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gwachaeso
- 3월 27일
- 3분 분량
<WT>
모두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실 틀린 문장은 아니기도 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러길 저어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건이 있었고, 많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뒤로하면 해가 넘어갔다. 이듬해 졸업장을 받은 그는 그 손에 들린 학위 수여장과 머리 위로 씐 학사모와 더불어, 장식이 조금 더 붙은 학위복 가운을 어깨 위로 걸쳤다. 그런 뒤 강당을 나와 잔디가 깔린 운동장으로 발을 옮겨, 이미 많은 학생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그곳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한다. 꽃다발도 한 아름 받고, 곁으로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는 부모님께 학사모도 씌워드렸다. 드디어 네가 졸업을 하는구나. 어머니의 다소 감격 어린 말에 멋쩍게 웃으며 사실을 바로잡는다. 에이, 학사모는 학부 졸업했을 때도 써본걸요. 그거랑 지금 이거랑 같니? 알만한 애가, 참. 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리니 멀찍이서 손을 흔들며 제게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몇몇은 학위복을 입었고, 몇몇은 입지 않은 채였다. 몇몇은 가운을 팔에 끼고 있기도 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밝고, 흐리지 않으니 맑기 그지없었다. 머리 위 하늘만큼이나 청명했다. 야!
아즈마! 졸업 축하한다!
따라 웃으며 화답한다. 고맙다. 따라 키득거리는 친구들이다. 와, 네가 드디어 졸업하네. 진짜. 언제까지 학교에 있나 했는데. 나 진짜 오랜만에 학교 와 봤어. 올 일이 뭐 있겠냐? 네 졸업식이 아니면. 반갑고 기꺼운 말을 들려주는 친구들에게 부모님이 손짓했다. 곁에 다가와 서라고. 사진 찍어주겠다는 말을 사양할 녀석들이 아니다. 자자, 모여. 다들. 아즈마 가운데 세우고. 난 앞에 앉는 게 나으려나. 반만 앉아, 반만. 빨리 찍자.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힌다. 저를 마중 온 친구들과 언제 이렇게 또 다 같이 모여 함께하나 싶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아, 좀 조용히 말해, 그런 건. 조용히 말했어, 난! 오래전, 그러니까 한 4, 5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처럼 변함없어 뵈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저 역시 그때로 돌아간 듯싶었을 때. 시선을 돌리니 저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그러나 저와의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아 저를 올곧이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본 이상 모르는 체하기 힘들게 만드는 소년이 서 있었다. 고등학생? 가족을 따라온 졸업생의 가족일까? 근데 왜 나를 보고 있담. 근데 왜 발끝부터 찌릿하며 저리고 가슴께엔 이상한 울렁거림이 느껴지는 거람. 이상한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아 고개를 돌리려는데 역시나 저를 보고 있는 게 맞았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행복하세요?
어……?
행복하시면 괜찮아요. 이젠 그러셔도 돼요.
저흰 그거면 충분해요.
어…….
너희가 누구냐고 물어야 하는데 물어봤자 알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아이들과 새삼 친분을 쌓을 일? 있었겠나. 있을 리가 있었겠나. 그래도 행복해지라니, 덕담을 들었으니 좀 이상하고 수상하고 괴이쩍기까지 한 소년을 그대로 무시하고 가기도 마음이 걸렸다. 다행히, 친구가 저를 부르고 있었다. 야, 아즈마! 저기 비석 앞에서도 사진 찍자! 아마도 추모비를 말하는 것이리다. 곧 가겠다며 손짓한 후 다시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는, 그럼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소년에게 익숙하게 웃어 보였다.
너희도 그러렴.
고마워, 그럼 난 가 볼게. 그런 뒤,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하기는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하지 않으면 왠지 더 이상할 것 같은 인사를 건넸다. 건네며 몸을 돌렸다.
안녕.
그리곤 서둘러 발을 옮겨 친구들과 합류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다. 비석 앞에 먼저 도착한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찾아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 웃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명예 학위랬나? 곁에 선 친구가 학위증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묻는다. 응. 어때, 제법 명예로웠어? 글쎄……. 사진을 찍어주실 부모님을 두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닫지만 이제 와 그리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뒤돌면 그대로 자리에 무너져 주저앉아 통곡하는 그분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미 떠나온 만큼 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돌아보는 대신 발을 떼고, 돌아가는 대신 친구의 말에 뒤늦게 대답했다.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
그럼 됐네.
맞아.
그럼 됐어. 웃으며 몸을 돌리는데 그 바람에 어깨에 걸친 흰 천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괜찮아.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 몸을 숙이려 들자 친구가 말렸다. 줍지 않아도 돼. 그래? 그래. 이젠 줍지 않아도 돼. 너는 할 만큼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주울 거야.
그렇다면 내버려둬도 상관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뒤 저 또한 친구들이 몰려 있는 비 앞으로 다가섰다. 그 뒤론 게양대가 높이 서 있었다. 한 폭만큼 내려 단 조기가 게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