는 것으로. 이코 씨. 한 열 번은 쓸어내렸을 때였다. 왜, 미즈카미. 묻지만 이럴 때 미즈카미가 내뱉는 말은 제법 빤했다. 이코 씨의 ‘좋아해’는 정말. 나랑 같은 ‘좋아해’에요? 거짓말쟁이란 보통 자신이 참말을 말할 때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때를 걱정해야 하건만, 이 거짓말쟁이는 자신 외 다른 사람이 제게 참말을 한다는 것을 믿으려 들지 않으니 업보라면 업보를 치르고 있을 것일 테고 여전하다면 또한 여전한 것일 테다. 미즈카미의 ‘좋아해’가 무엇인지, 그날도 지금처럼 미즈카미를 토닥였던 이코마는 기억하고 있다. 입 맞추고 싶은 ‘좋아해’.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좋아해’. 그리고.
“그 이상도 하고 싶은 ‘좋아해’랬지. 미즈카미.”
“갑자기 뭔데요. 잠깐, 이코 씨. 잠깐만요.”
그리고 미즈카미의 사고가 따라잡을 수 없는 흐름으로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 미즈카미가 바란 것은 한껏 이코마에게 어리광을 부린 후, 아침을 먹고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었겠지만 이 사람, 지금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찾아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즈카미의 어깨가 돌연 붙잡힌다.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만큼 떨어뜨려진다. 이 상황을 타개할 확실한 해결 방법을 알게 됐다고 믿는 사람의 얼굴에 확신이 서린다. 아니, 좀!
“하자. 미즈카미.”
“뭔 줄 알고요!”
상황이 변하였다고 눈의 부기가 기적적으로 내려가지는 않기에 여전히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미즈카미는 이코마를 보았다. 이젠 열까지 오른 얼굴로 그를 마주하면. 아.
당신이 모를 리가.
허겁지겁 입을 맞추고, 손을 붙잡고, 내리누르고, 누워 있는 상대 위로 길게 이어지는 숨 끝과 함께 그를 내려다보며 이제 와 부끄러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속삭인다.
“좋아해요. 이코 씨.”
그에 성급하다 책잡지 않는 그도 따라 팔을 올린다. 양팔로 미즈카미의 목을 끌어안고, 느리지만 확실한 힘으로 잡아당긴다.
여느 때의 아침과 조금 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