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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 gwachaeso
  • 3월 28일
  • 4분 분량

<SD>

우성명헌. 비좁은 공간에 갇힌 두 사람



처음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이 지나간 나중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등이 누운 방향과 중력의 방향이 같으니 우성은 제가 누워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맨바닥은 아닌 듯했다. 바닥은 딱딱하고, 평평하고, 차가웠고, 그다음 깨달은 사실은 바닥에 누운 제가 온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신체의 부자유를 깨달았다. 곧,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 사실을 뒤이어 알게 되었다. 손이든 발이든 옴찔거리는 것은 할 수 있었다. 다만 발을 움직이면 바닥과 수직으로 세워진 벽이 있어 발목을 펼 수 없었다. 손을 건드리면 손등에 닿는 판때기를 밀어낼 수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앉는 건 가능할까? 고개도 들지 못하는 판국이었다. 그의 감각은 하나씩, 차차로 돌아왔고, 이는 같은 감각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처음은 등의 촉각에서부터, 그다음은 발, 그다음은 손이었다. 다리는 무언가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갑갑했다.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그의 상체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과 다리를 짓누르는 어떤 것이 같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눈치챘다. 사고의 흐름이 더없이, 턱없이 느리다. 그러나 이를 알아채기엔 아직 순서를 더 기다려야 한다. 아직은 그 정도의 생각에 빨리 이를 수 없다.


대체 무엇이 그를 누르고 있는 것일까? 눈을 깜박이며, 마침내 그는 자신이 지금껏 눈을 감고 있음을 깨닫고 시각을 망각에서 건져냈다. 사방이 어두웠다. 아주 어두운 건 또 아니었는데, 광원이 어딘가 가까이에 존재하긴 하나 그에게 도달하기 전에 막아 세우는 장애물로 인해 제대로 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퍼져나간 빛 일부로나마 아물거리는 시야를 확인하면, 우성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아니, 반쯤은 이미 비명을 질렀다. 반밖에 지르지 못한 이유는 외마디 안에 비명 외 다른 것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름이었다.


“명헌이 형!?”

“……용.”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사실은 그가 받은 충격에서 대단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과는 그리 크지 않으나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우성이 목격한 것은 크고 너부죽하고 길쭉한 손이었다. 반대로 돌렸을 때도 같은 것을, 그러나 손가락이 붙은 순서는 반대인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면 명헌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양팔을 뻗어 우성의 머리 옆에 양손을 두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소리가 되었다. 벽쿵, 아니, 바닥쿵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것보다 왜 그런 자세를 하고 있냐고 소스라치게 놀라 되물었더니, 조금 늦게 벌서는 기분이라는 대답이 그에게서 돌아왔다.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는 표정은 그가 지금 원해서 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대로 팔을 굽히면 플랭크 자세와 비슷해질지도 몰랐다. 그러니 명헌은 때아닌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도 우성의 위에서. 우성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어떤 과거에 지금 이 상황으로 이어지는 맥락, 또는 단서, 복선이 있었던가?


“기억 안 나용?”


아무것도. 자신이 기억해야 하는 게 있었을까? 회상은 아직 먼 감각이었다. 그는 아직 지난날을 기억할 수 없었고, 그런데도 명헌을 알아보았으니 그 자체로 그는 놀라운 일을 해낸 셈이었다. 그러나 그 점에서 얻어지는 뿌듯함이나 고양감은 없었다. 우성은 눈을 깜박였다. 자신이 굉장히 느리게 눈을 깜박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인지하지 못했다. 말소리 역시 그러했으나 유일한 청자인 명헌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성은 알지 못했다. 제 귀에 닿는 제 목소리는 어딘가 윙윙거려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헌의 목소리는 잘만 들리는 게 어딘가 신기했다. 정우성. 넵! 생각을 들킨 줄 알고 화들짝 놀란 채로 대답했다. 집중하라는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늘의 그는 어쩐지 친절했다. 그는 우성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느린 속도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러나 우성은 차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미국은 재밌었나용?”


편지마다 한가득, 꼬박 써서 보낸 걸 새삼 또다시 묻는 이유는 저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렷다. 왜 지금 그걸 묻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우성은 명헌이 제게 보이는 관심이 좋았다. 네. 재밌었어요. 어떻게용? 넓은 땅, 그만큼 뛰어나고 강한 선수들에게 그는 끊임없이 도전장을 보내야 했다. 도전하는 것은 즐겁다. 자칫하면 제가 꺾일 것 같은 압박감에 짓눌리면서도 ‘꺾기 위해’ 손을 뻗는 것은 무엇보다 그를 흥분하게 했다. 서서히, 기억을 회고하는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으나 이때 우성은 조금 더 오래된 나날을 끄집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지금 가까이에 있는 기억을 건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용. 재밌었겠네용. 거기까지가 명헌의 의도였을까? 명헌은 적절히 추임새를 넣어주며 화제가 끊이지 않도록 장작을 넣었지만, 주제가 현재 가까이로 오는 것은 피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욱 과거로, 더더욱 과거로 물러서며 우성의 눈을 현재에서 돌렸다. 그러나 영원히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따라 너무 친절한 것 같아요, 명헌이 형.”


‘너무’는 부정적인 문장에서 사용되어야 할 부사였다. 요즘에야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우성의 입 밖으로 나온 문장에 담긴 분위기는 부정했다. 명헌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래서 싫어?”

“싫긴요!”


그렇지만……. 그 순간,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우렛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아니, 천장에서 모래 비가 내렸다. 그러나 우성은 그들을 맞지 않았다. 그 위로, 그 위를 덮는 이가 있던 덕분이었다. 명헌의 팔이 전보다 더 떨리기 시작했지만 꺾이지는 아니했다. 그들이 함께 학교에 다닐 적 농구부에서 가장 참을성이 뛰어난 사람은 명헌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헌은 우성보다는 참을성이 좋았고 시야도 넓었다. 그 넓던 시야에 담기는 것이 지금은 우성뿐이었다. 명헌이 형. 그 시야에 담긴 우성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죽어요?”

“정말 잘 운다니까용.”


여전히. 미국에 가서도 이랬을까. 더는 머리를 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도 같은 머리 모양을 고집하는 바람에 헤어졌던 날과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이는 우성이었다. 그에 반해 대학에 진학한 명헌의 머리는 조금 자란 편이었다. 명헌의 입가도 조금 올라갔다. 아니. 말은 바로 해야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평소보다 잘 차려입고 어딜 가냐는 동기들의 말에 다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뭐길래 저 또라이가 저리 웃냐는 경악 섞인 비명마저 즐거이 느끼며 출구에 서서 너를 기다렸다.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나를 발견하고 세상 무엇보다 환히 웃는 너와 잠시 포옹하고는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밤의 도로를 달리고, 너는 피곤해 죽겠다며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네가 잠들자 나는 네 머리를 내 어깨 위로 옮겨 기댔다. 그러므로 내 숨이 닿은 네 이마였다. 이윽고 굉음이 울렸다. 충격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 내가 두려워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곤히 잠든 네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지금처럼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우성. 우성아.


“너는 안 죽어.”


이마 위로 떨어진 게 무엇이냐고 묻기에 땀이라고 대답했다. 땀 냄새가 아닌데 그것도 구분 못 할 줄 아냐며 목 놓아 우는 우성이 명헌은 곤란했다. 울지 마용. 예나 지금이나 눈물만 많아선. 그러자 단박에 울음 사이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너무해요, 명헌이 형. 이럴 때 울지 않으면 언제 울어요. 현철이 형도 이럴 땐 울고불고 난리 칠 거라고요. 그 말에는 조금 웃을 수 있었다. 그건 꼭 현철이에게 전해줘야겠네용. 네. 꼭 그래 줘요. 명헌이 형.


“꼭 그래 주셔야 해요.”


꼭. 명헌이 형. 제 말 듣고 있죠? 아까부터 눈만 감고 있고. 눈 뜨고 있기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도 눈은 떠주시면 안 돼요? 차라리 팔을 굽혀요. 그냥 제 위로 엎드리셔도 돼요. 아무 말이나 해주시면 안 돼요? 형. 명헌이 형.


“살아 있어요?”


처음 그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이 지나간 나중에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등이 누운 방향과 중력의 방향이 같으니 우성은 제가 누워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바닥은 딱딱하고, 평평하고, 차가웠고, 그럼에도 가슴은 시리기 그지없었다. 그를 둘러싼 공간에는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 빈틈없이 그를 가두었기 때문이었다. 천장에선 이따금 모래 비가 내렸지만 우성은 맞지 않았다. 그 위로, 그 위를 덮는 이가 있던 덕분이지만 위로는 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하나씩, 차차로 돌아왔고, 이는 같은 감각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소리는 들렸으나 어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우성의 문제일 게 분명했다. 우성의 문제여야만 했다. 우성의.


“명헌이 형.”


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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