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블럼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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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스트
에우리디케가 뱀에게 물려 하데스의 집으로 가게 되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했던가? 그는 머리 위로 돌을 들어 올린 뒤 그대로 뱀의 머리를 내리쳐 다시는 그것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벌을 주어야 했다. 리라를 잡을 때가 아니었다. 비록 그는 리라 하나만을 들고 하데스의 집으로 직접 내려가 문을 두드리는 선택을 했지만, 그래서 그 선택 끝에서 그는 에우리디케를 돌려받았는가? 아니지. 신화에서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때는 그자가 신에 준하는 격을 가지고 있거나, 신들이 보기에도 가여울 정도로 딱한 사정을 가져 그들이 몸소 자비를 베풀 때밖에 없다. 아비의 손에 죽임당하고 요리 당해 만찬으로 대접 당하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하데스의 집으로 끌려들어 가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니, 그렇게 보자면 그들이 볼 적에 소년의 사정은 그리 딱하지 않을 것이다. 너만 그래? 다들 그래. 그러니 그의 누이는 되살아나지도, 그 곁으로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다. 다들 그래. 다들 그러니까…….
머리 위로 돌을 들어 올려라. 그대로 내리쳐라. 눈에 띄는 뱀이란 뱀의 머리는 모두 깨 버려라. 뱀 잡는 사냥꾼이 여기 있으니 뱀의 씨란 씨는 모조리 말려버리리라.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누이. 살아나지 않을 누나. 그럼 결국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아니, 남아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래, 그에게 남은 일이란 그런 게 아닌가. 다시는 그것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하도록 벌을 주는 일. 벌을.
주어야 하는데. ‘슈지, 웃고 있구나.’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웃어도 괜찮다.’ 그렇지만 그 말에 제 손을 내려다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손?
손…….
뱀 사냥꾼이 된 오르페우스 같은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뱀 사냥꾼이 어느 날 호숫가에 제 얼굴을 비춰보았을 때 그곳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뱀의 머리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또한 존재하지 않으리다.
“있잖아, 슈지. 우리 부대 마크 말이야, 생각해 둔 아이디어라도 있어?”
미와 부대의 A급 정예 부대 승격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날로부터 이튿날, 자판기 앞에서 사과주스 팩을 뽑던 요네야 요스케가 때마침 교정을 지나가던 미와 슈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정답게 말을 붙이는 그와 비교하면 조금 무뚝뚝하겠으나 대화에 불성실하게 응한 적은 없는 대장임을 요네야는 알았다. 독자적인 부대 엠블럼은 A급 정예 부대에 주어지는 특혜 중 하나로, 미와 부대는 어태커 한 명, 올라운더 한 명, 스나이퍼 두 명, 오퍼레이터 한 명으로 이뤄진 5인 부대이므로 이들의 특징 또는 목표로 하는 가치 등을 하나의 엠블럼에 담아낸 시안을 디자인 팀에 제출해야 했다. 모든 A급 부대가 그랬듯이, 그들에게도 그때가 오고 말았다. 엠블럼은 한 번 확정되면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수정 요청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시안을 결정하고 확정해야 했다. 어느 정도는 시안을 확인한 디자인 팀에서 멋들어지게 재탄생시켜 주겠지만, 일단은 시안이 잘 나와야 최종 결과물도 괜찮게 나오지 않겠나. 그래서 시안 제출 공지와 접수 마감일을 통보받은 어제부터 본격적으로―실은 그 전부터 고민은 하고 있었다. 요네야는 그들이 A급에 들어가지 못하리란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머리를 굴리며 고민하는 그들이었다. 그들에서 미와는 제외해야 하겠지만. 시안에 관해서 미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A급으로 승격되면 자유롭게 트리거를 개조하고 시작품을 사용할 수 있으니 그 특혜에만 조금 관심이 있을 뿐. 그렇다고 엠블럼에 열을 올리는 제 부대원들을 한심하게 본 적은 없었다. 정말로 생각나는 것이 없을 뿐이었다.
“코데라와 나라사카, 스나이퍼가 둘이나 있는 부대는 우리밖에 없으니까 그 점을 살려도 좋을 것 같고.”
“……총탄?”
“슈지 너는 레드 불릿이 주특기니까 그 점도 살리고 싶은데.”
“……못 벗어나게 휘감는다던가.”
“뭐가? 뭐를?”
“…….”
생각나는 것은 없지만, 아이디어는 없지만 요네야가 정리해서 모아온 모두의 의견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을 붙이던 미와의 말문이 결국 막혔다. 하지만 그를 탓할 생각일랑 요네야에게 조금도 없으니 그 역시 마땅히 떠오르는 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탄환을 휘감는 무언가. 그들의 특징 또는 목표로 하는 가치를 담아내는 엠블럼. 목표. 가치. 집념? 그들의 집념이야 빤하다. 문제는 그것을 하나의 상으로 나타내는 것이지. ‘아―아. 디자인은 젬병이라니까.’ 요네야가 머리 위로 두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는데, 그동안 계속 생각에 잠겨 있던 미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요네야는 미와도 저와 같이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 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아예 디자인 팀에게 맡겨 버릴까, 같은 무책임한 생각에 잠겼을 때.
“……뱀이라던가.”
“뱀?”
싫으면 말라고 말하는 미와지만 요네야의 머릿속엔 벌써 탄환을 휘감는 뱀 한 마리가 연상되어 있었다. 한 마리? 한 마리는 별로지. 별로? 별로가 아니라 그럼 안 되지.
“두 마리여야겠네. 너랑 나 둘이어야 하니까.”
“그런가.”
“응.”
‘당연하지.’ 총탄을 휘감는 두 마리의 뱀. 네이버를 놓치지 않겠다는 그들의 집념과도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비록 요네야 본인의 집념을 그들에 미치지 않을지라도 함께 A급까지 오른 동료들, 가족들의 뜻이라면 기꺼이 힘을 보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이 같은 비유를 알지 못하지만 기꺼이 뱀이 되어 뱀 머리를 깰 준비가 되어 있다.
뱀 머리를 단 뱀 사냥꾼들이다. 뱀을 잡고자 뱀 머리를 달았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따가 봐!’ 달리며, 손을 흔드는 친구에 미와도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