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비자림

축하

  • gwachaeso
  • 7월 18일
  • 3분 분량

<WT>

유마 생일 축하 글


“쿠가,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현관에서 거실까지의 짧은 복도의 불은 꺼져 있었다. 거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터지는 폭죽 소리와 켜지는 형광등의 불빛. 가운데에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는 역할은 미쿠모가 맡았다. 나름의 깜짝 생일 파티였던 셈이지만, ‘그’ 쿠가 유마를 상대로 먹혔을지 미쿠모는 지금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상상하고 각오했던 것만큼이나 난도가 높았던 준비 과정을 거쳐 실현된 깜짝 생일 파티의 주인공 쿠가는 ‘오, 생일.’이란 말과 함께 미쿠모에게서 케이크를 받아 들었고, 예의 그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것이다. 그에게 ‘시답잖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으레 보여주곤 하는 그 미소. 역시 알아챘을까? 그럼에도 두고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거짓말은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 순간에만 어쩔 수 없이 사용되었지만, 그간 그를 위한다는 핑계로 발화되었을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그리고 그것을 들어야 했을 쿠가의 마음을 미쿠모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오늘까지도, 그에겐 오늘이 그날과 다르지 않으며 이들 또한 그날의 이들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쿠모는 저희의 진심을 쿠가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가 무감하거나, 알아채도 외면할 정도로 무정하지 않으리라 그를 믿고 있었다. 실로 그랬다. 미쿠모에게만 잠깐 보여주었던 미소는 곧이어 아마토리와 키자키, 코나미 등 다른 이들이 그에게 다가올 즘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니 그건 쿠가에게도 나름의 장난이었던 셈이다. 저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이들의 마음이 기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그는 생각보다도 더 날카로운 직감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다정한 사람이다. 이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묻지 않았다. 그들이 제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범인이야 뻔하기도 하고. 아, 그를 범'인'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미덴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를 계산하여 쿠가의 생일을 미덴식 날짜로 계산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레플리카. 그는 쿠가 유고, 그의 아버지가 그의 곁을 떠난 후부터 매년 그의 생일을 축하해 준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창조주가 사라진 후 레플리카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지도를 만드는 대신, 쿠가 유마의 생일을 계산하기 위해 네이버후드를 부유하는 행성 국가들의 궤도로 그의 생일을 역산했다. 더는 지도를 만들지 않았던 건 쿠가가 네이버후드의 지도를 그리는 데 관심이 없고 그의 의지를 레플리카가 존중했기 때문이지만, 생일을 계산하는 건 레플리카에게 부탁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부탁받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며 쿠가에게 넌지시,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유마. 오늘은 너의 생일이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축하받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른다고 해도 오롯이 그 자신을 향한 호의를 차갑게 쳐내어 무시하는 것은 의에 어긋나는 행동일 것이다. ‘정의로워야 한다.’ 레플리카는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 또한 그렇게 근사한 말 따위 그에게 해준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너의 선택이고, 너는 네 선택의 결과를 짊어지기만 하면 된다.’ 그런 말이라면 또 모를까. 그리고 이 신체가 그가 짊어지고 있는 선택의 결과였다. 자라지 않는 육신. 변하지 않는 신체. 반지 속에는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이 있다. 고통 없이. 하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될까? 그건 아무도 몰랐다. 레플리카도, ‘모른다’고 대답했던가.


소년이 청년이 되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을 밝혀야 할 불은 미약하게 켜져 있었다. 그 길에서 벗어난 순간 귓가에서 터지던 요란스러운 폭음과 눈앞에서 번쩍거리던 트리거의 불빛. 그 가운데에서 제게 와 제 상태를 살피는 역할은 그의 아버지가 맡았다. 놀랐을까. ‘그’ 쿠가 유고를 상대로 저는 그를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을까. 지금도 자신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거칠고 잔혹했던 전투를 거쳐 빈사 상태에 이른 쿠가는 ‘아버지’라고 그를 부르며 그를 보았고, 아버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쿠가 유고, 그는 그가 가진 사이드 이펙트로 ‘시답잖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니 ‘괜찮아’ 따위의 거짓말을 했어도 그는 알아챘을 것이다. 저보다 더 날카로운 직감의 소유자요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요 아버지였던 사람. 그를 아는 사람이라고 그에 관한 그 모든 것을 알진 못했겠지만, 쿠가 유마는 알았던 사실이다.


생존을 축하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롯이 그 자신을 향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레플리카도 계속해서 상기시키지 않았나. 생일을. 오래전 그가 태어났던 날을. 축하받아야 하는 날을.


그에게 오늘이 그날과 다르지 않으며 이들 또한 그날의 이들과 다르지 않을지라도. 쿠가 유마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살아있음을 축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답잖게 여기지 않았다. 또한 미쿠모의 믿음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쿠가는 그들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무감하지도, 무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쿠가?”


그걸 그는 눈치챘을까? 조금은 걱정과 의아함을 담은 목소리로 작게 저를 부르는 그에게, 마찬가지로 작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냐.’


“고마워. 오사무.”


축하해줘서.


“그래? 다행이다.”


축하해줄 수 있어서.


“사실 레플리카가 알려줬었어…….”

“그럴 것 같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웃으며, 축하를 받아들인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