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賀
- gwachaeso
- 3월 28일
- 3분 분량
<WT>
리퀘스트
새해가 밝았다.
“아, 너희 로고에 뱀 들어갔지?”
친지들은 새해 선물을 서로 나눠 가지고,
“로고가 아니라 엠블럼…….”
덕담을 나눈다. 진심으로, 한 해의 건강, 소원 성취 등을 기원하며.
“아무튼 뱀 들어갔잖아. 자, 받아.”
올해는 뱀의 해라더라. 축하해, 올해는 너희의 해네!
“감사합니다.”
이상이 나라사카 토오루가 신년 선물과 함께 건네받은 덕담과 그에 대한 화답이겠다. 나라사카 토오루는 A급 7위 미와 부대의 스나이퍼로, 또 다른 스나이퍼 코데라 쇼헤이와 함께 미와 부대의 엠블럼 중심에 있는 탄환으로 상징되는 전투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탄환을 휘감은 뱀은 그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다. 네이버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물고 늘어져 붙잡아 박살을 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엠블럼으로 두 마리의 뱀은 근거리 공격을 맡는 어태커 요네야 요스케와 올라운더이자 대장인 미와 슈지를 상징했다. 그런 엠블럼이었다. 나름의 의미도 분명히 담고 있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은.
그리고 의미가 그러든 말든 신년 선물과 함께 건넬 덕담의 스몰 토크 주제로는 나쁘지 않다 못해 굉장히 적절한 소재가 포함된 그런 엠블럼. 물론 올해가 뱀의 해라 그런 것이지 다른 동물의 해였으면 이렇게나 뜨거운 관심을 받을 일 없는 엠블럼이기도 했다. 그러니 올해, 올해 전체도 아니다, 연초만 잘 버티면 이후는 식을 관심이었다. 아예 대놓고 두 마리의 뱀으로 상징되는 요네야 요스케와 미와 슈지는 어떻겠는가. 요네야 요스케는 물론 즐기고 있었다. 아휴, 올해는 순위가 오를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아즈마 씨. 미와 슈지는 그다지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직접 건네는 선물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윗사람이 주는 선물이고, 아즈마 하루아키가 주는 새해 선물이지 않은가.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옆에서 킥킥대며 바라보고 있는 요네야 요스케도, 온화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 아즈마 하루아키도 수십 번 반복되는 같은 주제의 스몰 토크가 달갑지 않은 미와 슈지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대장이란 참 고생이 많은 직책이었다. 나라사카 토오루라고 고생이 덜한 것은 아니지만, 앞서 코데라 쇼헤이는 ‘좋은 마음으로 행복을 빌어주시는 거니까요!’ 하고 밝게 말했던지라 슬슬 엠블럼 말고 다른 주제로 운을 떼었으면 좋겠다는 사소한 바람은 접어두는 게 좋을 듯했다. 그래도 보더에서 나라사카 토오루의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엠블럼에 관한 끝없는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뱀이 의미하는 게 뭐야? 탄환은? 왜 휘감고 있는 거야? 왜 두 마리인 거야? 가족들은 이미 한 차례 그의 트리온 전투체를 보고 같은 질문을 쏟아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새로 궁금할 게 없는 것이다. 올해는 뱀의 해라던데, 아무튼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했던 만큼 결실을 보는 한 해가 되거라. 웃어른의 덕담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기만 하면 그만. 그리고 그건 모범적인 나라사카 토오루에게 그리 어렵지도 않은 부탁이다. 예. 대답한 뒤 잠시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먼저 그 애가 들어와 있었다. 레이. 토오루. 일어나 있어도 괜찮겠어? 오늘은 괜찮아.
“올해는 뱀의 해라더라. 너희의 해네.”
“너까지…….”
후후 웃는 나스 레이의 안색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이 그쳐지는 걱정은 아니었다. 의자에 걸려 있던 제 카디건을 사촌누이의 어깨에 걸쳐준 그는 나스 레이가 그대로 제 침대에 앉도록 두고 저는 바닥에 앉아 매트리스를 감싼 프레임에 등을 기댔다. 오래전 제1차 대침공 당시 무너진 집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던 나라사카 토오루는 그날의 감정으로 보더에 입대하여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의 사촌인 나스 레이의 입대 동기는 다른 이들과 제법 차이가 있었다. 그는 병약한 신체를 트리온체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연구에 협력하는 형태로 보더에 입대했다. 반년 후엔 건강을 넘어 ‘새장’이라고 따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바이퍼를 구사하는 전투원이 되었으니 그는 실로 자랑스러운 사촌이었지만 나라사카 토오루는 나스 부대의 다른 사람들, 나스 레이의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본래의 육체로 돌아왔을 때 겪는 고통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새는 언젠가 다시 새장의 횃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곳에서 하늘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새장의 문은 열려 있지만, 퍼덕여도 공기의 흐름을 타고 오를 수 없는 날개로 인해. 횃대가 아닌 가지에서는 버티고 설 수 없는 다리로 인해. 그를 가둔 것은 그 자신의 몸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육신에 갇혀 있는 영혼이 트리온체에서는 마음껏 움직이고 뛰어다닐 수 있었다. 이는 무척 기쁜 일이겠으나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나라사카 토오루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제 엠블럼을 떠올린다. 뱀 두 마리가 탄환을 휘감는 엠블럼을.
한 마리였으면 좋았을까? 똬리를 틀며 뱀이 기어오르는 것이, 지팡이였으면?
그럴 일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다르고,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 또한 그만큼이나 다르다. 뱀은 지팡이 대신 탄환을 휘감기로 결정했으며, 한 마리론 충분하지 않아 다른 뱀을 불러들여 피식자를 사냥하기로 했으니 이것이 그들의 결정이고 목표이다. 나스 레이의 바람, 결정, 목표는 온전히 나스 레이가 바라고 결정하여 목표로 삼아야 할 것들이다. 나라사카 토오루가 그에 어떠한 감정을 가진들 거기까지인 것을 그 또한 알고 있다. 더 넘어갈 생각도 없긴 하다. 뱀 한 마리와 지팡이, 잠깐의 아이러니, 그뿐이다. 그가 갖는 감정은, 나스 레이도 알고 있는 거리는.
그리하여 두 사람은 두 사람 다 편안해하는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한 사람은 침대에, 또 한 사람은 바닥에. 자리는 다르더라도 그 자리가 그들의 자리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편안하다. 다만 그래도, 올 한 해는 건강하고 노력했던 만큼 결실을 보는 한 해가 되길 서로를 위해 대신 소망해 줄 수는 있는 것이지. 노력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은 복수. 한 사람은 자유. 알면서도, 그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너도.”
새해가 밝았다. 덕담을 나눈다. 진심으로 결실을 보길 기원한다. 함께 웃으며, 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