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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우수

  • gwachaeso
  • 3월 28일
  • 2분 분량

<WT>

리퀘스트



그날은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왜일까? 비 오는 날이면 오래전 다 아문 자리가 새삼 아파 오는 까닭을 미쿠모 오사무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통증으로 회자하는 지난날이 언제인가는 명확하나니 미쿠모 오사무는 비 오는 날이면 아파 오는 흉터 자리를 통해 반으로 갈라진 레플리카의 마지막 말을 회상한다. ‘오사무. 작별이다.’ 갈라진 상처가 입을 벌려 말하는가? 아문 지 오래인데도. 다문 지 오래인데도.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에 섞여 가청주파수 안으로 들어오는 그것의 목소리. 목소리? 아니면 그저 소리.


‘유마를 부탁한다.’


최초에 그 곁에 들 때도 갑작스럽게 들어와 모를 수 없이 넓은 자리를 차지했던 레플리카다. 난 자리 또한 모를 수 없이 넓고, 텅 빈 자리를 남기고 간 레플리카, 그리고 쿠가 유마. 그들과 비 오는 날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앞서 미쿠모 오사무는 그 답을 제가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미쿠모 오사무는 그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고 명석하며 포기를 모르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리다.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몰랐지만, 생각을 거듭한 끝에 끝내 깨닫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 오래전 저를 두고 떠난 누군가와 그 누군가의 가족이 울던 날에도 비가 내렸음을 기억해 내는 미쿠모 오사무는 그에게 있어 상실의 날이 비와 함께 떨어짐을 상기한다. 그러니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함께 환기되는 것이다. 이 또한 미쿠모 오사무가 겪은 상실이므로.


겪게 한 상실이므로.


침대에 누운 채 창가를 등지도록 돌아눕는다. 언젠가 아마토리 린지의 실종을 아마토리 치카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울던 아마토리 치카와 미쿠모 오사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웃어 보이던 쿠가 유마의 상을 함께 떠올린다. 미쿠모 오사무의 힘이 부족해서 잃어버린 그들도 함께 연상한다. 따라가지 못하여 남겨졌던, 힘이 없어 지켜져야 했던 미쿠모 오사무는 지금 어떠한가. 그날에 비하면 충분히 강해졌는가?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도리어 그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창을 톡톡 두들기는 빗소리와 파이프를 타고 콸콸 내려가는 물소리, 그 속에서 소란을 숨기는 생각은 제법 시끄럽다. 비 오는 날이라, 가라앉은 날이라, 함께 울적해지는 날이라 더욱 소란스럽게 떠드는 생각 소리.


아무리 쿠가 유마라고 해도 전부 가져갈 순 없었다. 미쿠모 오사무는 가지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상실감과 더불어 따라오는 죄책감을. 한 톨도 남겨두지 않고 뺏어갈 순 없었다. 그것은 미쿠모 오사무가 가져야 할 몫이기에 그렇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앞으로 더더욱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에.


그러니 비가 그칠 때까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나아갈 테니까.

그동안만, 좀 더 가라앉기로 한다. 다시 부상할 부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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