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gwachaeso
- 3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Fate Zero>
코토미네 키레이와 길가메시
최초에 양수에서 태동하던 심장이 진흙 속에서는 뛸 리 만무한지라 신앙 없는 신자, 신을 경외치 않는 신부, 아비의 죽음을 바라던 아들은 맥동하지 않는 심장과 함께 눈을 떠 세상을 보았다. 진흙으로 불탄 세상을. 진흙이 세상을 불태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되었다. 잔에서 쏟아진 오염이 세상을 불태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제 몸에 들러붙은 오염을 몰아내고자 세상이 스스로 그 몸에 불을 지른 것인지도 알 수 없겠다. 허파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검은 타르 같은 오염을 떨쳐내고자, 불길로 스스로 뛰어들어 가죽을 그을리는 염소와 같이, 그 위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인간 따위 알 바 아닌 양으로 불을 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상은 알 수 없었다. 그건 그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그는 아직도 더불어 영원히 무지한 아이와 다름없으며 죽는 날까지 무한한 지식의 상아탑을 오른다 한들 옥상에 도달하여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하리라. 한낱 인간은 그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어떨까? 아비를 경외치 않았던 아들, 신을 신앙하지 않은 신부, 바라는 법을 몰라 욕망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줄 안 신자 앞에는 이국의 왕이, 이방의 지도자가, 이계의 신이 앉아 있으니 그를 낳은 자는 신이라 일컬음 받는 자였고 그 또한 왕으로서 신 못지않은 인간의 시대를 이룩한 자였다. 혹자가 진흙에서 빚음 받은 심장을 얻었듯이 그 또한 육신을 얻었으니 이것은 그가 육신을 버린 지 얼마 만에 얻은 육신이요 팔다리요 심장인지 그조차 알지 못하리라. 천 하나 걸치지 않는 육신은 이름난 예술가가 조각한 것과 같으나 살아생전 그의 육신이 실로 그러했는지 아니면 죽어사후 그가 그의 바람을 소조한 형상이 이와 같은지는 그로서 알 길이 없고 알 바도 아니더랬다. 단지 존재할 뿐. 부재하지 않을 뿐. 제 바람이 낳은 결과를 바라보는 그는 사실로 제 욕망이 부재하지 않고 존재했음을 일컫는 세상을 바라본다. 제가 욕망한 세상을 바라본다. 오염이 세상을 불태우는 세상. 스스로 불을 지른 세상. 오염 그 자체를. 바라는 자만큼 오염된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오염 그 자체인 자라. 그는.
이국의 신, 이계의 지도자, 이방의 왕을 따라나선다. 또는, 그들 모두인 자가 그를 따른다. 제 욕망의 결과는 보았다. 하지만 이리로 이끌어진 과정을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저것은 어떠한 부정사에서 개시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알 수 있는 것인가? 너는 모른다. 하지만 알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희구, 희열, 희유를 말하며 신부의 신이 열외 된 모든 열방의 신이 되는 자가 웃는다. 신자의 유일신이 차지하지 못하는 우상은 모두 그의 것이다. 아들의 아버지가 되지 못한 주물은 모두 그를 경배하기 위함이다. 너의 신을 믿지 않은 너는 그동안 너의 신앙이 어디로 향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기도가 누구에게로 향했다고 생각하느냐?
욕망을 기도한 자 앞에 현신한 신을 우러르라.
그리하여 그가 신과 동행하더니 신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