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WT>
아즈마 결혼 날조
간밤에 늦게 잠든 탓에 일어난 시간도 제법 늦은 오전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정오는 넘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런치가 아닌 브런치라고 주장하며 계란 프라이를 올린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물고 삼킨다. 뜨겁게 내린 커피의 향이 부슬비 내리는 바깥에서 밀려오는 비 냄새와 어우러지고, 오늘 아침 늦게까지 눈을 뜨지 못한 탓에는 비구름으로 흐린 하늘도 있겠다며 하늘에게로 책임을 조금 미룬다. 그래도 미룰 수 있는 책임은 거기까지니, 식사를 다 하면 씻고, 거실과 방을 대충 치우고, 단정하게 단장하자. 오후엔 공부를 봐주고 있는 과외 학생이 집에 오기로 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는 오늘로 석 달 정도 되었을 것이다. 혼자 살기엔 방도 많고 조금 넓기도 한 집이라, 방 하나를 아예 아이들 공부방으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었다. 한 번에 가르치는 학생은 많아도 셋. 커다란 테이블을 방 중앙에 두고, 한 면에 두 개씩 등받이 달린 의자 네 개를 놓았다. 벽지는 산뜻한 하늘색이다. 구름무늬가 있었으면 더욱 아이들 방처럼 보였겠으나 스티커를 붙여 굳이 꾸미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이곳이 아이들 방으로 쓰이게 될지는 모르니까. 지나치게 마음을 쏟는 것은 좋지 않으리다. 과하리다, 그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본디 그의 일이 아니었다. 제 배우자가 하던 일이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도 원래는 그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었다. 그이가 가고, 저만큼이나 슬퍼하는 아이들을 보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에게 직접 요청받은 것은 아니고 아이들을 부탁하는 누군가의 제안을 받았다. 가르쳐 보시는 건 어떻겠냐고, 조금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냐고. 그 시절의 기억은 아무래도 흐릿하기에 제가 무어라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지금 그가 그이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거겠지. 덕분에 정말로 집 안에 활력이 돌았으니 결과가 나쁘지는 아니했다. 아이들은 저를 잘 따랐다. 아즈마 씨, 하고 다시 부를 수 있게 됨에 기뻐하기도 했다. 분명 아이들에게도 위안이 되었겠지. 저의 위안만큼이나. 서로서로 위안이 되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이러면 조금 박하려나. 괜찮은 관계였다. 제법.
커피잔을 내려놓은 후 어젯밤 켜 두고 잠들었던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원격 접속을 걸어둔 컴퓨터에선 어젯밤부터 내내 실행시킨 프로그램이 아직도 낮은 퍼센티지를 기록하며 돌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연구 자료들을 가져온 후 연구실엔 거의 있지 않게 되었다. 컴퓨터만큼은 들고 올 수 없어 이렇게 원격으로 접속해야 하지만, 그이와 함께했던 공간에 돌아가는 것은 아직 망설여진다. 다행히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 가능한 한 학교에 가지 않고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조작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코니의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밖에선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온종일 내린다고도 했던 것 같다. 잠시 그쳐도 다시 내리길 반복하는 식으로. 부엌으로 발을 옮기며 아이들이 우산을 챙겨와야 할 텐데, 같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거실의 불을 켜자고. 사위가 어둑하니 무얼 해도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오기 전에 환기를 한 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집 안도, 자신도.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몰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는 보통의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자신의 기억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곳을 떠나기 위해선 ‘보안 조치’가 적용되리란 것도 알았다. 기억을 봉인해야 하리다.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은 모두 자신의 통제와 제어하에 두길 원했다. 그러니 그곳을 떠날 수 없었고, 그러니 더더욱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턴 체념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그래도 나쁜 직장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의의도 좋고, 하고 싶은 연구도 할 수 있고, 복지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으니 평생 직장으로 삼아도 괜찮을 성싶기도 하였다. 위험수당이 따른다는 것의 의미가 존재하는 직장이긴 했지만, 그건 삶의 터전인 이곳 고향을 떠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리스크이긴 하니 감수할 수 있었다. 그 정도쯤이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정도쯤이야…….
한동안은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도 닫고 커튼까지 꼭꼭 닫아두어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것 같다. 단순한 이유에서였는데, 빛이 있으면 잠을 방해받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오래도록 잠들었고, 일어난 뒤에도 계속 잠들길 원했다. 자도 자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논문을 끝낸 다음엔 며칠을 이리 잠들곤 했다. 자도 자도 잠이 부족해서. 잔해들을 잊기엔 잠이 부족해서. 무너진 도시를 잊기엔. 무너진 집. 무너진…….
…….
문을 부수고 들어온 아이들에겐 화를 냈다. 제게 화를 낼 힘이 남아있다는 건 그날에야 알았다. 그럼에도 팔짱을 풀지 않고 뻔뻔하게 저를 노려보던 아이들은 제게 씻고 단장할 시간이라곤 조금밖에 주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들의 감시하에 놓이길 바랐다(화장실은 간신히 사수했다). 대충 외출 채비를 마치기 무섭게 저를 끌고 나가는 아이들에게 순순히 떠밀렸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짐작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자신 앞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서명만 하면 무너진 시간을 기억 너머로 잠시 몰아낼 수 있었다. 망각할 수 있었다.
그는 보통의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자신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이 장소에 올 리 없었겠지. 스스로 발을 들일 일 따위 없었겠지.
…….
그 시절의 기억은 아무래도 흐릿하기에 제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저만큼이나 슬퍼하는 아이들을 보았던 기억은 나는데, 처음 보는 아이들이지만 착한 아이들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하다. 그이가 재직했던 학교의 학생들이라 하니, 그이가 가르친 아이들인 모양이지. 그렇다면 아마도 장례식장에서 본 아이들이리라. 그게 아니면 제 앞에서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곳은 장례식장이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그곳이 어디겠는가.
거대한, 네모난 건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거대한 관을 연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마음을 쏟는 것은 좋지 않겠지.
그렇겠지.
응.
일순 이대로 다시 눈을 감고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이 올 시간은 금방 온다. 소홀함 없이 준비를 마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개수대 안에 컵과 접시를 내려놓은 뒤 물을 틀자 마른 개수대 벽면에 물방울이 튀었다.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접시를 닦는다. 그러고 싶었기에, 아즈마는 오랜만에 팝송을 작게 흥얼거리며 접시를 닦고, 컵을 닦고, 물기를 닦았다. 비는 하루 종일 내린다고 했다. 하루 종일 귀가 심심할 일은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