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 gwachaeso
- 4월 23일
- 3분 분량
<WT>
요네미와요네
요네야 요스케는 솔직히 ‘유체 이탈’이란 것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외일까? 하지만 위 문장에서 ‘생각하다’란 진지하게 몰입하여 생각에 ‘잠긴다’라는 것을 의미했고, 그렇게 치면 요네야 요스케는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몰입하여’ 유체 이탈에 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제법 유쾌하지만 별난 사람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유체 이탈의 개념은 알고 있되 그것에 관해 별다른 소회를 품은 적은 없었다. 그래, 개념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개념에 의하면.
그는 지금 유체 이탈을 한 것 같다.
육체에서 이탈한 지금 이 자신, 사고하는 이 의식이 바로 유체인가?
모르겠다. 꽤 중요한 문제이긴 하겠으나 요네야의 ‘의식’을 사로잡은 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 그렇게 말하면 조금 많이 정 없지. 다른 사람. 구체적으로는.
유체가 이탈한 육신 앞에, 깨어나지 않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슈지.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음은 미와 슈지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그전까지 요네야는 솔직히,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베일 아웃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라던가. 푹, 하고 가슴에 뭔가 꽂혔을 때라던가. 아, 그때는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니 ‘이렇게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말로 표현을 정정해야 하리다.
죽는 걸까? 자신은.
요네야 요스케는 자신을 죽일 권리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그가 죽이려고 하는 모든 존재가 가진 권리였다. 무언가를 죽이려 드는 의도는 실행하는 데 실패했을지라도 유효한 법이었다. 아니, 실행은 했다고 봐야지. 성공하지 못했을 뿐. 따라서 요네야는 미수에도 미수로 그치지 않은 것과 동등한 책임을 부여했고, 따라서 그것들은 모두 요네야를 죽일 권리를 가졌다. 네이버들 말이다. 물론 그들도 요네야를 죽이려고 하니 요네야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었다. 그들을 죽일 권리. 그들을 박살 낼 권리.
물론 반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면 그렇다는 말을 가벼이 꺼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 자신은 계속 살아있길 바랐다.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고 뭐, 솔직히. 죽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죽고 싶을 사람이 어딨겠어. 아무래도.
처음엔 눈을 깜박이며 슈지를 보고 있었다. ‘눈을 깜박인다’라는 건 아직 제가 육신에 있을 적 행동을 습관대로 흉내 내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렇지만 그때도 지금도 그는 자신이 유체라는 사실을 그렇게 썩, 실감하고 있지 못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슈지의 표정을 통해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음을 알았고, 돌아가 슈지 옆에 나란히 서서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보았다.
아,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심히.
저에게도 그렇고, 아마 슈지에게도 그럴 꼴로 앉아 있는 저 자신.
요네야는 과거 어느 날 슈지에게서 그의 과거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을 들은 적 있었다. 누이가 죽은 날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슈지는 어땠더라? 담담했던가, 흥분했던가. 좌절했던가, 분통을 터뜨렸던가.
지금 같은 표정을 지었을까?
요네야는 제 옆에 나란히 선 친구의 표정을 보았다. 아, 아이고. 이런.
슈지.
처참한 내 친구.
잔해 앞에 자신을 무너뜨리진 않되 기둥처럼 서서 풍화되고 있구나.
요네야 요스케는 이제 유체 이탈이란 것에 관해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진지하게 몰입하여 생각에 잠길 때였다. 하지만 그는 제법 유쾌한 사람이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낼 만큼 똑똑하진 못한 터라 이 뒤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해선 알지 못했다.
육체에서 이탈한 의식이 눈을 깜박인다. 육신에 있을 적 행동을 습관대로 흉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살아있을 적’이란 표현으로 정정하게 될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많이 잘못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때. 지금은 하고 있지만 말이지. 슈지. 미안.
그는 담담하지도 흥분하지도 좌절하지도 분통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잔해 앞에 잔해도 되지 못하고 기둥처럼 서 있다, 오늘날엔.
그날엔 누이를 끌어안았던 소년이지만 솔직히 저도 저 자리에서 끌어내 끌어안아 주길 바라는 건 아니고.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어서.
고개를 돌리며 요네야 요스케는 자신을 죽일 권리에 관해 생각했다.
그건 그가 죽이려고 하는 모든 존재가 가진 권리였다.
무언가를 죽이려 드는 의도는 실행하는 데 실패했을지라도 유효한 법. 요네야는 미수에도 미수로 그치지 않은 것과 동등한 책임을 부여했고, 따라서 요네야는 그들을 죽일 권리를 가졌다. 그들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었다. 요네야를 죽일 권리. 요네야를 박살 낼 권리.
그리고 그 권리는 슈지에게도 있다.
지난날 슈지가 저를 죽이려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슈지를 박살 내려 든 건 요네야 자신이다. 요네야 자신이 빠져나와 빈 자신이 슈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죽이려 들고 있었다. 앞서, 미수는 미수로 그치지 않은 것과 동등한 책임을 졌으므로 이제 슈지가 요네야의 목을 조를 때다.
그래야 해. 그래 줘야 해.
그래 줘야지. 안 그래?
슈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면 그렇다는 말을 가벼이 꺼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요네야 그 자신은 계속 살아있길 바랐다. 그는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슈지도 마찬가지이리다. 그가 계속 살아있길 바란다. 죽지 않길 바란다. 요네야가 죽길 바랄 리 없다. 이건 꿰뚫어 봤다고 말하기도 그렇지. 우리가 함께 합을 맞춘 시간이 얼만데. 뻔하잖아?
그리고 뻔한 그에겐 요네야의 목을 조를 권리가 있다.
아니…….
멱살을 잡을 권리로 바꿔주면 좋을 것 같다만.
육체에서 이탈한 의식이 쿨럭, 기침한다.
육신에 있을 적 행동을 습관대로 흉내 낸 것이 아니다. 동시에 그의 육신도 같이 기침하며, 함께 흔들렸기 때문이다. 유체에 있을 적엔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스멀스멀 찾아들기 시작하고, 그예 눈을 감았다 뜬다. 깜박인다.
나란히 서 있던 그가 이젠 제 앞에 서 있다.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며 불렀다.
“슈지.”
“……요스케.”
“나 아직 살아있어.”
“……그래.”
그건 어쩌면 과거의 어느 날 슈지가 그의 누이와 나눠야 했던 문답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요네야에겐 언제나처럼 질문할 권리가 있었다. 슈지에겐 대답할 권리가 있었고, 요네야에겐 질문하지 않을 권리 또한 있었으며 슈지 또한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질문하는 대신 말해줄 수 있었다.
“괜찮아.”
“…….”
그건 어쩌면 과거의 어느 날 슈지에게 필요한 말이었을지도 몰랐다.
슈지에겐 그 말을 들을 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