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 gwachaeso
- 3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9일
<WT>
<미즈카미 군 거짓말도 잘하시네> 외전
사이렌 속에서도 미즈카미의 발은 복도에 뿌리내린 것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면 그가 처음으로 미즈카미를 등진 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이버―트리온 병사가 쩍 하고 벌린 아가리를 향해서. 그것은 이제 다리에서 벗어나 복도로 완전히 들어서 있었다. 복도에 남은 사람 또한 미즈카미밖에 없었다. 미즈카미 외, 한 명. 전위에 서서 물러서지 않는 이코마를 앞에 세운 미즈카미는 이제 와 제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후회했다. 내려놓지 말 걸 그랬나? 분노도, 자격도.
남은 건 기억뿐이었다. 그 뒤의 전개. 떠올리는 것만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차오르는 분노.
“이코 씨. 거기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미즈카미.”
“이코 씨.”
누가 이기는지 해 봐요? 악문 이가 으득 갈렸을 때였다. 집채만 한 곰을 연상케 하는 트리온 병사가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이코마도, 그에게서 얼마 떨어져 서 있지 않은 미즈카미도 충격을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미즈카미는 도리어 한 발 앞서 나갔고, 이코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처럼 트리온 병사의 팔이 미즈카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아.
미즈카미를 밀쳐내고 대신 나가떨어지는 자가 있었다.
아아.
언젠가처럼, 목에서 피가 너무나 많이 났던 당신처럼 목에서부터 치솟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아아.
하필이면 또 새하얀 옷 위로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미즈카미 선배! 피해요!”
“아.”
검은 트리온 연기.
정신을 차리고 내내 보고 있던 앞을 그럼에도 다시 보면 하얀색 C급 공통 대원복을 입은 그날의 아이가 미즈카미가 있는 방향으로 내동댕이쳐져 굴러떨어져 왔다. 금이 간 목과 팔, 다리, 등에선 이미 검은 트리온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이내 쩌적,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몸통이었다. 그만하면 오래 버텼다고 할 만큼 너덜너덜한 트리온 육체는 곧 한계를 맞이했다.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에 눈살을 찌푸리면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아이가 보더제 트리거를 들고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미즈카미를 곧장 알아보았던 모양이지만 아이에겐 미안하게도 미즈카미가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시다? 확신은 없었는데 다행히 정답을 골랐다. 네! 이시다 마유입니다! 저를 기억해 줄 줄은 그애도 기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화색이 된 아이였지만 잠시였다. 그날 잠깐 보여준 선공을 워낙 능숙하게 다루기에 적어도 B급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C급일 줄이야. 그러나 아이 앞에서 혀를 차서 좋을 것은 사기 면에서나 어른으로서의 면에서나 하나도 없었기에 미즈카미는 대신 마른 침만 연신 삼키는 것으로 이를 그쳤다. 눈앞에는 여전히 거대하고 흰 빛을 띈 트리온 병사가 저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동시에.
“…….”
당신도. 눈앞에 선, 당신도.
해야 할 일을 알아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이시다. 트리거 안에 뭐가 장비되어 있지? C급 훈련생용 트리거에 베일 아웃이 아직 장착되지 않는 것은 조금 전 아이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그가 보더를 제대한 이후로 4년이나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보다는 좀 더 개선된 성능을 가지면 좋을 터. 이 아이라면 호월에 선공까지는 예상한 바이고, 그래도 하나쯤은 제가 다루기 쉬운 것이 있길 바라며 베팅하는데.
아이의 대답을 들은 후 미즈카미는 그날 처음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고마워.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시다에게는, 미즈카미에게 말할 생각은 전혀 없는 바로는, 입꼬리를 올린 그가 도저히 웃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비밀이 하나 생기고 말았다. 눈썰미가 좋은 아이였다, 그는. 보여지는 것보다 생각도 깊었다. 그렇기에 그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리거를 건네준 것이겠다. 트리거를 건네받은 미즈카미는 4년 만에 4년 전 그가 내려놓은 자격, 분노, 트리거, 그것의 시동어를 읊조렸다.
“트리거 온.”
*
“아스테―로이드.”
*
떨어지는 모든 것에 소리가 있진 아니했다. 그것에겐 소리가 없었다.
최초에 미즈카미가 바랐던 대로 그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