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 gwachaeso
- 3월 20일
- 3분 분량
<WT>
구 아즈마 부대 초기
미와는 이따가 나 좀 보자. 시선은 들고 있는 서류 페이지에 고정한 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리 말하면, 남은 사람들은 역으로 이른 귀가 명령을 받은 것처럼 가방을 챙기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지목당한 미와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니노미야나 카코나 츠키미나 미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미와를 작전실에 혼자 남겨둔 채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정작 그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아즈마까지 작전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미와는 정말 혼자, 작전실에 남겨진 채 대기하란 대장의 명령을 따랐다. 후일의 아즈마는 아이들에게 작전권을 맡기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역할을 했지만, 이 시기의 아즈마는 그가 곧 부대의 대장이고, 작전권자이며, 사령관이었다. 따라서 그가 계획한 ‘전략’에 따라 전략을 수정할 필요 없이 움직여 지정된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대원들의 역할. 물론 그것은 그들이 랭크전이나 방위 임무 같이 실전에 임했을 때로만 한정되기에 평상시에도 절대적으로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명령을 내릴 때 목소리는 분명 따로 있어 아즈마 대의 대원이라면 모두 이를 구분할 줄 알았다. 그래서 니노미야도 카코도 군소리 없이 그의 명령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상황을 관측하고 판단하는 오퍼레이터 츠키미는 항명이 허용되는 유일한 예외긴 하나 오늘 이 자리엔 남아 있지 않았고, 트리온체 설정상 그럴 리 없는데도 등 뒤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아즈마가 한 손에 길쭉한 직육면체에 크기가 제법 되는 상자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구급상자였다.
“트리온체를 풀어라, 미와.”
“…….”
어떻게 알아챘을까? 그는. 트리온체를 꿰뚫어 보는 재주를 가진 사이드 이펙트 소유자는 아직 없으니 미와가 트리온체로 신체를 전환하기 전에 그를 목격했거나 그와 얼굴이 이 지경이 되도록 다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몰랐다. 시프트가 얼마 남지 않아 얼굴도 제대로 닦지 않은 채 신체를 전환했더니, 그대로 방치되어 굳어진 코피 자국 하며 시퍼렇게, 또는 시뻘겋게 붓고 멍이 들기 시작한 눈두덩이에 아즈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피가 굳어서 그렇지 닦아내면 별일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화가 난 그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손에는 물수건이 들려 있던 아즈마였다. 천천히, 닦아내는 손은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상처에 닿는 자극이 고통이 아닐 수는 없어 미와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래도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제 괜찮다고도. 그 순간만큼은 화가 난 아즈마에게 덤비거나 대거리를 하고 싶진 않을 만큼 그가 무서웠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실은 그뿐이란 것도 알고 있긴 하였다. 아즈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미와에게 누가 그랬니, 라고는 묻지 않았다. 미와 역시 누구에게 맞았습니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앞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난 대침공이 보더의 자작극이라고 겁도 없이 입을 놀리는 것까지는 미와라도 봐줄 수 있긴 했다. 하지만 희생당한 사람들을 언급하며 돈 받고 연기 좀 해주려다가 사고가 나서 진짜 죽어버린 것이라고 말하는 망발에는 미와가 아니라도 참을 수 없고 견딜 수도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저보다 머리통이 두 개는 더 큰 고등학생들에게 덤벼든 결과가 이 꼴이었다. 지나가던 주민의 신고가 없었으면 그대로 한참은 더 바닥을 굴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건 청취를 하고자 하는 경찰에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위 임무가 급해 어쩔 수 없다며 제게 말을 붙이는 경찰의 말을 대뜸 끊고는, 트리온체로 전환하여 그대로 본부로 달려온 것이 불과 몇 시간 전 일이었다. 또한 아즈마가 이를 알게 된 사연 역시 다음과 같았으니, 미와는 알지 못했으나 주변에서 끼어들어 말리지 못하고 걱정스레 이를 지켜보던 이들 중엔 미와의 동급생이 있었다. 그는 보더에 소속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고, 친구는 미와가 속한 부대의 대장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이 역시 미와는 알지 못하지만 경찰과 통화를 하고 돌아와 오늘의 방위 임무를 수행한 아즈마이기도 했다. 그가 경찰과 통화했다는 사실이야 후일에 미와가 아는 날이 올지 몰라도,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여 사건을 마무리 지었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물어보지 않을 것이고, 말하지 않을 것이므로.
연고를 바르고 가위로 올린 거즈를 붙여 상처를 가리는 동안 미와도 아즈마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와는 문득, 정말로 문득 어느 날의 제 누이를 떠올렸는데, 누이는 미와가 놀이터에서 넘어져 오기만 해도 온갖 짜증을 내며 혼내기 일쑤였지만 실은 울상이 된 저를 보는 속상함에서 비롯되어 그리했다는 것을 어린 미와도 오래지 않아 금방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사람은 화가 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누이의 그것과 같아서 그런 것인지 미와는 조금 알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서? 성가셔서? 그렇게 정 없는 사람은 아니지.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니지. 그럼 속상해서? 제가 들은 모욕이 신경 쓰여서? 화가 나서? 표정을 읽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잘 읽지 못하는 표정인데 이 사람의 표정은 읽어내기가 특히나 더 어렵다.
“다 됐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그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깜박거린다. 아, 이 표정은 읽기 어렵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제가 사과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저 역시 그에게 왜 사과했는지 그 이유는 조금 모호한데, 그래도 말하고 나니 역시, 사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아직은 그가 미와라고 불릴 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